• 일흔 할머니, 사위 위해 연대 나서다
    "난 일용직, 딸 식당일, 사위는 기사"
    By 나난
        2010년 12월 23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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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 나이의 김 아무개 할머니는 자식 같은 버스 운전기사들이 보름째 집에도 가지 못한 채 파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불쌍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금의 힘이라도 될까 싶어서 이날(22일)도 사위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전주공설운동장으로 손녀들의 손을 잡고 나왔다.

    그리고는 소리를 크게 높이지는 못하고, ‘수줍은 듯’ 외쳤다. 손녀들과 함께. “버스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당하다”, “전주시와 전북도는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버스 기사였던 할머니의 사위는 이제 버스 ‘노동자’가 됐다.

    파업은 시작되고,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걱정스러운 것뿐이었다. 40~50대의 시커먼 ‘애비’들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지내며 밥도 제대로 해먹지 못한다는 소식에 안쓰러워서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힘을 쓰려면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야지.” 할머니는 맛난 김치를 싸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연대의 전선’에 나선 것이다. 

       
      ▲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과 그의 가족.(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사위 같고, 아들 같은 버스노동자들을 먹이기 위해 맨손으로 물메기를 손질하다가, 손바닥을 칼에 깊이베이고 말았다. 할머니는 ‘이까짓 것’은 괜찮다며 “오늘도 컵라면 하나 먹고, 추운데 가족들 먹여 살리겠다고 고생하는 거 보면 더 못해줘 미안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날 전주 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된 민주노총 ‘전북버스노동자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이어진 전주시청까지 행진에도 함께 했다. 

    할머니 역시 노동자였다. 할머니는 이날도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일을 마치고 왔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위한 연대투쟁이다. “늙었다고 안 따라다닐 수 없지 않느냐”며 “빨리 해결되어야, 다들 가족이 있는데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행진 중에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22일째 거리에서 보내고 있는 사위를 보면 “그저 불쌍하고, 마음이 쓰리다.” 사위가 매달 가져오는 돈은 150여만 원에 지나지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기엔 빠듯한 돈이다. 이제 나이도 쉰을 넘어 다른 직장을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버스기사들이 나이도 많아 이제 갈 곳도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할머니의 딸, 버스 노동자의 아내, 손녀의 어머니도 맞벌이를 한다. 할머니의 딸은 식당에서 일을 한다. 때문에 세 아이를 돌보는 것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몫이 됐다. 둘째 손녀가 며칠 전부터 감기를 앓고 있지만 사위는 파업현장에, 딸은 식당 일에, 할머니는 일용직 일을 하느라 병원도 데려가지 못했다.

    “어제는 손녀가 너무 아픈지 우는데도 병원을 못 데려 갔어. 얼마나 아프면 울기까지 했겠어? 내일은 꼭 병원에 데려가야지. 이것(손녀)들도 불쌍하고, 사위도 불쌍하고, 다 불쌍해. 빨리 해결돼야 살지. 이렇게는 안 돼.”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김 할머니의 사위와 같은 처지다. 한 달에 150만 원가량의 월급을 받는,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중년의 아버지들. 사치는 고사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데만도 빠듯한 살림이다.

    지난 2007년부터 제일여객에서 버스운전기사로 일해 온 태평(46) 씨 역시 매달 147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 길게는 하루 17시간씩 일하며 번 돈이다. 그 돈을 벌기 위해 그는 밥은 고사하고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시간대가 맞지 않아 점심을 오전 10시에, 저녁을 오후 3시에 먹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세 아이를 위해 참고 일했다. 하지만 월급통장은 늘 그가 일한 노동대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금액이 찍혀 나왔다. 때문에 여느 버스노동자들과 같이 그의 아내도 맞벌이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그의 아내는 내년 1월까지 쉬어야 하는 상황이다.

    “147만 원으로 세 아이를 키우는 데 턱없이 부족하죠. 전주지역 버스노동자들이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어요. 부부가 벌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월급날 동료들끼리 막걸리 한 잔을 하려해도 모두가 어려우니 만 원씩 십시일반 거둬 먹으며 회포를 푸는 정도죠.”

       
      ▲ 22일 현재 15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버스노동자 옆으로 전주시내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초기, 버스회사들은 “실제 시내버스기사는 260여만 원, 시외버스기사는 280여만 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지역 언론들은 앵무새처럼 이를 받아 쓰면서 “버스노동자들은 고임금 노동자”라며 “자신들의 배를 더 불리기 위한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오도했다.

    하지만 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가 공개한 지난 7월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적용되는 ‘임금협정서’에 따르면, 법정 근로일수 22일보다 이틀을 초과한 24일을 근무했을 때, 모든 수당을 합해 176만2,592원(평균근속 6년차 기준)을 지급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물론 4대 보험과 세금 등 공과금 20여만 원을 공제하지 않은 금액이다.

    그는 “정년이 다 되어 가는 50대 후반이나 40대나 150여만 원을 받는 건 똑같다”며 “그간 버스회사들이 시로부터는 보조금을 받고 우리에겐 주지도 않은 연월차 수당을 줬다고 신고하는 등 불합리하게 챙긴 임금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한국노총 소속 간부들이 노동자들의 통상임금분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들의 임금만 월 70만 원씩 올리고, 각 버스사업주들이 시민의 혈세인 시의 보조금을 받아 부당하게 챙겨 왔습니다. 때문에 처음에는 시민들이 파업을 좋지 않게 보고, 일단 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욕을 많이 했지만, 이 같은 실상이 조금씩 알려지며 여론이 호의적으로 돌아서고 있어 다행이고, 시민들에게 감사해요.”

    실제로 50대 택시운전기사는 “이번 파업은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곯을 대로 곯은 게 이제야 터진 것”이라며 “전주시와 전북도, 버스회사들이 버스기사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미리미리 챙겼어야 하는데 자기네들 배만 배우느라 화를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택시운전기사 역시 “150만 원 받아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며 “기사들이 무슨 죄냐? 전주시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서 다 갈취하고 버스기사들에게 줘야 할 돈을 안 줬다”며 “버스 못 타서 욕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와 전주시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현재, 전북지역 7개 버스사업장 노동자들은 15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태 씨는 “민주노조를 인정하고, 부당하게 착취한 임금을 돌려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며 “정부와 회사 측의 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파업 현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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