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와 자본, '연민'까지 동원하는구나
        2010년 12월 22일 06: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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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처럼 날씨가 좋아서 걱정인 때가 있을까싶다. 집에서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을때는 티브이를 가끔 보게 되는데, 요즘은 화면 위켠에 연평도 주민돕기 에이알에스(ARS)가 눈에 거슬린다. 기꺼이 돕고싶다는 마음을 가질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아마도 국가가 할 일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탐탁치 않은 탓이 크고, 한편으로는 또 나라사람들에게 남아있는 다소의 연민을 악용하려는 수가 읽혀 꺼림칙하다.

    선한 감정 다스리는 능력을 착취하다 

    기업은 감정노동을 강요하고, 선한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들을 착취한다. 그리고 국가는 감정을 동원하고 선한 감정들을 다스리는 능력들을 마찬가지로 착취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선한 감정은 오염된다.

    그토록 선한 감정들이 국가에 동원되어 의도치 않게 국가의 부도덕에 기여하게 되거나 그럴바에야 자신에게 남아있는 다소의 선한 감정들을 부정하고 그에 기반한 행동들을 회의하게 될 테다. 감정은 피곤하고, 어리석은 것이며, 마지막 한방울까지 이용당하는 것일 테니. 

    아담 스미스는 그의 ‘도덕감정론’에서 이기심 말고, 인간이 연민을 가지고 있어 시장 말고 사회의 작동에 기여하는 바를 이야기했는데, 점점 그것이 무색해질지도 모르겠다.

    자유주의자로 위장했으되 이윤밖에 모르는 자들은, 특히 완장을 찬 먹물쟁이들은 아담스미스를 신자유주의의 오래된 화신인 양 국부론의 몇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을 합리화해왔다. 그들의 매커니즘은 이제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선한 감정들마저 스스로 부정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결국 경제적 인간만 남기려나보다.

    경제적 인간만 남기려나 

    어제 전철 객차 안에서 두 걸인이- 막상 쓰려니 그들을 어떻게 호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도(商道)도 모르냐"며 구역싸움을 하고 나서는 절절한 내용의 코팅된 종이를 승객들에게 나눠준다. 그들의 처지를 알지는 못하나, 감정을 구매하는 상업활동이었던 것에 새삼 놀란다. 씁쓸하다.

    가뜩이나 연말이라 돕자는 이야기를 거리에서 많이 듣는다. 사회복지 예산 다 까먹은 정부는 연평도에서 포격한 후 애국심 따위를 자극하며 우리에게 남은 자잘한 감정들을 쥐어짜려는 수작을 계속 할 게다. 언젠가 연민을 일으키는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나면, 돕는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로 바뀌게 될까. 그리고 돕자는 말은 동원과 착취를 가장한 수사 말고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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