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복지' 치사하다
        2010년 12월 21일 05: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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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일 ‘한국형 복지국가’를 필두로 사실상 대선출정식을 열었다. 이날 열린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을 위한 공청회’는 박 전 대표가 처음으로 개최한 법안 공청회라는 점에서 대표적 보수정치인인 박 전 대표도 ‘복지국가’ 담론을 기반으로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진보 "일단 환영할 만한 일"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747’과 비슷한 ‘줄푸세’를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던 박 전 대표의 변화는 이전부터 감지된 것이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을 통해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정부의 관치주의는 안되지만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말해 시장 지상주의와는 결이 다른 발언을 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7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를 맞아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로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11월 박 전 대통령 생일에서는 “국민이 행복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자랑스럽고 품격 있는 ‘선진 복지국가’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부자감세 등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평가받는 가운데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복지담론의 선점을 둘러싸고 ‘원조’임을 주장하는 진보는 물론 민주당,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까지 가세한 모양새다. 민주당 역시 지난 10월 당 대회에서 ‘중도실용’을 폐기하고 ‘보편적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

    보수진영의 이같은 변화 자체에 대해서는 진보진영과 전문가들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진보신당은 “보수진영이 ‘복지국가’ 담론을 일부에서나마 적극 수용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좋은’ 복지국가로 국민통합적 개혁을 거론하며, 생애주기를 고려한 평생사회안전망 구축과 공공부문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한다는 등의 내용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이제 복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를 우선순위로 언급한 만큼, 복지가 예전처럼 용어 뿐이 아닌 정책에서 우선순위를 확보할 수도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용어만 복지, 한나라당 일반 정책과 같아

    그러나 박 전 대표의 ‘한국적 복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남 교수는 “박 전 대표는 몇 년 전부터 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형 복지’ 내용 자체는 한나라당의 일반적인 정책과 큰 차별성이 별로 없다”며 “이것이 복지 용어와 담론을 선점하려는 의도일 뿐 실제 정책의 진정성에는 물음표가 쳐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이어 “이번 사회보장 기본법 개정안도 사회보장 제도의 큰 변화를 위한 보편적 복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남 교수는 민주당에 대해서도 “복지 얘기를 많이 하고 있으나 민주당의 당론이 불분명하다”며 “시장주의와 복지 사이에서 왔다갔다해서는 정체성 확인이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 정책위원회도 21일 정책논평을 통해 “‘박근혜식 복지국가’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신당은 “적어도 복지국가라고 한다면, 국민들이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시장 문제에 대한 개입 전략이 나와야 한다”며 “또한 실생활과 직결되는 주거, 교육 대책에 대한 최소한의 방향이라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 정책위는 이어 “비정규직 850만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는 현재 사회양극화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이라며 “사회복지정책을 아무리 잘 제시한다 하더라도, 경제정책과의 상호보완 작용이 없으면 심화되는 사회양극화 문제는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고질병인 교육문제, 주거문제"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는 것도 지적됐다. 진보신당은 “사교육비 대책 없이 사회보장의 범위에 ‘출산. 양육’ 이라는 단어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상위 1%가 소유한 토지가 전체 사유지의 57%에 달하고, 집 100채 넘는 사람이 37명인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알맹이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복지국가론 치사하다

    진보신당은 여기에 “여전히 잔여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생애주기 전반에 대한 사회서비스를 추진하지만, 서비스 제공을 현재와 같이 저소득층에게만 지원하겠다는 것은 다시 잔여적 복지로의 회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박근혜식 복지국가’의 노력과 시도가 의미가 없지 않으나 한편으로 ‘박근혜식 복지국가’는 치사하다”며 “예산안 날치기로 인해 복지예산이 빠진 것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복지국가 비전만 제시하는 것은 거대 여당의 책임있는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식 복지국가’가 그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복지가 후퇴되는 현실에 대해 적극적 개입을 해야만 할 것”이라며 “한국 국민의 삶을 어루만질 수 있는 종합적인 국가 전략, 비전이 나와야 한다. 그 핵심에는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노동시장에 대한 전면적 개편이 담겨야 하며 교육 문제, 주거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도 담겨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 역시 “박 전 대표는 2007년 대선 당시 ‘줄푸세’를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한나라당 부자감세 정책의 원조 격”이라며 “어제 박 전 대표가 내 놓은 거창한 한국형 복지론의 일부라도 실현하려면, 부자들 세금 깍아 주는 감세정책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득세 최고세율은 그대로 유지하되 법인세는 계속 인하하고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원상복구를 회피한다면, 한국형 복지는 재원마련 대책 없는 ‘위장복지’에 불과하다”며 “결국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가짜복지, 부자들 세금 있는 대로 깎아주는 친 재벌 위장 복지는 서민호도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민주 "실체 애매, 해결책 없어"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레토릭에 불과한 한나라당의 선별적 복지, ‘말로만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 동조하면서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어떤 철학이나 비전, 대안도 없었다”고 지적했으며 전현희 원내대변인도 “‘한국형 복지’의 실체가 애매하며 구체적 해결책 제시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평가 절하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일 공청회 인사말을 통해 “이제 우리경제에 걸맞는 복지시스템을 갖출 때가 되었다”며 “우리사회의 복지 패러다임이 구시대적인 소득보장중심에서 소득과 사회서비스가 균형적으로 보장되는 미래 선진형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국가담론을 둘러싼 정치권의 경쟁이 이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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