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을 위한 국가는 없었다"
        2010년 12월 21일 10: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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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12/20) 연평도에서 전면적인 사격훈련이 있었다. 11월 23일에 있었던 포격에 대한 반발에서 진행된 훈련이었다. 연평부대는 이번에 K-9 자주포와 105㎜ 견인포, 81㎜ 박격포 등 1500여발을 연평도 서남방 해상으로 발사했다고 군 소식통은 전했다.

    전쟁에 관한 논쟁

    사격은 총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오후 잠깐 밖에 나와서 보니 여기저기 TV에서 포격 상황에 대한 영상들이 나오고 있었다. 포격을 하면 전쟁이 나는지 안 나는지를 가지고 논쟁이 붙기 시작하였다. 질문은 한겨레의 기사(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454780.html)처럼 북한이 대응을 못 한 것인지, 아니면 안 한 것인지 혹은 준비 중인지 정도로 수렴될 것 같다.

    전면전이 두렵기 때문에 북한이 가만히 있었다는 전망,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것이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언제 쏠지를 살피고 있다는 대답 정도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많은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조금 지나면 그것들은 ‘정세’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에 있어서 학문세계의 ‘국제정치학’은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북한이 ‘쫄았다’라는 반응. 즉 북한이 대응을 못 한 것이라고 보는 반응이 있을 것이다. 국지전은 북한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민주평화론이라는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의 말을 빌자면 ‘자유 시장’ 교역이 진행되면 서로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전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번 사태는 그러한 이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전통적인 북한의 우방인 중국은 잠깐의 ‘유감’ 제스처 이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자유 시장’에서 벌이는 ‘장사’를 생각해보면 그 이론은 말도 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러시아는 ‘사회주의’를 포기한지 20년이 다 되어감에도 이번 20일의 훈련을 만류했다. 즉 이러한 상황을 보자면 북한은 뒤에 꽃놀이 패 두 장을 최소한은 들고 있다. 한미일이 성명을 한다고 해서 북한이 말을 들으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오산이다.

    한국 극우파들의 꿈

    두 번째로 생각해볼 상황은 북한이 대응을 안 했다는 것과 차후에 할 것이라는 것. 이 두 가지는 사실 같은 전제를 가지고 있다. 북한이 어느 정도는 11월 23일의 포격을 통해서 성과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좀 더 북한이 얻어낼 것이 있다고 생각할 경우 더 준비를 해서 보복을 할 것이고, 군사적 도발이 이쯤이면 되었다고 생각할 경우 외교적 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이 두 입장은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특별하게 남한이 ‘응징’을 하기 어려웠다는 점,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영토 내부에서의 ‘훈련’이었다는 점은 그러한 입장을 지지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상황’에 대한 진단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있다.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계속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단호하게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외교적으로 압박을 넣는 방법.

    그런데 둘 다 별로 쓸모가 없다. 군사적 시위를 가지고 ‘공격’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의 극우파들은 그것을 꿈꾸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면 이미 이전의 여러 군사적 도발 상황에서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위해서는 미군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전시작전권이 이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우파들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가능한 한 미루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그런데 미국은 전쟁을 원할까? 이 머릿살 아픈 상황에서 오바마가 전쟁을?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한미일’ 선언 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장 군사적 강경책을 가지고 폼을 잡더라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건 중국과 러시아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견제를 하게 되고, 상황이 악화되면 원치 않는 상황으로 가리라는 것은 명약관화다.

    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남는 것은 외교적 선택뿐인데 북한은 외교적으로 그리 불리해 보이지 않는다. UN에서 완벽하게 고립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현상유지’를 바라기만 하면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동북아에서의 국가 간 지형은 그렇게 이미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이다. 이 지형에 큰 변동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의 동의를 가지고 글로벌 금융·통화에서의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한다.

    결국 TV에서 보여주는 스펙터클과 상관없이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불사하고 북한의 도발로 더 안 좋은 국면이 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강경책’ 혹은 ‘압박’은 잘 작동하지 않을 것 같다. 진보진영이, 그리고 좌파들이 북한에 대해 NL 같은 호의를 보일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하여 북한을 맹비난하는 게 문제를 푸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질문해야 할 바는 다른 것들이다. 먼저 정부의 외교 분야에서의 ‘통치·관리(거버넌스) 실패’이다. 아니, 이 지경이 되도록 3년간 뭘 했냐고 물어야 한다. ‘비핵 개방 3000’의 성과가 3년 동안 무엇이었냐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다가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협상 테이블도 다 막히게 되었냐고 물어야 한다.

    어떤 국가에 대해 호의적이기 때문에 협상을 하는 게 아니다. 속으로는 으르렁대면서도 겉으로는 시크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화하는 게 외교의 장이라는 것들을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국제정치학 개론’ 시간에 다 배운다. 교과서는 어디에 두었는지 궁금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덕택에 동북아시아 정치에서 완벽하게 아무런 ‘조정’도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국의 역할이 사라졌다. ‘동북아 균형자’를 이야기하던 시절은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되어버렸다.

    안전보장의 아웃소싱

    하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는 국내 정책에서의 통치·관리 실패이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 ‘찜질방’과 ‘방공호’이다. 예산안 졸속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12월 19일까지) 연평도의 시민들은 인천의 찜질방에서 묵어야 했다.

    전면전 상황도 아닌데 ‘1박 2일’도 아닌 ‘26박 27일’을 피난생활 해야 했다. 거기에는 ‘카메라’가 있었지만 예능 프로그램이 주는 ‘웃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 웃지 못 할 일은 ‘연평도 찜질방’이라는 이름으로 그 찜질방이 홍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국가가 해야 할 시민의 ‘안전보장(안보)’은 정확하게 아웃소싱 되어 사기업에 의해 완수되었다. 그리고 그런 찜질방을 알아봐준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인천광역시였다. 게다가 찜질방에서 나온 사람들은 두 달 동안만 거주를 보장받았다. 그들은 ‘평시’에 난민이 되었다. 정부는 그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게다가 돌아갔던 사람들 280명은 오늘 훈련 때 ‘방공호’로 대피해야 했다. 국가가 연평도 시민들에게 주었던 것은 ‘보금자리’가 아니라 ‘방공호’였다.

    이쯤 되면 연평도의 시민들이 ‘국민’이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들은 정부의 외치 실패로 포격을 당해 삶의 조건들이 무너져 버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찜질방’의 난민이 되었다. 난민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삶터를 지키던 사람들은 ‘군사요새’화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군사요새가 되어버리고 있는 자신의 삶터에서 원치 않는 훈련 때문에 피난을 예행연습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이러한 일이 ‘임시적’이지 않게 된 것이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도 ‘서해 5도’는 ‘군사요새’가 되어 이전과 같은 평화의 섬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평도 주민의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군사주의와 애국주의의 강화

    북한이 그 책임이라면 분명 그 지점은 맞다. 하지만 그 순간에 그들의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순간 ‘국가’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국민은 어떤 의미인가? ‘국격’을 위해서 방공호에 숨어있는 그들은 ‘예외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닌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예외’는 얼마나 많았는가? 4대강 사업 때문에 떠나야할 사람들과, 이미 이전부터 대추리와 매향리에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또 다시 ‘위기’가 다가오면 쫓겨나야 함이 명백함은 이러한 ‘예외’가 더 이상 예외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제 한국의 우파는 ‘국민’ 없는 국가를 유지하려는 것 같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이야기한대로 ‘쇼크’가 생겨날 때마다 정부는 계속적으로 군사주의와 애국주의를 강화하고, 반대파의 입을 닫게 할 명분을 만들며, 강화된 군사적 논리는 주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요구를 하게하고 정부는 점점 강권통치로 가게 된다는 시나리오.

    군사비는 증강되고 원치 않는 위협 때문에 오히려 국가의 억압적 상황들을 더 강화시키는 9/11 이후의 반인권적 행위를 묵인하게 되는 미국의 전례가 다시금 이 정부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항구화된 불안이 엄습한다. 인권위는 막나가고 중앙 정부는 ‘난민’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연평도 사태와 오늘의 군사훈련은 그 징후를 보여준다. 시민들의 불안은 북한의 포격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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