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절 대회의 절망, 촛불의 감동
        2010년 12월 20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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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무엇일까/ 우리들은 모두 무엇일까/ 너는 나에게 무엇이고/ 나는 너에게 무엇일까…/ 우리들은 서로에게 무엇일까/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서로에게 무엇일까/그저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사는 사랑의 추억일까/ 다시 부를 수 없는 희미한 옛사랑의 노래일 뿐일까/ 정말 그뿐일까” (임성규 시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일까 -오월에 나부끼는 깃발에 부쳐 3’ 중에서)  

    노동절 기념대회, 절망하다

    민주노총이 건설되었으므로 나는 다시 전문노련으로 돌아왔다. 전문노련은 내게 ‘친정집’ 같은 곳이었다. 운동이 활발하고, 논쟁도 많았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요즘처럼 활발하지는 않아서 블로그나 까페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우리는 CUG이란 것을 통해 의견교환을 나누고, 때로는 논쟁도 벌였다. 예를 들면 집회와 관련하여 이런 글을 썼었다.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촛불집회에 익숙한 너희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민주노총의 집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에 대한 지적을 하는 아래 글들을 보면서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CUG : Closed User Group의 약자로 ‘폐쇄 이용자 그룹’ 쯤 되겠다. 요즘으로 치면 회원에게만 공개되는 카페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대중의 인내심을 최대한 쥐어짠 제106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열린음악회’를 담당하고 있는 PD들은 이 인기 프로그램이 오래 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전 같지 않다고 고민한다는 투의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TV는 시청률이라는 잣대가 있어서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신설된다.

    이번 노동절 행사를 보면서 이렇게 할거면 아예 기념행사를 폐지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심한(?), 그러나 정당한 생각을 해 보았다. 운동권 전반에 깔려있는 ‘시간에 대한 무시’는 이번 대회에서 극대화되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오후1시부터 2시 30분까지 사전행사, 그리고 이어 3시30분까지 1시간 동안의 본행사, 그리고 4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거리행진 및 마무리 집회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순은 종이 위의 식순일 뿐이다. 

    장황한 연설, 지루한 대회

    사전행사인지 무슨 행사인지가 끝난 것은 4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무슨 투쟁사례인지, 무슨 투쟁결의인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관심 있어 하던 참가자들은 반복되는 이야기에 대해 집중도가 점차 떨어져 나가는 것은 당연.

    여기저기 끼리끼리 모여 잡담하거나 한가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때맞추어 각가지 종류의 유인물들이 배포되고 그 중에 대부분은 편리한 깔개로 변하든가, 아니면 쓰레기로 변한다.

    중간 중간의 문화행사와 노래로 분위기의 흥을 돋구려 하지만 기진맥진한 대중들의 분위기는 바뀌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약 3시간에 걸쳐 사전에 초를 쳐놓은 상황에서 본 대회는 시작한다. 권영길 위원장님의 대회사에는 관심이 많다. 구속된 지 50일만에 처음으로 보는 민주노총의 최고책임자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전국연합, 국민회의, 민주당…. 줄줄이 이어지는 축사. 그래도 박수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짧게 끝내는 사람들이다. 

    아, 그전에 또 하나. 각 조직별로 하는 참가자 소개(사실은 사전행사에서도 했었는 데)에 이어 단상에 있는 사람들이 소개되기 시작한다. 000 노동단체, xxx연구소, 000 연합, xxx당 국회의원, 심지어는 000대학교 교수도 소개된다. 도대체 단상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많아서 박수도 대충대충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바뀐 식생활문화 때문인가? 김치찌개, 된장찌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부페식으로 많이 늘어놓으면 그 중에 알아서 골라 먹으라는 얘기인가? 우리는 한 번의 집회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열린음악회도 식상해 하는 판에

    그리고 노동조합에 초보적인 사람을 데려오는 고참들이 점점 재미없는 집회에 신참들을 데려오기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각 상급조직에서 왜 대회 때만 되면 ‘조직’하기 힘들어하는지 행사 진행자들은 정말 알고 있는가?

    강제로 동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난리인 열린음악회조차도 대중들이 식상해 하는 부분을 느끼고 있는 데…. 한 번이라도 안 온 사람들은 후회하고, 온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구경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집회를 보았으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각성하라 민주노총! 각성하고 또 각성하지 않으면 정말 희망이 없다. 이 중요한 노동자의 잔치날이면 전 세계 노동자들이 선배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행사가 무미건조, 지리멸렬하게 끝난 데 대해. 

    그러고도 집회는 끝나지 않았다. 여의도까지 행진. 행진 속에서 대오의 많은 부분이 떨어진다. 약 반수 이상이 터덜터덜 대오를 이탈한다. 이미 해는 저물어가고 있는데 마무리 집회는 한다. 그리고 끝난 시간은 대략 7시경.

    무려 6시간에 걸친 중요한 행사를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오랜만에 집회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이런 때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둘레둘레 사방을 살피는 사람들. 그리고 집회는 끝났다. 

    남는 것은 무수한 쓰레기

    남는 것은 무수한 쓰레기들! 우리가 버린 무수한 쓰레기는 다시 책임을 맡은 일부의 사람들이 치운다. 도대체 기독교인들만도 못한 노동자라는 소리도 나온다. 부활절 집회를 여의도에서 할 때면 수십만 명이 다녀가도 쓰레기는 없다는데…

    돈 없다고 난리치는 민주노총이 다시 쓰레기 봉투값으로만 수 만원을 날린다. 정확히 17만원이란다. 종이는 재활용품인데도 재활용이 불가능한 사람들에 의해 마구 태워지고, 버려진다. 이것이 천만노동자의 희망이라는 민주노총 조합원 대중이다.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재가 펄펄 나는 아수라 판 속에서 신이 난 사람들은 그래도 소주라도 한 잔 걸친 사람들이다. 아, 정말 절망이다. 

    가을에 있을 전국노동자대회도 상상이 간다. 전야제에서 진을 다 빼버린 사람들. 오랜만에 신이 나서 술 먹고, 웃고, 신명이 난 사람들. 그래도 좋다. 왜 1박 2일 이니까. 전국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에서 새로운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노동자라는 일체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본 대회장에 가면 피곤한 사람들이 눈을 감기 시작한다. 정작 중요한 본 대회 때에는 사방에 자거나 조는 사람들뿐이다. 압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대회의 의미를 진정으로 살리기 위해, 그리고 참가한 사람들이 진정 배우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 참가하고 싶은 대회가 될 수 잇도록 하기 위해…. 욕심을 버려야 한다.

    투쟁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한 쪽에 대자보판을 만들어 주든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도대체가 청중이 들을 태세가 안되도록 만들어 놓고 많은 말을 한들 말하는 사람만 배고플 뿐이다. 대회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는 해보아서 안다. 그러나 92년 이래 처음으로 청중의 입장에서 본 이번 대회는 해도해도 너무 했다. 각성과 반성을 촉구한다.” 

    촛불집회가 준 감동 

    사실 내가 촛불에서 배운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집회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었다. 거기서는 모두가 주인이었다. 1분 발언을 끊임없이 신청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발언들에서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자 집회는 거의 짜있는 틀거리를 반복하여 진행한다.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다.

    어쩌면 우리가 군사정권과 싸우면서 그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배인 문화인지도 모른다. 일사불란한 구호, 줄을 맞춰 앉아 있는 대오, 날이 갈수록 빵빵한 음향과 무대. 그러나 대중의 참여가 없는 집회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너희들에게서 ‘소통방식’에 대해 많은 걸 배워야 한다. 

    96년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였다. 민중당과 한국노동당 등을 거친 나는 당연히 ‘노동자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바로 전해인 95년 6월 지방자치체 선거를 앞두고 3월에 개최한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한 강연회에 강사로 등장한 노무현 전대통령(당시에는 전 의원이었다)은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참가한 노동자에게 던졌다. 

    “도대체 노동자 여러분들이 가진 표가 얼마나 되느냐?” 

    그만큼 우리는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연맹이 주도하여 후보를 출마시키고,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출마하면 그를 심사하여 도와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침 연맹 부위원장이자 무역협회 위원장이던 이병무 위원장이 경북 김천에서 출마했다. 연맹은 정치활동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나는 곧바로 김천에 내려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김천은 보수적인 동네였다. 후보가 9명이 출마했는데 모두 김천중학교 출신일 정도였다. 타지 사람은 출마를 엄두도 못내는 동네였다. 우리는 후보의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자전거 유세도 하고, 서울에서 주말이면 연맹 사람들이 내려와서 김천역 유세도 하고, 유권자들에게 엽서와 편지 3만여통을 보내는 등 등 최선을 다한 선거운동을 펼쳤다. 그리나 결과는 비참했다. 9명중 6위, 1,115표를 받았다. 당연히 비판도 많았다. 

    “당선가능성이 없는데도, 그리고 민주노총의 얼굴에 먹칠을 할 후보들이 나가겠다고 하면 누구라도 앞으로도 연맹후보이고 민주노총의 후보가 될 수 있는가?”
    “이번 총선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비싼 수업료로 내고 배운 소중한 교훈”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주장했다. 단지 비판으로 끝나서 될 일은 아니었다. 96년 4월 26일 전문노련 기관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준비없는 정치활동 

    “잔치는 끝났고, 돌아가는 사람들마다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그것도 곱지 않은. 이번 선거는 노동조합에 무엇을 남겼는가? 무엇을 위한 잔치였던가? 그동안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은 거의 없었다. 선거참여만 하더라도 수개월, 아니 선거를 며칠 앞두고 준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 선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연맹후보로 결정한 시점은 선거를 불과 50여일 앞둔 시점이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준비가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연맹으로서는 최대의 지원을 하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지역주의가 판을 치고, “돈은 풀고 입은 묶어”버린 선거판에서 준비 없는 선거는 어떤 결과를 낳는 가를 이번 선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노동운동은 87~88년의 상승세를 벗어난 지 오래다. 그리고 그간의 노동조합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을 수 차례 증명하고 있다.

    이런 판에 돈도 없이, 지역기반도 없이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출마했을 때 사실 결과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6일이라는 선거기간은 짧다. 제 아무리 참신한 기획과 홍보전술이 있다하더라도 그 기간 중에 얻을 수 있는 표는 이미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2~3년의 줄기찬 활동에 의해 미리 표를 확보해 두고 있어야만 가능성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지역활동이 없는 곳에 출마하다 보니 선거기간 중에 줄게 무엇인지,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가 없는 상태에서 ‘표’를 구걸하는 선거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너무 밑천이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출마하는 경우는 이제 없어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주고 있다. 

    맨땅 헤딩 출마는 더이상 없어야

    후보선정의 문제도 지적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정당처럼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심사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노동자로서의 의식, 그간의 활동경력, 지역 대중과의 결합력 등이 종합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한편 이런 우리의 조건 외에도 객관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삼국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지역바람, 금권선거, 보수경쟁, 이런 상황에서의 젊은 유권자들의 기권 등 정치권 전반의 ‘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이번 총선에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았던 것이 맞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업장의 투쟁이 패배로 끝났다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이번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앞으로 준비할 수 있는 가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어떤 조직보다도 당신들의 조직은 대단하다. 존경스럽다”라고 선거기간을 지켜 본 김천 사람들은 말했다. 그야말로 돈 한 푼 바라지 않고 헌신적인 활동을 우리는 했다. 그것은 앞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며, 우리의 미래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적어도 노동조합의 후보라고 하면 많은 국민들이 이 사회의 삶을 풍요롭고도 평등하게 앞장서서 싸워 온 자신들의 선두주자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노동조합법, 정치자금법, 선거법에서 제약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도 깨뜨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동자의식이 확보되어야 한다. 숱한 대규모 투쟁을 해 온 울산에서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맥을 못 추고, 포항에서도 5공의 잔재가 감옥에서 당선되어서야 1,100만 노동자라는 것은 허수에 불과하다. 

    더 큰 태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차분히 4년 이상의 준비를 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3년을 공부하고, 재수도 하는 판에 한나라의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 벼락공부를 해서는 안된다. 차분히 중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활동해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활동이 중요하다면 이제부터 돈을 모아야 한다.

    쟁의기금을 모으는 것처럼 특별기금을 충분히 확보해 두어야 한다. 금권선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활동을 위해서도 돈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그 순간이 또 다시 시작인데…”라는 노래처럼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선거참여가 준 값비싼 교훈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속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해묵은 과제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보다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번 선거가 남겨 준 가장 큰 교훈은 준비되지 않은 투쟁이 패배하듯이 준비되지 않은 선거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96년 4월 11일. 선거는 패배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많은 교훈을 배우고, 이후를 준비해 왔다.”라고 힘있게 쓸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하자. 지금부터.” 

    그렇게 96년의 반이 지나고 있었지만, 사실은 더 큰 태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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