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은 우리가 노예로 보입니까?"
    By 나난
        2010년 12월 20일 01: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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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반장 – “오늘 밤 안으로 (의자) 500개 (생산) 끝내야 합니다. 끝내기만 하면 내일 일요일은 푹 쉴 수 있습니다. 
    마이클 – “왜 한국 사람은 안 하고 우리 외국 사람만 합니까?”
    최 반장 – “마이클, 중요한 지적인데, 한국 사람은 아무래도 가족이 있으니, 가족 없는 여러분이 좀 희생해야죠? 그러니 음악 밤새 듣지 말고 열심히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19일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한국대회가 개최됐다.(사진=이은영 기자)

    한국사회 차가운 시선이 괴롭다

    영화 <방가? 방가!>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이주민,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은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같은 일은 해도 적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당연하며, 최소한의 권리는 물론 강제단속에 인권마저 유린되고 있다. 왜냐면, 한국에게 이들은 ‘이방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방가? 방가!> 속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500만 원이란 큰 돈을 망설임 없이 내놓는다.

    알리 – “나도 이거(주민등록증) 만들어줘, 나도 이거 있으면 추방 안 된다. 여권도 만들어주면 카밀라 데려올 수 있다.”
    방가 – “잘못 만들어 감방간다.”
    알리 – “가족이랑 떨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한국이 감방이다. 나도 만들어줘.”
     

    19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의 한국대회가 열렸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이주공동행동 주최로 “차별과 착취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대회에서도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300여 명이 참여해 한국사회가 자신들에게 보내는 차가운 시선과 그로 인한 고통을 쏟아냈다.

    미셀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한국에 꿈을 이루기 위해 왔지만 우린 먼저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며 “14~16시간을, 심지어 20시간을 일해도 휴식은커녕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한국에서 고생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결국 병을 얻게 된다”며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없다”고 비판했다.

       

      ▲300여 명의 이주민-이주노동자들은 한국정부에 ‘보호’와 함께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중’을 요구했다.(사진=이은영 기자)

    한국, UN 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 안해

    지난 1990년 12월 18일 유엔총회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그 가족을 보호할 목적으로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채택했다. 해당 협약에 따르면 출국의 자유, 생명권, 강제노동의 금지, 신체의 자유 등의 권리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향유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까지 43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어, 이민자 특히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관련돼서는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과 구직기간 제한을 받고 있는 것 외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사회적 차별과 권리 박탈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태국 출신의 한 이주노동자는 “우리는 피땀 흘려 일하지만 일부의 한국 사장은 월급을 제때 주지 않거나 일한만큼 돈을 주지 않는다”며 “한국에 이주노동자를 위한 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장을 이동은 물론 이동의 횟수도 제한되는 곳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노동자로서 일을 한 것뿐임에도 (범죄자처럼 출입국 관리소에) 잡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공동대표 역시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권익과 인권,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며 “이주노동자는 학대와 착취,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집회가 열리는 한켠에서는 한국정부의 강제단속과 추방정책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의 모습과 사연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인도네시아 출신 고(故) 누르 푸아드 씨는 지난 2006년 부천에서 단속반을 피해 창문을 통해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 달아나려다 추락하며 목숨을 잃었다.

    숨진 이주노동자들

    중국 출신 고 권봉옥 씨 역시 지난 2008년 생계를 위해 모델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중 출입국 직원들의 단속을 피해 8층 객실에 숨어 있다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온 단속반을 피해 객실 창문으로 뛰어 내려 사망했다. 베트남 노동자 고 웬반탄 씨는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못을 박는 탄환총을 자기의 머리에 33발이나 쐈으며, 꾸안 씨는 단속반을 피해 작업장 2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치료 중 사망했다.

    이처럼 2010년 12월 현재, 3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강제단속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들의 사연은 이날 마로니에 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을 잡았다.

       
      ▲ 한국정부의 강제단속으로 인해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2010년 12월 현재 30여명에 이른다.(사진=이은영 기자)
       
      ▲ 이주민-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차별과 착취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을 선언했다.(사진=이은영 기자)

    미셀 위원장은 “우리가 한국사회에 필요로 하는 것은 ‘보호’뿐만이 아니라 ‘존중’”이라며 “이제는 우리 스스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방을 당하거나 일하던 도중에 비자를 잃어야 했다”며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건 우리가 보호받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은 ‘2010 이주민 인권선언’을 채택하며, 한국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일어설 것을 다짐했다.

    "사업장 이동 제한 폐지"

    선언문에서 이들은 “노동현장에서는 억압과 착취의 대상으로, 일상의 영역에서는 차별과 냉대의 의미로, 이에 더해 한국정부는 잠재적 범죄자이자 인간사냥의 대상으로 ‘이주민’을 부르고 있다”며 “차별과 착취로 점철된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저항의 끝에서 우리는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의 의지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우리는 억압과 착취라는 이름을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가 흘린 땀의 가치와 노동의 권리를 아는 이 땅의 노동자,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노동자로서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 ‘월급날’ 공연에 대회 참가자들이 흥겨워하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특히 이들은 “우리의 인권 보호를 위해, 한국사회 안정을 위해 인간사냥식 단속을 집행하고 있다는 한국정부의 주장은 자신들의 반인권적, 불법적 행위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라며 “우리들의 생명을 담보로 자행되고 있는 인간사냥식 단속추방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한국정부에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및 사업장 이동 제한 폐지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 단속 추방 중단 및 전면 합법화 △이주노동자 범죄자 취급 중단 △이주여성 권리 보장 △이주아동의 교육권과 건강권 보장 △난민인정 확대 및 권리 보장 △재외동포법 전면 시행과 동포 자유왕래 보장 △UN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 비준 등을 요구했다.

    이날 세계 이주민의 날 한국대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차별의 모습을 담은 퍼포먼스는 물론 중국 동포들의 노래 동연 등도 진행됐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노래하는 밴드 ‘스탑 크랙다운(Stop Crack Down)’은 상습적으로 체불되는 월급으로 인해 고생하는 내용의 ‘월급날’을 불러 큰 호응을 얻기로 했다. 다음은 노래 ‘월급날’의 일부다.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한참동안 받지 못했던 월급을 돌려준대요. 나의 소중한 가족들, 사랑하는 부모님, 이제는 나의 손으로 행복하게 해줄게요.(중략) 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 동안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날 욕 한 건 참을 수 있어요. 내 월급만은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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