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은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
        2010년 12월 19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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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레디앙>에 보내온 필자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한국에서 지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몸을 담은 바 있으며, 현재 북경 인민대학 박사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 글은 중국 주류 학계와 정계의 사회주의관을 소개하면서, 필요에 따라 한국 상황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중국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차원부터 다양한 수준의 논쟁거리가 내포돼 있는 이 글이, 향후 한국사회와 정치적, 경제적 관계가 점차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중국의 현실과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이해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앞으로 4회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3. ‘생산력 해방’을 통한 ‘생산력 발전’
    – 사회주의본질의 객관운동법칙상의 구현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개괄이 새로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학적 사회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생산력 해방과 생산력 발전을 사회주의 본질 문제와 연관시키고, 생산력 해방과 생산력 발전을 사회주의 본질적 요구로까지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맑스주의 사회주의 본질관의 계승과 창조이면서, 또한 장기간 사회주의 본질 문제에 있어 덧씌워져 있던 여러 가지 잘못된 관념의 평정과 바로잡기이다.

    주지하다시피, 맑스주의 원전 저자들은 예로부터 사회발전에 있어 생산력의 작용을 매우 중시했으며, 생산력이 부단히 전진 발전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어떤 사회제도가 이미 시대에 걸맞지 않게 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생산력 해방과 생산력 발전

    <고타강령비판> 중에 맑스는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 제일단계’에 대해 언급할 때, 이 단계에선 사회생산물이 아직 충분히 풍족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어서,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가계급의 협소한 권리개념"(예컨대,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상품경제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인 ‘가치법칙’과 ‘등가교환법칙’을 들 수 있다)을 완전히 넘어설 수 없게 만드는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오직(강조는 필자) 사회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물질적 재화의 일체의 원천이 충분히 용솟음친 이후"에 라야, 사회는 비로소 각자가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필요에 따라 취하는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미래 사회주의의 과학적 예측은 모두 생산력 해방과 생산력 발전이 사회주의 본질적 요구라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등소평이 사회주의 본질을 생산력 해방과 생산력 발전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맑스레닌주의의 과학적 이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론은 또한 맑스주의 사회주의 본질관의 창조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개괄로 맑스주의 사회주의 본질이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등소평 이전 시기에, 비록 맑스주의 창시자에서 레닌과 마오쩌동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에 대한 많은 빛나는 저술들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또한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사회주의 본질’과 같은 명확한 개념을 이들이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더더구나 "사회주의 본질은 생산력 해방과 발전"이라는 과학적 개괄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이 부분에 대해 의심하는 독자가 있다면 한 번 원전을 직접 찾아보며 확인해 보기 바란다) 등소평의 이러한 ‘새로움’은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이 아니라,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중요한 이론문제와 인식론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첫째, 이 새로운 개괄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존재근거를 명확하게 볼 수 있게끔 한다. ‘본질’이란 철학적인 의미에서 현상 배후의 것을 지칭하면서, 또한 사물의 존재근거를 지칭한다. 인간의 본질은 인간의 존재근거를 말하는데, 즉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인간인가를 말해준다.

    사회주의 본질은 그것이 얼마만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근거가 무엇인가, 즉 어떤 것이 이런 제도로 하여금 생명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부단히 존재하게끔 하는가에 있다.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론은 사회주의 우월성과 사회주의 존재근거가 부단히 ‘생산력을 해방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으며, 부단한 생산력의 해방과 발전의 운동을 벗어나서는 사회주의는 곧 생명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존재근거를 상실한다는 점을 밝혀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본질적 차이

    둘째, 이 새로운 개괄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전 과정을 걸쳐 구현되어야 할 본질적 요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깨닫게 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본질이 사물의 존재근거인 이상, 그것은 반드시 이 사물발전의 전 과정에 걸쳐 존재하고 구현되어야 한다. 즉, 사물발전의 "각각의 단계와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체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생산력해방과 생산력발전이 사회주의의 본질인 것은, 그것이 사회주의 전 과정에 구현되는 필연적 요구이자 본질적 요구이기 때문이며, 사회주의의 어떤 일부 발전단계의 요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일찍이 존재했던 다른 어떤 사회제도도 갖추지 못했던 본질적 요구이다.

    예컨대 자본주의제도를 보면, 그것이 막 세워지는 초기에, 즉 자본가계급이 봉건계급을 전복키 위한 투쟁과정에 있던 아직 혁명계급이던 시기에, 새로운 생산력의 대변자로 생산력해방과 생산력발전에 일찍이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그 자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가 생산력 발전을 속박하고 방해한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것이 근본상 생산력 발전을 속박하고 방해하는 본질이 더욱 충분히 드러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의 속박과 생산력의 방해이며, 그 본질전개의 과정에서 더욱더 생산력발전을 속박하고 방해하며, 이것은 곧 자신의 멸망을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것이다.

    역사적 장기 고성장

    (이와 대비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30여 년 간의 고도성장을 보라. 이 기간 중국이 이룩한 연평균 9.8% GDP 성장의 신화는 앞으로도 수십 년 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사회주의 본질이 충분히 표현되고 있는 현실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볼 때 경제의 장기간 고속성장을 경험한 나라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2차 대전 후 19년간 연평균 9.2% 성장을 하였으며, 싱가폴은 20년간 연평균 9.9% 성장을 이룩하였다. 홍콩의 경우 경제고속성장기는 21년간으로 연평균 8.7%이며, 대만은 26년간으로 연평균 9.5%이다.

    또 이러한 세계적인 고속성장의 신화에 있어 우리나라의 경우를 빠트릴 수 없는데, 한국의 경우 경제고속성장기간은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긴 30년간으로 연평균 성장률은 8.5%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은 대부분 인구나 국가 규모면에서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경제성장의 특성 면에서 얼마만큼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인 주기적인 경제위기에서 벗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안정성’면에서 볼 때 훨씬 중국에 못 미치며, 이점에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의 26년간 연평균 8.7%의 고도성장 내에는 70년대 초반과 70년대 말-80년대 초의 두 차례 심각한 경제위기국면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천안문사태를 겪었던 1989년과 1990년의 GDP 4.1%와 3.8% 두 차례 ‘상대적’ 저성장 외에는 자본주의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거의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본질이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생산력을 부단히 해방하고 발전시키는 사회라는 점이다. 이 같은 사회주의 본질은 사회주의체제 성립 직후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지속적인 발전과정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눈에 더욱더 분명하고 선명해진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는 제도가 건립되는 초기에 생산력해방과 생산력발전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발전과 함께 그 역사시기 전체를 걸쳐서 부단히 생산력을 해방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우월한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할 것이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공산주의로 어떻게 해서 이행해 갈 수 있겠는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비교해보면, 자본주의는 그 운동과정에서 처음에는 생산력의 해방자요, 발전자로서의 역사에 나름의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나중에는 점차 생산력 발전을 속박하는 반동적 체제로 변모되어 갔다.

    즉 비록 일정한 조건하에서, 자본주의는 아마도 생산력을 발전시키기도 하였겠지만, 그러나 전체적 추세는 자본주의가 점점 더 생산력을 속박하고 방해하는 것이다.(현 세계 자본주의 수장국인 미국 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점을 부정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을 줄로 믿는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본질이 생산력을 속박하고 방해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이와 달리, 처음 탄생부터 시작해서 그 전 과정에 걸쳐, 마침내 공산주의사회로 이행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생산력을 해방하고 발전시킨다.

    또한 그렇게 하여야만 자신의 최종 목표인 ‘공산주의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발전하면 할수록 자본주의처럼 주기적인 경제위기로 날로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력 발전"이라는 사회주의의 이러한 본질은 더욱더 충분히 구현되는 것이다.

    부단한 개혁과 생산력 해방

    셋째, 등소평의 이 새로운 개괄은 사회주의의 본질이 생산력해방과 생산력발전의 통일이라는 것을 밝혀준다. 맑스주의는 시종일관 혁명은 ‘생산력해방’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과거 생산력해방을 논할 때, 이는 사회주의혁명이 구 사회제도를 전복하고 소멸시켜 생산력을 구제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내는 것을 주로 일컬어 왔다.

    사회주의 기본제도의 건립 이후에 대해서는 다만 ‘생산력발전’이 있을 뿐, 마치 ‘생산력해방’의 문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등소평은 사회주의 건설경험을 심도 깊게 총결산하면서, 사회주의 기본제도는 좋은 것이며 그것은 사회 생산력발전을 추진해 준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기본제도의 생산력 추진 작용은 각종 구체적인 하위제도(예컨대 경제제도‧정치제도‧문화제도 등)와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서 비로소 구현된다. 사회주의 기본제도 수립 이후에, 각종 구체적 제도의 수립과 완성은 어려운 우여곡절의 과정을 또한 경과해야 하며, 실천 가운데서 부단히 창조하고 개척해 나가야 한다.

    어떤 특정시기에 세워진 모종의 구체적 제도(즉 하위제도)는, 초기에 적합했을지라도 실천의 발전과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폐단이 생겨나고 그대로 두면 생산력발전을 속박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주의제도 하에서 생산력 발전은, 또한 "부단한 개혁과 이로부터 생산력을 해방시키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등소평은 말하기를, "사회주의 기본제도 수립 이후에도, 생산력발전을 속박하는 경제체제를 또 근본적으로 바꾸어가야 하며, 생기가 충만하고 활력 있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건립하고 생산력발전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개혁이며, 따라서 개혁은 또한 생산력해방이다. 과거에, 사회주의 하에서 생산력발전만을 논하고, 개혁을 통해 생산력해방을 해야 한다는 점을 논하지 않아서 불충분했다. 응당 생산력해방과 생산력발전 두 가지를 모두 논해야 완전하다."고 하였다.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론의 창조점은 바로 생산력발전을 논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생산력해방이 생산력발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전 과정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본질적 요구라고 인식한데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크게 심화시키면서 부단한 개혁수행에 대한 자각심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개혁은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

    (우리는 여기서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이미 3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왜 끊임없이 ‘개혁’을 외치고 또 실행해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부단한 ‘개혁’ 자체가 사회주의 본질적 요구인 것이다.

    즉 과거의 ‘계획경제’의 경직된 체제로부터, 현재 생산력 수준에 조응하는 ‘시장경제’로의 개혁, 또 시장경제 내에서도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통해 부단히 성장하고 있는 생산력발전에 적합한 생산관계와 상부구조를 의식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 농촌에서 일고 있는 변화를 들 수 있다. 개혁개방 초기 실시된 개인농가에 기초한 ‘농가청부제’는 그간 인민공사에 의해 질곡되었던 농업생산력을 해방시켜서 다음 단계인 도시개혁을 위한 안정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미 시장개혁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는 지금에 와선 농촌의 이 같은 소농경영체제는 이미 시대발전에 뒤처지는 것으로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인도 하에 중국농촌은 현재 서서히 ‘농업협동조합’의 체제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2006년 11월 ‘농업협동조합’이 법인으로서의 공식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입법안이 전인대 상임위를 통과한 이후로, 2010년 현재 전국적으로 약 20만개의 각종 농업협동조합이 생겨나면서, 향후 중국농업과 중국경제의 획기적인 구조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듯이, 중국사회의 변화는 매우 전방위적이다. 단순히 경제적인 외형뿐만 아니라, 사회/정치/문화 등 그야말로 전방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생산력 발전에 조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단하고 빠른 전방위적 개혁은 미국과 같이 부유한 국가에서 그간 소외되어 온 ‘4천만명’의 빈곤층을 의료보험 망에 포함시키고자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오바마의 ‘조그만 개혁’ 하나로, 사회가 그렇듯 분열되고 큰 진통을 겪었던 사실과 좋은 대조가 된다.

    나중에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각 이해 집단 간의 복잡한 타협으로 누더기 투성이인 채로 통과된 의료보험 개혁안은 미국이라는 현대 자본주의 수장국이 얼마만큼 동맥경화에 걸려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현재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사회정치문화 개혁 하나하나는 이러한 ‘의료보험’ 개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중대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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