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회주의가 아닌가?"
    2010년 12월 17일 09: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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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레디앙>에 보내온 필자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한국에서 지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몸을 담은 바 있으며, 현재 북경 인민대학 박사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 글은 중국 주류 학계와 정계의 사회주의관을 소개하면서, 필요에 따라 한국 상황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중국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차원부터 다양한 수준의 논쟁거리가 내포돼 있는 이 글이, 향후 한국사회와 정치적, 경제적 관계가 점차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중국의 현실과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이해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앞으로 4회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2.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개괄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개괄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등소평이 중국 인민을 이끌면서 문혁에 대한 뒷수습과 개혁개방을 수행하는 과정 중의 장기간 사색의 결과이다. 등소평이 ‘사회주의 본질’ 개념을 최초로 제기한 것은 1980년이며, 1992년에 이르러 명확히 개괄하기까지 무려 12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론이 강력한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우선 이 이론이 중국 인민의 사회주의건설의 현실 실천이라는 두터운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사유방식은 ‘실천에서 이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실천에서 이론으로’

이는 ‘이론에서 이론’이라는 형이상학적 방식과 비교가 되는데, 이러한 면에서 그의 이론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인식론적 요구를 만족시킨다.(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은 이론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라고 규정한다) 사회주의 본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등소평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경험을 총괄하고 현실을 분석"할 것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등소평이 현실에서 문제의식을 출발하여, "무엇이 사회주의가 아닌가?"라는 부정을 통해 "무엇이 사회주의인가?"라는 긍정에 도달하는 사유방식은 사회주의 본질을 밝히는 중요한 경로라는 점이다. 어떠한 현실도 모두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데, 중국 사회주의의 현실 역시 당연히 모순을 포함한다.(여기서 말하는 ‘모순’ 개념은 사물운동에 보편적으로 내재적인 특성으로서의 변증법적인 의미에서의 ‘모순’을 의미하며, 상식적으로 사용되는 ‘잘못된 것’ 또는 ‘나쁜 것’으로서의 의미가 아님)

그 중 ‘주요 생산수단의 국유화’나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제도’ 등의 ‘사회주의 기본제도’와 같이, 사회주의본질과 상응하고 일치하는 측면도 있지만, 또한 사회주의 본질과 상응하거나 일치하지 않고 심지어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요소들도 혼재되어 있었다. 예컨대 생산력 발전이 너무 늦다든지, 빈곤과 낙후 상태, 평균주의 등이다.

본래 사회주의는 정태적이고 응결된 것이 아니라, 운동발전 과정 속에서 그 자신의 본질을 충분히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사유는, 그 중점이 사회주의가 지금까지 이미 이루고 실현한 것들에 두어졌다라기 보다는, 어떻게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를 진일보 구현할 것인가에 두어졌다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듯 ‘본질’에 대한 사유과정이 초기에 심도 깊은 단계로 진입함에 따라, 등소평은 현실사회주의 중에는 사회주의 본질 요구에 부합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함께 섞여 있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것들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의 긍정적 본질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없으면 사회주의도 없다"

변증법적 사유방식에 능숙한 등소평은, 부정 중에 긍정을 포함하고 "부정은 곧 긍정"이라는 변증법적 원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부정명제의 형식으로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는 말하길, "빈곤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발전이 너무 늦는 것도 사회주의가 아니다", "평균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양극분화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없으면 사회주의도 없다"고 하였다.

또한 경직되고 폐쇄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사회주의를 발전시킬 수 없고, 외국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 역시 사회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며, 계획경제 또한 사회주의와 동일시 할 수 없다는 등의 지적을 하였다. 등소평의 이러한 ‘부정'(무엇이 사회주의가 아닌가)적 형식으로 나타난 주장이나 명제는, 형이상학적 부정이 아니라 실제적 내용이 충만한 변증법적 부정이다.

그는 한편에선 사회주의의 비본질적인 것을 ‘배제법(排除法)’에 의해 버리면서, 동시에 부정의 형식으로 긍정적 내용을 사고하며 표현하였다. 예를 들면, "빈곤은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는 말은, 당시에 사람들의 사상이 문화대혁명의 영향에서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귀를 얼얼하게 울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았다.

빈곤에 대한 부정은 곧 부유에 대한 긍정이고, 생산력 발전을 홀시하는 것에 대한 부정은 곧 사회주의가 반드시 생산력을 중시하고 발전해야 하는 것에 대한 긍정이다. 이 같이 보건데, 긍정과 부정은 사실상 등소평이 사회주의를 표현하는 것의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다. ‘좌’편향에 의해 혼란해진 당시의 사상적 상황에 직면하여, ‘부정’의 방식을 사용하였던 것은 더욱 혁명성과 비판성을 가졌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등소평의 위의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개괄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게 되면, 모두 5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언어가 매우 간결하면서도 내용이 풍부하다. 각각이 하나의 완전한 논술이면서도, 서로 간에 내부적 논리로 연결되고, 전체로서는 하나의 엄밀한 체계를 갖춘다.

"생산력 해방을 통한 생산력 발전"

등소평이 개괄한 사회주의 본질은 크게 두 개의 기본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 측면은 "생산력해방을 통해 생산력을 발전시킨다."이고, 두 번째 측면은 "착취를 소멸하고, 양극분화를 없애, 최종적으로는 공동부유를 달성한다." 이다.(후자는 "착취를 소멸하고, 공동부유를 달성한다."라고도 간략화 할 수 있다. ‘양극분화’는 착취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양측면의 개괄 속에는 또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들을 그 하위 범주로 포괄시킨다. 즉 , 한편으론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력’을 논하면서도, 다른 한편 사회주의 ‘생산관계’와 ‘사회관계’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근본임무’를 논하면서도 사회주의의 ‘근본목표’도 언급하고 있다. 또 사회주의의 ‘발전과정’을 논함과 함께 사회주의의 ‘최종목적’도 함께 언급하며, 사회주의의 ‘객관운동법칙’ 상의 본질적 요구를 논하면서도 또한 사회주의 ‘주체가치목표’상의 본질적 요구도 포함한다.

따라서 이 같은 규정은 맑스주의 역사 상 "사회주의본질관의 중요한 발전"이다. 아래에는 이상의 제 측면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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