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우월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2010년 12월 16일 1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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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레디앙>에 보내온 필자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한국에서 지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몸을 담은 바 있으며, 현재 북경 인민대학 박사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 글은 중국 주류 학계와 정계의 사회주의관을 소개하면서, 필요에 따라 한국 상황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중국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차원부터 다양한 수준의 논쟁거리가 내포돼 있는 이 글이, 향후 한국사회와 정치적, 경제적 관계가 점차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중국의 현실과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이해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앞으로 4회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 규정

    사회주의의 ‘기본임무’와 사회주의 ‘최종실현목표’, 이 두 가지 측면을 가장 잘 결합하고 있는 것이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 규정이다.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론은 현재 중국 이론계와 실천계의 주류적인 입장이며, 주지하다시피 지금까지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에 있어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진보운동이 진지하게 연구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등소평의 사회주의 본질론은, 그의 정치경력이 말해주듯 오랜 풍랑을 겪으며 단련된 대중적 지도자답게, 평범하고 소박한 표현을 빌리면서도 핵심을 잘 담아내고 있다.

    아래의 글은 주요하게 등소평의 사회주의관을, 그것의 정립과정과 배경을 곁들여 가면서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이 글의 내용은 <등소평이론 개론>, 중국인민대학출판사, 2002년판 중 "제3장 사회주의의 본질과 근본임무"를 참조하였다)

    1. 문제의식: 사회주의 ‘우월성의 표현’은 도대체 무엇인가?

    등소평은 사회주의 본질문제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의 사회주의 본질문제에 대한 탐색은 분명한 현실인식의 기초 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1978년 당시까지 이미 근 30년간 진행되어 온 중국 사회주의 건설의 실천 경험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현실은 어떠하였는가? 중국의 사회주의 기본제도 건립은 이미 일단락된 상태여서, 1949년 신(新)중국 건국 이래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당시까지의 30년간의 성과는 여러 면에서 볼 때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당의 지도사상 면에서의 오류와 ‘좌’ 편향적 사상의 파괴적 영향 때문에, 중국 사회생산력 발전은 완만해지면서 문화대혁명에 이르러선 심지어는 정체와 후퇴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인민의 생활수준은 장기간 제고되지 않은 채 적지 않은 지역이 극한 빈곤의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중국과 주변 자본주의 국가간의 경제문화 발전 방면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으며, 사회주의의 우월성은 전혀 발현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공산당의 제2세대 지도자로 등장한 등소평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세계과학기술 혁명의 새로운 국제정세와, 세계와 중국 간의 차이가 날로 벌어지는 국면에 직면하여, 중국의 지난 30년 사회주의 건설의 우여곡절과 교훈을 심각하게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등소평은 1980년에 언급하길"사회주의는 매우 훌륭한 것이지만, 그러나 만약 사회주의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정확한 정책을 채택하지 못한다면, 사회주의의 본질은 발휘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중국의 좌편향과 국내 일부 좌파진영의 호들갑

    그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사회주의의 현재적 특징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존재하고 발전하는" 내적 근거에 관해서라는 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일반적 비교가 아니라 사회주의가 어떻게 할 때 자본주의에 우월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주의의 우월성 즉 "사회주의 본질의 구현"은 도대체 어떤 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도대체 무엇이 사회주의의 우월성인가는 당시에 매우 혼란스런 문제였다. 당시 중국은 ‘좌’편향적 사상의 영향으로, 본래 사회주의 우월성이 아닌 것을 사회주의 우월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진정한 사회주의 우월성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하였다.

    (관념적인 ‘평등관’과 ‘이상주의’가 난무하고 있다는 면에서, 이 같은 특징은 현재 한국 진보운동 내 일부 좌파진영의 사정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현실 사회주의 건설의 지난 90여 년 간의 경험을 통째로 부정하면서, 역사적으로 확립된 ‘과학적’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 수준으로까지 후퇴시키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이를 ’21C 사회주의’니 무어니 하면서 무슨 새로운 발견인 양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고 있다)

    당시 이 방면의 혼란과 잘못된 관념들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단순한 "정신적 고상함"을 잘못 이해하여 사회주의의 우월성이라 여겼다. 사회주의 우월성은 정신적 측면에서도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사회주의 우월성이 단순히 정신적 측면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좌’편향 사상이 지배적인 시기인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비록 물질 면에선 자본주의만큼 풍부하진 않지만, 그러나 정신적으로 우세하고 정치적으로도 우세하기에, 이러한 우세에 근거해서 생산력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천진난만한 생각들

    이것은 얼마나 천진난만한 생각인가! 이 같은 사상의 지도하에, "영속혁명"이니 "무산자를 일으켜 세우고 자산가를 멸하자"라든지, "정치작용을 확대하자" 등의 구호를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의 근본임무로 삼았고, 그 결과 이 같은 실천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욱 혼란스럽게 되어갔던 것이다.

    둘째, "一大二公", 즉 무조건 규모가 크고 국유화 정도가 높을수록 사회주의 우월성을 구현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 사회주의 생산관계의 발전수준, 특히 그중 생산수단의 공유화 정도는 본래 생산력 발전수준에 의거하여 확정해야 하는데, 그러나 과거 중국은 정반대였다.

    생산력 발전에 힘을 기울여 그를 통해 생산관계의 변혁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생산력 발전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생산관계를 부단히 변혁하여, 공유제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회주의 우월성이 더욱 잘 구현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생산관계와 생산력 수준이 서로 괴리되어, 생산력 발전이 엄중히 방해받거나 심지어는 파괴되기까지 하였다.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결합체" 등 현재 일부 한국 좌익 정파들 사이에서 제출되고 있는 강령이 바로 이와 같은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의 생산력 기반을 고려함이 없이, 맑스가 ‘성숙한’ 공산주의사회를 전제로 제출한 표어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제출하는 것만으로도 과거 ‘계획 사회주의’의 한계가 극복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미 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자치사회주의 경험이 이들보다 훨씬 일찍이, 그리고 훨씬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십 년 간에 걸쳐 대규모적인 실험을 통해 좌절을 겪었음에도,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이들 한국의 ‘좌익 공상주의자들’에게는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황당한 이론과 불철저한  인식

    셋째, 평균주의를 사회주의 우월성으로 잘못 이해하였다. 많이 노동하면 많이 얻고 적게 일하면 적게 얻는 것을, "보수를 바라고 하는 노동"이라는 둥 자본가계급의 관점으로 간주하고 심하게 비판하였다. 이 같은 평균주의의 결과 노동대중의 적극성은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일하거나 일하지 않거나, 많이 일하나 적게 일하나, 일을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모두 매한가지로 취급되어, 결국 함께 낙후되고 함께 가난한 길로 찾아들게 되었다.

    넷째, ‘보편적 빈곤’을 사회주의 우월성으로 오해하였다. 당의 사상적 지도상의 오류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는데, ‘4인방’은 "차라리 가난한 사회주의를 원할지언정 부유한 자본주의는 거부한다."라는 황당한 이론까지 내걸고 나왔다.

    일순간에 ‘부유함’은 자본주의의 대명사이자 동의어가 되어서 누구도 감히 ‘부유함’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게 되었다. 그 대신 ‘가난’은 사회주의의 대명사이자 동의어가 되어, 가난한 사람은 곧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는 웃지 못 할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무엇이 사회주의의 우월성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렇듯 많은 오해와 혼란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록 중국 내에 이미 오래 전에(정확히 말해서, 신 중국이 성립한 1949년부터 1956년까지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민주주의사회’에 속하며, 중국은 1957년을 경계로 사회주의 기본개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60년대 초에는 이 작업이 일단락된다) 사회주의 기본제도가 건설되었음에도,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또는 "그 본질적 요구는 무엇인가?"에 대해 여전히 인식이 불철저함을 반영한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들은 사회주의 건설에 엄중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의미한다. 즉 사회주의 기본제도를 건립하였다고 해서 사회주의 우월성이 곧바로 자동적으로 발휘되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사회주의의 본질적 인식을 완전히 깨달았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이라는 대혼란이 끝난 후 그 뒷수습과 이후 전면적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등소평은 부단히 다음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반복해서 사고하고 문제제기를 한다. 즉 도대체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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