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의 예산주권운동 필요한 때"
        2010년 12월 15일 0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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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정부가 3년 내내 예산안을 날치기했다가 올해 된통 걸렸다. 이번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어찌나 급하게 처리했는지 여당 공약 사항인 불교계의 템플스테이 지원금도 빼먹었다 한다. 실세 정치인의 지역구 예산은 꼼꼼히 챙기면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증액된 80개 사업, 1조원의 예산은 거의 삭감한 것을 보면 템플스테이 건이 마냥 ‘실수’인 것 같지는 않다. 자기 마음대로 예산을 정해도 큰 문제 없을 거라는 정부와 여당의 오만함이 이번 사태의 뿌리이다.

    그런데 단지 오만함만이 문제는 아닌 듯하다. 재정운용에 대한 정부 나름의 정치전략도 날치기 무리수를 이끌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몇가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 2011년 예산안 통과 당시 국회 모습 (사진=정상근 기자)

    나라살림을 제 곳간처럼 여기는 정부

    첫째, 대한민국 재정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해 있다. 정부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돈이다. 행정권력이 이 돈의 사용처를 정하려면 국회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계속 날치기다. 이번에는 날치기 예산의 세부 내역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부와 한나라당이 마음대로 예산을 깎고 올렸다. 이는 나라살림을 사유화하는 행위다. 이렇게 사용될 거라면 국민이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 지금 이명박정부는 정말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다.

    정부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공기업을 편법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국가재정체계를 왜곡시키는 일이다. 한국수자원공사를 통한 사실상의 분식회계가 대표적 사례다. 4대강사업은 국가하천을 관리하는 지출성 재정사업으로,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공기업이 맡을 사업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수자원공사에 사업비 8조원을 떠넘겼다. 이 금액만큼 재정적자, 국가채무는 줄어들 것이다. 현재 1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지닌 LH공사도 세종혁신도시 건설, 미군기지 이전, 산업단지 개발 등 사실상 정부재정이 감당해야 할 몫을 대신 떠안고 있다. 이런 판국에 정부가 발표하는 재정수치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재정 수치, 예산 결정과정을 믿을 수 없다면 재정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재정지출 막고 보자는 속셈에는

    둘째,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재정지출이 지나치게 통제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경상성장률 7.6%, 정부총수입 증가율을 8.1%로 전망하면서도 정부총지출 증가율은 5.5%로 낮게 잡았다. 그만큼 재정수지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인데, 이러면 정부총지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년 정부총지출 309.1조원을 법령에 따라 자동으로 정해지는 의무지출 몫과 정부 정책의지가 반영되는 재량지출 몫으로 구분해보면, 대략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 이 중에서 고령화에 따른 복지 자연증가분 등을 포함한 의무지출은 약 9% 늘어나지만, 재량지출은 3% 증가에 머물고 그마저도 인건비 부분을 제외하면 2.5% 증가에 그친다. 내년 물가상승률 2.6%를 감안하면 재량지출은 사실상 동결되는 셈이다. 이명박정부 중기재정운용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 재량지출 증가율은 더욱 낮아져, 2013년 0.5%, 2014년 0.7%에 불과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기간의 물가상승률이 2~3%로 예상되므로 정부의 재량지출은 절대금액으로도 거의 동결될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정부의 예산 운용에서 드러나는 핵심은 ‘지출 통제’이다. 그중에서도 복지분야 지출이 최대 희생양이다.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1조원가량의 증액분도 이번 날치기에서 여지없이 사라졌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내년 복지분야 지출이 올해 81.2조원에서 86.4조원으로 6.3% 증가하며, 정부총지출 대비 비중도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고 변명한다. 맞다. 역대 최고이다. 하지만 이는 분모에 해당하는 정부총지출의 증가율이 5.5%로 워낙 낮다보니 발생한 착시현상이다. 여기에는 내년 복지 증가율 6.3%가 경상성장률 7.6%에 못 미친다는 것, 즉 GDP 대비 복지 비중이 내년에 하락한다는 사실이 가려져 있다.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복지는 정부총지출 대비 비중이 아니라 한해 부가가치 총량인 GDP 대비 비중이다.

    부자감세를 둘러싼 여권의 ‘약속 대련’

    셋째, 이명박정부에서 재정건전성 문제가 제기되는 근본 원인은 부자감세다. 내년에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통제함에도 재정적자가 25조원에 달한다. 내년 경상성장률이 7.6%로 외형상으로는 금융위기도 벗어났는데 말이다. 2008년 감행된 부자감세가 계속 우리의 나라살림을 구속하고 있다. 혹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제안대로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가 유보되더라도 매년 20조원 이상의 세수 감소는 여전히 피할 수 없다. 내년 재정적자의 대부분은 부자감세에서 비롯한 것이다.

    올해 예산안 논의에서는 4대강사업이 중심을 차지하면서 부자감세 원상회복이라는 이슈가 전면에 부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자감세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기 위해 내세운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철회’를 두고 한나라당 내부에서 일종의 ‘약속 대련’이 벌어졌다. 20조원 이상을 감세하고 이 중에서 1조원가량을 철회하는 것으로 부자감세 비판에서 빠져나가려는 수순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부자감세 후속 논의는 종결되지 않고 다시 해를 넘어갔다. 내년에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부자감세를 전면 백지화하고 복지 증세를 주창하는 본격적인 대응이 준비되어야 한다.

    억지로 맞춘 재정균형, 과연 업적이 될까

    넷째, 2012년 대선에서는 재정건전성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예상된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013년경에는 이명박정부가 공언한 재정균형이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부자감세로 재정수입에 큰 구멍이 생겼지만, 매년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통제해왔기 때문이다. 이 의제는 2013년 예산안이 제출되는 2012년 가을, 즉 차기 대통령선거의 한복판에 등장할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집권 초기 세계를 강타했던 금융위기 쓰나미에 주요 나라들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데 한국은 자신의 임기 5년을 거치면서 재정균형을 달성했다며 이를 치적으로 내세울 것이다.

    이같이 이명박정부가 무리수를 두면서 재정지출을 옥죄고 날치기까지 감행하는 배경에는 향후 재정균형 달성 효과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이 자리한다. 이것이 이번에 사고를 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명박정부가 재정균형 치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이 취약한 복지지출을 계속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자감세로 발생한 재정건전성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을 온전히 국민이 치르고 있다. 부자감세만 원상 회복하면 손쉽게 정리되는 일을 말이다.

    예산안 날치기를 매번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마음이 침통하다. 세금이 불투명하게 사용되었을 때 닥칠 수 있는 후폭풍의 무서움을 정부는 모르고 있다. 이번 날치기 사태가 이명박정부의 반서민적 재정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재정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한 시민의 예산주권운동이 필요한 때다. 우선 부자감세를 원상 회복하고 이를 재원으로 삼아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구체적 방안이 담긴 수정예산안을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데서 시작하자. 2012년 대선에서 전개될 재정균형 정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납세자인 시민이 대안적 참여예산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의 예산운용에 맞서야 한다. 분통이 터지지만, 예산조차 정부와 국회에 믿고 맡길 수 없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시민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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