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마트 막았더니, 이제 엉뚱한 자가"
    By mywank
        2010년 12월 11일 12:0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상생법 개정안)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해 지난 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기존 법 적용 대상인 직영점뿐만 아니라, 가맹점 형태의 기업형 슈퍼마켓(SSM)도 사업조정 신청이 가능해졌다. 가맹점 형태의 SSM의 경우, 대기업 유통업체의 투자 지분(개점 시 소요비용)이 51% 이상인 곳만 법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 제3조(중소기업의 범위)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수 200명 미만 또는 연 매출액 200억 이하’의 (유통)업체는 중소기업으로 분류돼, 앞으로도 상생법 개정안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결국 대기업 유통업체의 SSM과는 달리, 중소기업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SSM은 여전히 사업조정 신청이 불가능하다.

       
      ▲중소기업 유통업체 SSM (주)세계로마트’ 서울 정릉점 모습. 매장 크기가 일반적인 대기업 유통업체 SSM보다 크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동안 SSM 문제와 관련해, 홈플러스·롯데·이마트·GS 등 대기업 유통업체 슈퍼마켓들이 골목 상권 피해의 ‘주범’으로 인식돼 왔지만, ‘동네 슈퍼’의 상호를 연상케 하는 ‘세계로마트’는 대기업 유통업체 SSM 못지않게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는 대표적인 중소기업 유통업체의 SSM이다.

    상생법에서 제외된 중소기업 SSM

    김문수 민주당 서울시의원(성북 2선거구)으로부터 제공받은 서울시 현황조사 자료(지난 9월 기준)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5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로마트’의 양연주 대표는 전체 매장을 ‘연 매출 200억 이하’(중소기업 기준)의 2개 개인 법인으로 나눈 상황이다. 이를 두고 지역 상인들과 상인단체들은 “사업조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양 씨 소유의 ‘세계로마트’는 (주)세계로마트 방학점(본점·연 매출액 89억 원·종업원 31명)·정릉점(지난 9월 개점으로 연 매출액 자료 없음·종업원 25명)과 이름을 조금 바꾼 (주)세계로더블유스토어 홍제점(본점)·광명점·청주점(3개 점포 총 연 매출액 151억 원·종업원 44명)이 있다. 매출이 확인되지 않은 정릉점을 제외하더라도 두 법인의 매출을 합치면 200억 원이 넘는다.

    (주)세계로마트 정릉점 관계자는 지난 8일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방학점보다 매출이 많지 않지만,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결국 ‘세계로마트’가 법인을 나누는 ‘편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사업조정 대상인 대기업 유통업체의 법적 기준(연 매출 200억 이상)을 충족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양연주 대표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상인은 "양 씨는 서울 마장동에서 ‘고기 장사’를 시작한 뒤, 마트에 입점한 정육 코너들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후 정육 코너들을 접고 마트 사업에 뛰어든 인물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관련 업계 쪽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세계로마트’ 정릉점 내부. 일반 식료품을 비롯해, 정육·생선·반찬·채소·과일 등 인근 정릉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품목들이 구비돼 있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또 ‘세계로마트’가 ‘동네 슈퍼’로 보기 어려울만큼의 큰 몸집을 지닌 점도 논란 거리이다. 대다수 대기업 유통업체의 SSM 매장 규모가 70~80여 평(231m²~264m²·서울시 조사 결과) 정도인데 반해, (주)세계로마트의 경우 방학점이 약 200평(약 660m²), 정릉점은 178평(589.6m²) 규모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주)세계로마트 정릉점은 전국에 있는 ‘세계로마트’ 중 가장 최근에 문을 연 곳이다.

    법인 나눠 중소기업 된 ‘세계로마트’

    ‘중소기업의 위장탈’을 쓰고 골목 상권을 위협하고 있는 ‘세계로마트’의 실태를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3일 저녁 (주)세계로마트 정릉점(서울시 성북구 정릉2동 소재) 현장을 찾아가봤다. 이날 퇴근 시간을 맞아 매장에는 손님들로 북적였고, 5~6대 정도 주차가 가능한 공간에서는 서로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이들 간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세계로마트’ 직원들은 무료 배송을 위해 노란색 비닐봉지에 담긴 상품들을 1톤 트럭에 쉴 새 없이 싣고 있었고, 매장 전면에 붙은 ‘우리 소 매일 2마리, 할인 행사 50%’라는 글귀가 적힌 대형 펼침 막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해 보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일반 식료품을 비롯해, 정육·생선·반찬·채소·과일 등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정릉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품목들이 구비돼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근처 시장을 찾지 않아도 ‘세계로마트’ 한 곳에서 장 보기가 가능했다.

       
      ▲’세계로마트’와 가까운 거리에는 정릉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한편 (주)세계로마트 정릉점 자리는 최근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직영점)가 입점을 시도했지만, 지난 7월 31일 지역 중소상인들의 사업조정 신청으로 인해 지난 8월 초 영업이 일시 정지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상인들의 반발로 인해 사업조정에 진전이 없자 이마트 측은 입점을 포기했고, 그 틈을 노려 ‘세계로마트’가 지난 9월 이곳에서 매장을 차리게 된 것이다.

    이마트 SSM 막아내자, 중소 SSM 입점

    ‘세계로마트’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었다. 이날 세계로마트 부근에서 만난 한 여성은 “전반적인 가격은 시장에 비해 싼 편은 아니지만, 차를 댈 수 있고 한 곳에서 장을 다볼 수 있어 편리하다”고, 다른 여성은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난방 시설이 잘 갖춰진 마트 같은 곳에서 장을 보는 게 좋다. 밖에서 추위에 떨며 오래 있기 어렵지 않느냐”고 말했다.

    ‘세계로마트’ 오픈 이후, 직격탄을 맞은 곳은 정릉시장에 있는 영세 슈퍼마켓들이다. 이미 이곳의 슈퍼마켓 2곳이 폐업하는 등 그 위력이 골목 상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정릉시장에서 ‘그랜드할인마트’를 7년째 운영하고 있는 박은호 사장(46)도 위기를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세계로마트 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 때문에, 이 동네에서 ‘세계로마트 박사’로 불리기도 했다.

    박 사장은 “’세계로마트’가 들어온 이후,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자들이 정릉시장 주변을 잘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에 비해 유동 인구가 줄어들면서 가게 매출이 이전에 비해 60% 정도 떨어졌다”며 “상품의 회전이 잘되지 않으니까 상품의 질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되고 있다. 결국 소비자들이 새로 들어온 상품이 많은 세계로마트를 더 찾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정릉시장 안에 있는 영세슈퍼마켓 ‘그랜드할인마트’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지난 8월 지역 상인들과 함께 (주)세계로마트 정릉점을 상대로 사업조정 신청을 냈지만, 당시 서울시 측은 “(주)세계로마트는 ‘(연) 매출액 200억 이하’로써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해당됨으로 사업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무늬만 동네 슈퍼, 골목상권 초토화”

    박 사장은 “’세계로마트’는 무늬만 ‘동네 슈퍼’이지, 그 실상은 대기업 유통업체 못지않은 조직력을 갖춘 슈퍼이다. 편법적으로 사업조정을 피하기 위해 법인을 나눈 상태이지만, 모든 법인의 대표는 양연주 씨라는 게 확인됐다”며 “매장 크기도 일반적인 대기업 유통업체 SSM보다 커서, 골목 상권을 초토화시키고 엄청난 부를 쌓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세계로마트는 자체적인 ‘(정)육가공 회사’도 갖고 있다. 그래서 거의 매일 같이 매장에서 정육 세일을 하고 있다”며 “세일 품목은 주변 정육점 시세보다 40~50% 정도 저렴하기 때문에, 벌써 정릉동에 있는 정육점이 3곳이 폐업한 상태”라며 다른 상인들의 피해도 전했다.

    이런 위기의식은 단지 박 사장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정릉시장에 있는 ‘하나마트’의 직원 유영 씨(43)는 “이마트 슈퍼를 겨우 막으니, 그것과 비슷한 슈퍼가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세계로마트가 입점한 이후 가게 매출이 많이 떨어졌고, 시장 주변을 다니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대기업만 골목상권 피해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랜드할인마트’ 사장인 박은호 씨가 매장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정릉시장에서 8년째 생선 가게를 하고 있는 임 아무개 씨(56)도 “지난해는 바빠서 3~4명 직원을 두고 장사를 했는데, 지금 내가 바쁜 것처럼 보이느냐”고 반문하며 어려운 처지를 설명했다. 이날 찾아간 정릉시장은 손님들로 북적이던 ‘세계로마트’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유통법 개정안도 대책 못 돼

    한편 지난 3월 ‘인정시장’(법적 기준에 부합하는 점포수 50개 이상의 중소규모 전통시장)으로 지정된 정릉시장은 (주)세계로마트 정릉점과 직선거리로 500m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된 전통시장 반경 500m 내에 대규모점포(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직·가맹점 SSM)의 입점을 제한할 수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이곳에서 적용될 수 있을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성북구청(구청장 김영배) 측도 정릉시장을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로마트’처럼 중소기업 유통업체에서 운영하는 SSM은 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지난달 2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통법 개정안도 지역 상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그동안 대기업 유통업체 SSM 문제만 집중적으로 공론화된 나머지,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또 다른 피해를 예상하지 못해 발생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중소 SSM 규제 조례를 통과시킨 광주시의회 모습 (사진=광주시의회 홈페이지) 

    이런 법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지방정부 차원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광주시의회(의장 윤봉근)는 지난달 11일 전국 최초로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500m 내에서 일정 규모(500㎡·151.5평) 이상의 중소기업 유통업체 SSM의 입점을 제한하는 ‘광주시 대규모점포 등의 등록 및 조정조례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달 15일부터 이 조례안이 시행되고 있다.

    광주시, 자체조례로 중소 SSM 규제

    광주시(시장 강운태) 집행부가 발의한 관련 조례안을 살펴보면, 규제 대상으로 대기업 유통업체의 대규모점포(대형마트), 준대규모점포(SSM)뿐만 아니라, ‘일반 준대규모점포’를 명시한 점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 조례안의 제2조 3항은 ‘일반 준대규모점포’를 “매장 면적의 합계가 500m²(151.5평) 이상 3,000m²(909평) 미만 점포로, 대기업 유통사업자가 아닌 자가 운영하는 점포를 말한다”고 규정했다. 즉 ‘세계로마트’와 같은 중소기업 유통업체의 SSM도 규제 대상인 것이다.

    지난 9월 (주)세계로마트 정릉점(589.6m²·178평) 입점 전 이 조례안이 서울시에서도 시행됐으면, 정릉시장 반경 500m 내에 있는 해당 매장의 입점 제한이 가능했었다. 서기식 광주시의회 경제정책과 주임은 10일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대기업 SSM이 아니더라도, 골목 상권이 잠식당할 수 있다. 아직 광주시는 피해를 주는 중소 SSM은 없지만,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조례를 제정했다”고 밝혔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기획실장은 “현재 생생법 및 유통법 개정안에서 ‘세계로마트’와 같은 중소기업 유통업체의 SSM을 규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방정부 차원의 조례 제정을 통해, 중소기업 유통업체 SSM 규제에 나선 광주시의 모델은 바람직하다”며 “앞으로 광주시뿐만 아니라, 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사이에도 ‘상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