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도망치고, 매일 돌아온다, <공장>
    By 나난
        2010년 12월 10일 01:4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회에 96~97총파업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는지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87년 투쟁이 후 10년 만에 전국적 총파업을 맞게 된 때입니다.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전국적 총파업으로 일어섰고, 지역별, 단위 기업별로 파업을 하면서 조직적으로 결합했습니다.

    IMF 경제위기와 노동문화단체

    총파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비판이 있긴 했지만, 이 총파업을 계기로 민주노총은 사회개혁세력으로, 시민사회의 중요한 조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이 총파업이 끝난 후 97년 봄부터 여름까지 노동문화단체 대표자회의를 중심으로 전국을 돌며 총파업 과정에서 드러난 문예성과를 모아내는 작업도 이루어졌지요. 저도 광주와 전주 등 지역을 순회하며 당시 제작된 선전물과 사진, 다양한 프로그램 자료 등 노동자들의 문예적 성과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97년 대통령 선거 때 노동자 후보로 국민승리 21의 권영길 대표가 출마를 했었고, 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한국사회는 엄청난 경제 위기를 맞이합니다. 건설사들이 넘어가고, 자동차 공장도 경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자본의 중복-과잉투자, 부실경영이 빚어낸 엄청난 경제 위기는 IMF 구제금융을 불러왔고, 이 모든 짐은 노동자 민중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습니다.

    은행권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줄줄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의 칼날을 맞고 직장을 잃은 채 거리로 내쫒깁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깨져버린 행복, 집나온 가장, 비관자살’ 등등의 파괴된 삶을 보도했습니다. 국가차원의 대책위가 꾸려지고 국민들은 너도나도 앞 다투어 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공공근로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자를 구제하겠다고 했지만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답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꽃다지>는 그 해 3월부터 거리에 나가 공연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예술은 위기를 남들보다 먼저 감지해 이를 공감하게 하고, 또 반보 앞서 나가 삶의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로에서, 서울역에서 희망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며, 같이 힘을 내자고 말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노동문화단체를 비롯한 예술인들도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고, 노래도 많이 창작되었습니다. 노동자문화는 늘 위기의 시대, 투쟁을 통해 더 많은 창작물이 나오고 또 대중성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거리공연들이 지속되며 성과들이 쌓이자, 99년에는 몇 년 만에 ‘노래판굿 꽃다지’가 제작되어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연영석 공연 모습. 

    늦깎이 신인가수 연영석

    이런 활동 중 돋보인 사람이 바로 민중가요계의 늦깎이 신인가수 연영석이었습니다. 연영석은 98년 6월에 1집 테이프 ‘돼지다이어트’를 발매하여 많은 이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요. 가수로 무대에 서는 것을 어색해하고, 어눌한 말투와 무대 매너가 그를 매력적이고 진솔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활동 초반, 어디 가서 공연비라도 받으면 미안해하며 음반을 잔뜩 기증하고 오기도 해 사람들에게 걱정 어린 소리를 듣기로 했던 그였습니다.

    연영석의 노래는 곡은 물론이지만 가사도 탁월했습니다. 시대 정서를 잘 표현하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을 직설적으로, 때론 비유적으로 기가 막히게 잘 표현했습니다. <돼지 다이어트>, <칼국수와 바카스>, <나는 부품>은 그야말로 98년 IMF 구제금융 상황을 너무나 잘 표현한 곡들입니다.

    하지만 연영석의 노래는 그 시절 노동자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못했습니다. 기존의 노동가요들과 비교해 조금은 낯선 질감이었던 것이지요. 오히려 활동가들에게 인기를 먼저 얻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노동가요를 창작하고 보급하던 전문 집단에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고, 또 즐겨 불린 노래였습니다. 특히 <엄마 미안해>는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영석은 다양한 투쟁 현장과 결합하고, 또 스스로를 문화노동자로 소개하며 기존의 단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대하며 활동을 펼쳤습니다.

    창작 작업도 꾸준히 진행, 2001년 <간절히>, <공장>, <노란선 넘어 세상> 등이 수록된 2집 [공장]을 발매하고, 2005년에는 3집 [숨]을 발매합니다. <코리안드림>, <꼭두각시>, <나약해>, <숨> 등이 수록된 3집 음반은 제 3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심사위원의 전원일치로 특별상을 받았답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연영석의 노래 중에서 2집 타이틀 곡인 <공장>을 함께 들어볼까요?

     

    공장
    연영석 글, 곡

    너도 몰래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은 익숙하다.
    반복 속에 반복된다. 시간 속에 반복된다.
    까도 까도 똑같은 나 까도 까도 똑같은 내가
    자꾸 자꾸 생겨난다. 자꾸 내게로 다가온다.
    빠르게 낯설게 때론 너무도 당연하게
    자꾸 자꾸 밀려온다. 자꾸 자꾸 넘쳐난다.
    능숙한가. 신속한가. 필요한 만큼 유연한가.
    시간 속에 맞춰가도 나는 네게서 밀려난다.

    넘쳐도 점점 줄어간다. 넘쳐도 점점 죽어간다.
    넘쳐도 점점 줄어간다. 넘쳐도 점점 죽어간다.

    나는 매일 도망친다. 나는 매일 돌아온다.
    죽고 싶다가 살고 싶다. 모든 것은 반복된다.
    돌아보면 돌아갈 만하다. 살아보면 살아갈만하다.
    반복 속에 내가 있고 그런대로 돌아 갈만하다.
    빠르게 낯설게 때론 너무도 친숙하게
    시간 속에 반복 속에 모든 것은 당연하다.
    답답한가. 궁금한가. 살아가기에 막막한가.
    시간 속에 반복 속에 살아보면 살아갈만하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