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정상인'이 남기고 간 것들
        2010년 12월 10일 12: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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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 돌아가신 분 앞에서는 "슬프다"는 말을 필수적으로 하다싶이 많이들 합니다. 그런데 굳이 이와 같은 사회적 강박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며칠 전에 리영희 선생님의 별세 비보를 처음 접했을 때에 저는 정말 아주아주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꼭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슬픔도 아니었습니다.

    리영희 선생의 불교적 생사관

    1999년에, 리영희 선생님을 처음 만나뵙게 된 뒤에 제가 알게 된 리영희 선생님은 이미 생사에 거의 완전히 초탈하신 분이셨습니다. <금강경>을 늘 봉독하시고 生도 死도 결국 물거품이자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몸에 배신 리영희 선생님으로서는, 이 사바세계를 떠나시고 또 나은 세계를 향하시는 것은 그렇게 두렵고 힘든 "歷程"은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제 자신에게 바라는 바 중의 하나는, 리영희 선생님 만큼은 입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까지도 불교적 생사관을 익혀 生에 대한 욕망도 死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궁금증도 벗어던진다는 것입니다.

    좌우간, 제가 지금 슬픈 것은 또 다른 세계에서 많은 인연들과 다시 조우하시게 된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건 아니죠. 우리 비정상적 세계를 밝게 비추어주셨던 몇 안되는 진정한 ‘정상인’ 한 분이 우리를 떠나셨기에,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집단 정신병들이 더 빠른 속도로, 더 독하게 우리를 잠겨버릴지도 몰라서 슬프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읽은 사람들은 아마도 다 찬성하시겠지만, 리영희 선생님의 『歷程』이라는 자서전적 에세이 모음은 사실 한반도 현대사의 진실을 알고픈 사람에게 꼭 필독서가 돼야 할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과학적 사회분석법을 휘두르신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 ‘진보적 이념’의 각도에서 이 책을 쓰신 것도 아닌데도,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온갖 개인적, 집단적 환상들을 버리고, ‘진리, 오로지 진리, 진리만’을 추구하셨던 ‘깨인 정신’의 소유자이신 리영희 선생님께서 그가 본 현대사의 진리를 이 책에 아낌없이 담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때로는 아주 무섭고, 때로는 우리로서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망각하고 싶은 진리죠.

    깨인 정신의 소유자

    예를 들어서 1941년에 일본인 학교 교장이 조선인에게 대미선전 포고의 천황 칙어를 읽어주는 장면(33면)을 한 번 더 깊이 읽어보세요. 나이 든 조선인들이야 ‘전쟁’이라는 단어의 섬뜩함에 억눌려 침울한 표정이었지만, ‘만세’를 불렀던 젊은이들, 그리고 중국 대륙을 석권해 아시아에 그 패권을 굳힐 것 같은 ‘무적 황군’에 대한 자신을 포함한 다른 소년들의 흠모적 환상 등을, 리영희 선생님께서 잔인하리만큼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제국의 전쟁을 열렬히 환영하는, 영혼을 빼앗긴 식민지인…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지워버리고 싶은 무서운 기억이지만, 이 기억을 반성하지 않고 지워버리면 이 역사가 또 너무나 쉽게 반복될 수 있다는 게 또 하나의 무서운 진리입니다.

    지금 미제국과 반쪽짜리 준(準)제국 일본에 보조를 맞추어 반북 히스테리를 부추기는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을 보십시오. ‘무적 미군’이 ‘이북 빨갱이 집단’을 쉽게 박멸하고 중국을 그 위엄으로 굴복시킬 것이라고 순진히 믿는 그들은, "전쟁을 불사한다"는 반북 강경 노선이 결국 동북아 전체를 다시 한 번 폐허로 만들 수 있는 커다란 패권 충돌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미 鬼畜 박멸을 위한 聖戰" 조칙 반포에 만세를 불렀던 얼간이들과는 도대체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대한민국의 보수계를 석권하고 있는 또 하나의 – 약간 덜 독한 – 집단정신병은 소위 ‘건국 열풍’입니다.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경제성장으로 우쭐해지고 자존심쯤이나 세워보겠다는 남한의 ‘오야붕’들은, 혁명적/반제국주의적 과거를 내세우는 이북과의 이념경쟁 차원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약간 다듬어 미화해버려는 셈이죠.

    일제 때에 총독부에 붙어 조선 노동자의 고혈을 짜냈던 것도 다 ‘문명과 나라 발전을 위한’ 것으로 둔갑되지만, 특히 "자유진영의 선두자인 미국을 위해서라면 제3세계대전을 일으켜 한국을 다 희생시켜도 된다"고 다짐하곤 했던 그 놀라운 충성심의 소유자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게 중점 중의 하나입니다.

    닥터 리와 다카키 마사오

    영어에 미친 세상에 이승만의 ‘퍼펙트 잉글리시’에 홀려서, 실제 노동자들을 기계로 부려 성장을 이룬 박정희보다 오히려 그 ‘프린스톤대 박사’를 자꾸 앞에 내세우는 것인가요? 다카키 마사오의 ‘촌스러운’ 일어에 비해 ‘닥터 리’의 ‘액센트리스 잉글리쉬'(accentless English)는 아무래도 ‘어륀지’ 세상에 더 맞는 부분은 있겠지요.

    하여간, 본인이 제대로 읽을 줄 몰랐던 불어와 나전어 문헌들을 다 인용하면서도 조선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도 않았던 학위 논문(제가 프린스톤대에 가서 그 논문을 찾아 복사했는데, 그 작성, 통과 경위는 아주 아주 궁금하기도 합니다… 차후 연구과제 중의 하나죠)으로 박사님이 된 ‘건국의 아버지’, ‘민족의 태양’, ‘예수와 석가보다 더 겸손하신 분'(다 실제로 그 때에 사용했던 호칭들임)께서 워싱턴에 가서 남한에서 꽃핀 ‘다원적인 제페르슨 식 민주주의’를 선전했을 때에 닥터가 될 만한 돈이 없는 중생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 궁금하시면 『歷程』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초기의 대한민국을 몸으로 겪으신 리영희 선생님께서 책에서도, 구두로 그 회상들을 공유하셨을 때에도 늘 지적하셨던 것은 바로 ‘무한한 국가 폭력’이었습니다. 반대자를 학살해 그 가족을 연좌제로 옭매어 평생 괴롭히고, 약한 자를 군에 징집해 무의미한 동족상잔의 총알받이로 이용하고, 미제국의 원조든 국가 자금이든 다 도둑질 대상으로 만들어 지배층의 개인적 치부의 자원으로 삼게 하는 것은 폭력 정치와 ‘도둑 정치'(cleptocracy)의 전형인 초기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아픈 대목 중의 하나라면, 1950~51년 ‘국민방위군’ 이야기입니다. 인민군에 밀렸을 때의 ‘국군’은 후퇴할 때에 지나가는 지역마다 장정들을 모조리 다 징집(사실상, 국가적으로 납치)해버렸는데, 방위군으로 강제평성된 그 장정들에게 지급될 식량 등을 그 잘난 ‘지도층’이 다 훔쳐가는 바람에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가까운 징집 피해자들이 굶어죽고 만 것입니다.

    차라리 강도를 더 방불케 하는 ‘국군’ 장교에 건넬 몸값이라도 있는 집 장정은 살고, 없는 집은 납치형 징집을 당해 고통스럽게 아사 당하고 만 것이죠. 『歷程』에서 징집이라는 이름의 국가적 폭력이 얼마나 약자들을 골라 괴롭혔는가에 대한 자세한 진술들은 대단히 많습니다.

    국가 폭력의 적나라한 실상

    예컨대 생존률이 미미한 그 잔혹하기 끝이 없는 향로봉 탈환 작전에 투입된 신입병 약 백 명에게 "중학교 이상 나온 사람 있느냐"고 물어보신 리영희 선생님은, 손 든 사람 3명 만 보셨다고 하셨습니다.(218면) 교육을 살만한 집안에서는 그 장정들을 돈으로 빼주고,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힘없이 국가의 폭력을 당해 남편, 아들들을 사지로 내보내야 했던 것이죠.

    전선에서 군 물자를 횡령, 전용하거나 ‘빽’을 써서 후방으로 옮겨져 용케 잘 살아남은 장교들은 나중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지도층 또는 부유층이 되고, 국가 폭력을 회피하거나 저항을 하지 못한 그 유일한 죄(?)로 사지로 끌려간 가난뱅이들의 백골을 지금도 다 찾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리영희 선생님께서 너무나 잘 아셨던, 그리나 세상이 자꾸 망각하려 하는 우리 ‘건국사’의 진실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육신은 사멸됐지만, 늘 실사구시로 진실, 진리, 참된 것을 구하려는 그 ‘위대한 정상인’의 깨인 정신은 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 정신은 우리와 함께 있기에, 어쩌면 우리가 노력을 해서 진실, 생명을 위한 투쟁으로 리영희 선생님께서 겪으셨던 그 무서운 전쟁들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선생님께서 유촉하시고 가신 가장 중요한 사항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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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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