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M&M 직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철원 폭행, 본질 실종 막장 드라마만
        2010년 12월 09일 11: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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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이던가 2004년이던가, 그 즈음에 용인 가구단지의 어느 물류센터에 들어갔다. SK D2D라는 이름의 쇼핑몰 물류센터였다. 채용은 알바 형식이었던 것 같다. 알바 3개월, 그 후 정규직 채용이라는 약속이었는데 당시엔 그런 약속들은 안지켜지는 경우도 많았다.

    "난 SK 직원은 분명 아니었다"

    어쨌거나 출근은 9시부터였고 시급은 10시부터 책정되었다. 1시간의 시급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명분은 그 1시간 동안 "자기가 일하는 사업장을 자기가 정리해야 하므로"라는 거였는데, 그게 맞는 소리인지 아닌지는 이제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 사업장은 망했으니까.

    이윤저하로 센터가 폐업할 상황이 되면서, 과장이었나 센터장이었나 하여간 누군가가 날 불러 신갈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그는 며칠 후 날 김치박물관 근처의 한 물류센터로 데려갔다. 그 물류센터의 과장이란 사람과 몇마디 이야기를 하고난 후 나는 그곳에서 출퇴근을 시작했다.

    그 센터 정문에는 M&M이라고 써있었지만, 어느 층에는 SK의 간판이 붙어있었고 어느 층에는 M&M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은 SK 직원이거나 M&M 직원이었는데, 내가 M&M 직원이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지금은 그랬을 거라고 짐작하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누구도 내가 어디 직원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근로계약서? 난 그런 걸 본 기억이 없다. 아니, 난 단 한 번도 근로계약서라는 걸 써본 기억이 없다. 정말로 그런게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걸까?

    난 5층에서 일했는데, 그곳에는 SK텔레콤의 가입자 서류가 쌓여 있었다. 하는 일은 대리점에서 요청이 오면 서류를 찾아다 카피해서 팩스로 보내주는 일. 마음만 먹었다면 그 광활한 창고에서 언제든 SK텔레콤 가입자의 개인정보들을 복사해서 유출할 수 있었겠다만, 어쨌거나 난 분명히 SK 직원은 아니었다.

    "여기? 위장도급이지"

    5층에서 일하는 건 내 기억엔 6명 정도였는데, 책임자는 주임이었다. 언젠가 한 직원이 그에게 “우리 근로 형태가 뭐예요?”라고 묻자 주임은 “도급이지, 위장도급”이라고 답하고는, 잠시후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에 쓰려고?” 어느 날인가는 “전화가 오면 SK텔레콤이라고 대답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SK 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

    그런데 그 확신도 곧 흔들렸다. 어느날 인천에서 SK 부사장이란 자가 사업장을 방문했고, 센터를 둘러보며 업무 상황을 시찰했다. 그리고 SK 직원인지 M&M 직원인지 아직도 모를 한 노랑머리 직원이 잘려나갔다. 또 어느날은, 센터 측의 배려로 9개월간 알바를 한 내 선배직원이(다시 말하지만 3개월의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아래층 SK센터의 정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의 나는 반년의 알바 생활 끝에, 머리 길이를 이유로 해고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SK는 M&M과 관계없는 회사일 뿐이다.

    수년이 지나고 어느날 종로 골목을 헤매다가, 한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는 유조차 한대를 발견했다. 그 유조차에는 SK의 보상을 요구하는 문장이 락카로 크게 써져있었다. 마침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두긴 했지만, 그 유조차의 연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그 사진도 이제는 없고, 락카로 쓰여진 문구 내용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마침 그 즈음은 온갖 사회단체들이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릴레이로 발표하던 시기였고, 그보다 얼마 전에는 박종태라는 한 화물노동자가 자결하기도 했다. 사회운동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온갖 목소리를 내며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외쳤고, 전 대통령의 죽음에만 분노하고 화물노동자의 죽음엔 분노하지 않는 대중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그 당시 관련 성명을 쓰는걸 돕기도 했다.

    추위가 시작되던 11월의 끝물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온 어느날 밤, 나는 그 모든 기억들을 단번에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SK, M&M, 유조차. SK 가문의 일원이며 M&M의 전대표인 한 남자가, 사무실에서 임원들을 소집한 상태로 한 화물노동자를 폭행한 이야기.

    8명이 모인 집회

    그 노동자는 화물연대 탈퇴를 거부한 이유로 고용승계를 거부당했고, SK에 보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해왔다. SK 측은 이에 대한 “빠른 해결”을 M&M에 요구했고, M&M은 임원들이 모인 가운데 이 노동자를 감금폭행했다. 폭행의 직접 행사는 용역깡패 대신 전대표가 맡았다. 폭력의 끔찍한 양상과 폭력 실행자의 평소 행실에 대한 카더라 통신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날 내가 분노했는지, 분노했다면 얼마나 분노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다음날 화난 사람 몇명을 모아 SK본사 앞으로 갔다. 모인 사람은 고작 8명. 정문 앞을 지키는 경비조차도 본체만체 할 정도의 적은 인원. 그 적은 인원으로 SK를 규탄하는 조잡한 집회를 하고,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하고, 경찰 코빼기도 못본 채 경비의 코웃음을 뒤로하고 해산했다. “노동자의 분노를 보여주었다”는 속 뻔한 자위도 못할 만큼의 조악한 행동이었고, 갖다붙일 의미라곤 기를 쓰고 찾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난 딱히 8명이서 집회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왜 SK 앞까지 갔냐하면, 닳고닳은 아저씨 선수들이 당연히 그 앞에서 뭔가 벌일거라고 전날 새벽까지만 해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대중의 분노가 생겨나고 화물노동자의 비참한 처우가 알려진 지금, 폭력의 본산인 SK 자본의 코 앞에서 뭔가 벌일줄 알았다.

    SK자본을 박살내고 화물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 나아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사각을 넓혀가는 자본의 시도를 끝장내는 투쟁의 도화선을 모두 함께 만들어가자고 외칠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경악스러웠다. “대중의 분노”를 애타게 호명하던 좌파 지식인들과 운동 좀 했다 자랑하는 이들은, 꼬꼬마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원래 그랬는데 뭘 이제와서 난리냐”며 대중의 분노에 찬물 끼얹기 바빴다. 대중의 분노를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것은 그 분노의 순간에 “거봐 내가 맞았지? 꿇어”라고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다.

    "좌파 기자들 코박고 죽어라"

    “진보”와 “노동”을 자처하는 언론들은 SK니 특수고용노동자니 하는 이야기는 겨드랑이 털만큼도 하지 않고, 일제히 “재벌 2세”가 사람을 잔인하게 팼다는 주말드라마 같은 카피만 달았다. 박종태도 유조차도 위장도급도 노동자성도 그동안 그토록 부르짖던 그 무엇도 다 삼켜졌다. 오히려 이 사건이 화물연대와 특수고용자 문제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다룬 기사(http://local.segye.com/articles/view.asp?aid=20101201003002&cid=6111010000000)는 보수신문인 세계일보에서 나왔다.

    그 기사에서는 M&M이 SK의 방계회사임을 언급하고, “화물운송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를 살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박종태도, 단체교섭권 이야기도, 거기서 살아있었다. 물론 노동자적인 시각은 아니었지만. “화물연대를 상호협력적 관계가 아닌 무차별적으로 적대시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자”고 끝내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좌파 기자들, 탱크로리에 코박고 죽어라”라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어디선가 무슨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SK 불매를 선언하거나 SK 관련 인터넷 서비스를 해지하는 사람들도 속속 등장했고, SK에 대한 규탄 목소리들도 드문드문 터져나왔다. 한다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찬물을 끼얹었고, ‘소비자운동’ 방법론에 대한 뜬금없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지식인들의 코멘트는 “원래 그랬음. 끝”이었다.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종각역 4번 출구에서 열렸지만, 집회가 끝나고 종각역 6번 출구 근처의 SK 본사 앞에 항의하는 시늉을 하러 이동한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세상에, 4번 출구에서 6번 출구로 가보자는 생각도 못했단 말인가!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르짖던 목소리와 박종태씨가 죽었을 때 “열사의 뜻 이어받아” 어쩌고 하던 목소리가 다 거짓 기억처럼 느껴졌다. 아, 열사정신 계승이라는 거, 그냥 분신하라는 이야기였구나. 그렇게 얼렁뚱땅 시기를 놓치고.

    주말드라마의 반전을 기대하며

    폭행을 직접 실행한 용역깡패가 구속됐다. 그가 M&M의 전 대표란 직함을 가지고 있다거나, 재벌 2세라거나, 이름이 뭐라거나 따위의 사실은 정말이지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이 사건이 망나니 “재벌 2세”의 개인적 범죄로 마무리되었고, 언론은 그의 평소 행각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80년대 주간지의 비하인드스토리 코너처럼 전달할 뿐이다.

    그래, 이 주말드라마는 종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화물노동자는, 화물연대는, 특수고용노동자는, 위장도급은, 엑스트라로도 출연하지 못한 채. 이 슬픈 상황을 누가 만들었을까? 자본이? 사회가? 분노할줄 모르는 대중이? 끝났어, 끝났다고. 우리가 눈감고 있는 사이에.

    그런데도 아직도 기대를 접기 어렵다. 이 저질적인 주말드라마가 막판에나마 어처구니 없는 반전을 보여주기를. SK자본을 박살내고 화물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 나아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사각을 넓혀가는 자본의 시도를 끝장내는 투쟁의 도화선을 모두 함께 만들어가자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기를.

    돈많은 “재벌 2세”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SK 자본과 이 정부가 화물노동자들을 압살하고 있음을 까발리는 투쟁이 다시 만들어지기를. 규모 같은 건, 가능성 같은 건 이제와서 정말이지 상관없다. 그냥 좀 외쳐보자. 누구한테 하는 소리냐고?

    정작 대중들이 분노할때 "원래 그랬음"하면서 운동가의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그 시기를 팔아먹은 명사들, 당신들 말이다. 허구헌날 대중의 분노를 요구하다가, 봉기의 시기에 그 자아를 선전하기 위해 쟁점을 팔아먹기 바쁜 “혁명적” 운동가들, 순진한 청년들에게 혁명으로 썰 풀어서 끌어들이고는, 뛸라 치면 붙잡고 능욕하기에 바쁜 혁명마케터 지식인들. 최첨단 자본주의 지식산업의 기수들. 사기꾼들. 당신들, 그리고 나 말이다.

    자본과 공범인 우리들

    세상의 온갖 고민은 다 떠안은 척하고, 오로지 자기만이 노동자의 친구인 척하는 지식인, 달변가, 키보드 워리어들. 모든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환원하는 저 자본과 공범인 우리들 말이다. 다음에 또 화물노동자가 죽으면, 야구배트로 얻어터지면, 자기는 공모하지 않았던 양 “열사정신계승”을 뻔뻔하게 외칠 우리들 말이다. 다른건 몰라도 분노가 타오를때 물 끼얹는 건 선수급인 우리들 말이다. 주말드라마 도색을 돕는게 아니라, 다큐를 틀자고 소리쳐야 할 우리들 말이다.

    “재벌2세 폭력사건” 따위의 사건은 없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식칼 테러, 골프채 테러, 야구배트 테러, 이 모든 사건들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이건 자본으로부터의 선언이다.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전선에서, 그들이 한걸음 더 전진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에 도대체 우리가 뭐라고 답해야 하나? “재벌2세 구속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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