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영희 선생이 살아 계신다면?
        2010년 12월 09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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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부산민주공원에서 거행된 리영희선생 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낮 시간이고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라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 못했어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시당 위원장의 추모사와 추억담들을 듣는데 고인의 큰 업적을 기리는 다소 의례적인 추도사가 비슷비슷하게 이어졌습니다. 긴장된 시국에 큰 별이 진 탓이라 추도사에 무언가 알맹이가 빠졌다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알맹이 빠진 추도사

    예를 든다면 최대의 현안인 연평도 포격 사건과 미 항모전대를 동원한 서해안 군사훈련, 그리고 한반도의 긴장에 대해 리영희선생의 계승자라면 무엇을 보고, 어떤 해법을 얘기해야 하는지, 의례적인 추모사와 추억담을 넘어서는 그런 얘기가 훨씬 리영희선생에 대한 실천적 지성의 계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점점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데 예정에 없던 한 분이 나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상의 은사’라고 하는데 우리가 새겨야 할 리영희선생 사상의 정수가 뭐냐? 그것은 반제 자주다."라고 말입니다. 사회를 본 분도 "자주"라고 받았습니다.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그 전후 맥락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짐작만 할 뿐이었죠.

    사실 솔직한 제 느낌은 ‘반제 자주’만 앙상하게 외치는 건 예전에도,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에 대해 남한 진보개혁진영이 ‘자주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른바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반제 자주를 외치는 것으로 우리 진보개혁운동이 한 치라도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오히려 저는 87년 민주화 이후 저를 포함한 반미자주파의 그와 같은 자족적 운동이 우리들의 선한 의도와 무관하게 운동권을 국민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소통할 줄 모르는 집단으로 낙인찍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좌경맹동 우상에 대한 경고

    74년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리영희 선생님은 중국의 문화혁명을 묘사하면서 홍위병의 혁명적 열정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중공’에 대한 제도교육의 우상이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님은 나중에 문혁의 오류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점을 시인하셨고, 그런 점에서 좌경맹동의 우상에 대해서도 강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만년의 리영희 선생님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갈파했습니다. 제 페이스북 친구의 ‘담벼락’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우리가 이성의 힘으로 우상과 싸워야 한다면 ‘우’ 만이 아니라 ‘좌’의 우상과도 싸워야 합니다"라고.

    진보적 변혁운동이 정체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운동 내부의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뻘짓을 거듭해도 그의 국정지지율은 5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안 세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변혁을 위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간 ‘변혁운동’이라고 했던 그것에 대해 되묻고 이념과 가치, 노선, 방법을 변혁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이야말로 ‘혁명 속의 혁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연평도 포격 사태를 보면 한반도 리스크가 복지건 노동이건 그 모든 것을 일거에 잠재워버리는 폭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의 진보 좌파가 집권할 수 없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진보 좌파에는 ‘안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노동과 복지 백날 떠들어 봐야 개머리와 무도 기지의 해안포 한 방에 이슈는 ‘순간 이동’을 해버립니다. 한반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평화체제로 연착륙시킬 것인가를 실물 수준에 이르기까지 고민하지 않고서는 ‘무책임한 세력’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임종 직전 연평 포격과 서해안 군사훈련을 보고 피눈물을 흘렸을 리영희 선생님께 한반도 리스크를 관리하고 평화체제로 연착륙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출하고, 이를 위해 진보개혁진영이 국민들에게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다짐하는 헌사와 실천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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