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정말 쉬실 시간입니다"
    By mywank
        2010년 12월 08일 10:0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아버님은 한평생 치열하게 사셨습니다. 심지어 편안히 쉬셔야할 여생도 수년간 병마와 싸우다 임종하셨습니다. 이젠 아버님이 정말로 쉴 수 있는 곳으로 갈 시간입니다.” 고 리영희 선생(향년 81세, 전 한양대 교수)의 민주사회장 영결식이 열린 8일. 장남 건일 씨는 세 번의 해직과 다섯 번의 투옥 등 험난했던 삶을 산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오전 7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리 선생의 민주사회장 영결식은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려는 이들로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고, 참석자들은 시대의 우상을 깬 ‘고난의 지식인’으로 불린 고인과 작별을 고하며 권력의 탄압,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위험이 없는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원했다.

       
      ▲8일 오전 고 리영희 선생의 영결식이 열렸다 (사진=손기영 기자)

    험난했던 고인의 일생을 담은 약력 보고를 시작으로 이날 영결식은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백낙청 서울대 교수(공동장례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중풍으로 두 번씩이나 쓰러지고도 재기하셨고, 간경화로 복수가 찬 상태로도 꿋꿋이 버티셨는데, 저희들과의 인연을 마감하고 떠나시는군요.”라며 “마음의 준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황망하고 서럽습니다.”며 안타까워했다. 

    "온갖 시름 다 여의고 고이 잠드소서"

    그는 “한마디로 선생님의 시대는 의로운 인간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고, 시대와의 불화와 그에 따른 온갖 수난을 마다않은 분이 당신이었다”며 “선생님이 사신 세월이 비록 모질고 험난했으나 동시에 당신이 외치신 진실에 열렬히 호응하는 수많은 독자들과 당신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잇따라 나오는 감격의 시대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선생님이 오래오래 살아 계시기만 해도, 병을 달래면서 의연하게 견디기만 해도 우리 사회의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련만, 여전히 선생님이 앞장서서 세상을 꾸짖고 우리의 답답함을 달래주기를 바라는 후진들의 과욕과 게으름이 없지 않았다”며 “이제야말로 온갖 시름과 애착을 다 여의시고 고이 잠드시옵소서”라며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조사를 낭독하는 백낙청 서울대 교수 (사진=손기영 기자)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는 영결식 참석자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영결식에서는 고인을 기리는 각계의 추도사도 이어졌다. 신홍범 두레출판사 대표는 “선생님과 함께 일하면서 언론인이 어떠해야 하며, 지식인이 무엇인가를 배웠다”며 “사람들은 선생님을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이라 하고, ‘진실’을 뜨겁게 사랑하는 불이라고도 한다. 이 말을 요약하면 ‘뜨거운 얼음’이 될 텐데, 여기에 ‘따뜻한 가슴’이란 말을 보태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진실을 말했다고 박해하는 못된 권력이 없고, 분단의 아픔도 전쟁의 위험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못된 권력, 분단의 아픔 없는 곳으로"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은 “선생님의 땀과 아픔과 애정이 묻어있는 글들을 양식 삼아 엄혹한 시대에도 무엇이 우상이고 실상인지 배웠고, 초강대국의 이기주의와 패권주의의 본질을 알게 됐고, 세계차원의 인식과 지식을 선물 받았다”며 “선생님이 그러셨듯이 ‘인간중심 가치관’을 가지고 반인간중심적 가치관을 제압하기 위해 깨어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자신의 트위터(@wonsoonpark)에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마음으로 흰 국화꽃 한송이를 바칩니다. 이제 행동하는 지식인의 등대는 누가 밝히실 것인지요?”라는 답변을 남긴 네티즌 @heavenful의 글을 소개하며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마냥 슬퍼만 할 수 없는 이유는 선생님이 평생 맞닥뜨렸던 그 야만, 그 허위, 그 불의의 벽이 아직도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선생님이 주신 바다와 같은 지혜, 용광로 같은 열정, 얼음칼 같은 냉철함으로 우리는 이 슬픔과 절망의 벽을 넘어 선생님이 한평생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꿈꿨던 그 세상을 기필코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이 고인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영결식 직후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고광헌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 인사말’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기 전 고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 문병을 갔을 때 (리 선생이) 복수가 차서 배가 많이 나왔는데, 한 번도 고통스럽거나 찡그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한 적도 있는데, 엄지와 인지를 벌려 ‘고 사장 맥주 반잔만 마시고 싶어’라고 했고, 이후 다시 찾아가니 예전보다 손가락 사이를 반절 줄여 ‘와인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경지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영결식은 오전 7시 40분 헌화 순서로 마무리됐으며, 고인의 유해는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뒤 이날 오후 광주 5.18민주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