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 그늘 깃든 제보, 지금도 계속된다"
        2010년 12월 07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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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대회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는 반올림 회원들.(사진=반올림) 

    캘리포니아 시그네틱스

    1979년, 캘리포니아 시그네틱스 공장 직원 4명은 이상한 인사발령을 받는다.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공장 식당에 앉아 있으라는 발령이었다.

    그동안 4명의 노동자들은 독성을 가진 흄과 증기에 반복 노출되었다. 노출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생긴 노동자들에게 일을 하지 않아도 회사는 월급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산재로 인한 노동손실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노동손실일 1000일을 넘기지 않았기에 회사는 당국에 산재를 신고할 의무를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알려져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은 시그네틱스 공장을 조사했다. 전자산업에 이뤄진 최초의 건강유해성 조사였다. 그러나 회사는 비협조적이었다. 결국 유해성 조사는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며 끝이 났다. 이후 추가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만 RCA

    대만 RCA 타오위안 공장은 20년 동안 독성물질을 불법 배출했다. 90년대 초, 이 사실이 밝혀졌다. 공장으로부터 2km 떨어진 지하수조차 식수안정 기준치의 1천배가 넘는 TCE(트리클로로에틸렌, 1급 발암물질)로 오염되어 있었다.

    공장 기숙사에 거주한 RCA 노동자들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지하수, 즉 독극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216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암으로 사망했다.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은 각종 암에 걸렸다.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는 동안 사무실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은 외부에서 생수를 공급해 마셨다.

    대만 환경보호국 관리 하에 1996년부터 RCA는 공장 부지와 지하수를 정화하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에 6백만 달러가 쓰였다. 그러나 RCA는 전직 노동자들 가운데 암 발생자가 있다는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부기관인 환경보호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재 RCA는 대만을 떠나 더 값싼 노동력이 있는 태국과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피해 노동자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실리콘밸리 IBM 반도체

    2003년, 글로벌 기업 IBM 반도체를 상대로 늙은 노동자 무어와 에르난데스는 소송을 했 다. 제임스 무어는 비호지킨 림프종에, 알리다 에르난데스는 유방암에 걸렸다. 이들은 "IBM의 독성 화학물질로 인한 유해한 작업환경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IBM 공장에서 일하다가 암이나 만성질환에 걸린 환자는 200여명이었다.

    이에 대한 IBM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IBM처럼 큰 사업장에서는 ‘우연히’ 많은 노동자들이 희귀질환에 걸릴 수 있다.”

    IBM은 30년간 소속 노동자들의 사망 기록을 담고 있는 <기업사망자료>를 재판에 제출하길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동자들의 자료 공개 요청이 받아들여지고, 두 노동자는 <기업사망자료>를 분석해 IBM 소속 노동자들의 암사망 위험이 일반인들에 비해 114.6%(여성 기준)나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담당 판사는 이 분석 결과가 편견에 차 있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결국 두 노동자는 패소했다.

    자연발생적인 ‘우연’ 사례

    젊고 건강한 노동자들이 희귀질환에 걸리는 ‘우연’은 반도체 ․ 전자산업에 끊임없이 나타난다. 1984년 반도체 산업을 들여온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삼성 반도체에서 근무하다가 희귀질환에 걸린 이는 제보된 바로 100여명이다. 이중 31명이 사망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꾸준히 반도체 산재 피해자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 제보된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본다.

    "소화불량으로 갑자기 체중이 많이 불었습니다. 당시 라인에서 근무하면 생리불순이나 소화불량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생각했습니다. 이유 없이 코피가 자주 흘러내리고 잇몸출혈이 심했고 어지러움도 잦아 너무 힘들었습니다."(2010.10.07)

    "라인에서 가스사고도 자주 났구요. 작업하는 곳은 설비가 다 원자력으로 만든 건지 이상한 마크가 붙어 있었구요. 그때는 위험할 걸 잘 몰라서 나쁜 건 알지만 할 수 없이 일했습니다. (반도체) 웨이퍼 가루가 눈으로 튈 때도 있고 손에 박힐 때도 많았구요.

    웨이퍼 자를 때도 종이 마스크하고 비닐장갑만 착용하고 핀셋과 커팅칼로 잘랐어요. 용액에 담갔던 오른손이 왼쪽에 비해 항상 저립니다. 퇴사 후 두 번 유산을 했고요. 우리 아이들한테 영향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2010.05.22)

    "백혈병에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으로 동생이 죽었습니다. 동생은 TV브라운관을 구워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일하는 곳의 온도가 섭씨 45도를 넘나든다고 하면서 때로는 뼈가 녹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삼성에 문의를 했었는데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해서 크게 관심을 안 두었습니다. 그러나 삼성에 근무한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백혈병에 걸렸다면 제 동생 또한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2010.04.14)

    "라인만 들어가면 머리가 너무 아프고 속도 미식거리고 어지럽고 구토가 나올 것 같더라구요. 병원에서는 라인병이라면서 약이 없다고 아무런 대책 없이 딱 잘라 말하더라구요. 직장님께서 ‘우리 라인은 청정 구역인데 머리 아픈 거 꾀병이 아니냐? 다른 건강한 사원들은 뭐냐?’ 그렇게 몰아세우니 어이가 없고 할 말이 없더라구요."(2008.02.29)

    반도체 산업의 진실을 밝히는 노동자들

       
      ▲사진=반올림

    기업은 ‘우연’이라고 했지만 병에 걸리는 노동자 수가 많아질수록 진실을 밝히려는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IBM을 상대로 싸운 무어와 에르난데스는 패소했다. 그러나 이 소송을 계기로 IBM 노동자들의 건강과 환경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현재 IBM에게 지역 환경오염의 책임을 묻는 집단소송이 이뤄지고 있다. 대만 RCA 노동자들은 ‘RCA노동자 상조회’, ‘대만 산업재해 피해자 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경제도약’을 위한 희생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대만 정부에 항의하며 환경과 산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이뤄내고 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이 쓰는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자신의 작업장이 안전한지 알지 못했다. ‘안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19살 반도체 회사에 들어가, ‘안전’이란 ‘사고가 나지 않는 것’으로만 배웠다.(이는 삼성반도체 신입사원 교육-수련기-노트에 적힌 내용이다)

    사고는 일하는 노동자가 내는 것으로 노동자가 잘하면 그게 ‘안전’이라고 했다. 유해물질을 알고, 그런 물질을 사용하지 않을 권리가 안전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저 기계 고장을 일으키거나 불량이 나는 ‘사고’를 내지 않는 게 안전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병들고 죽어가면서 그/녀들은 의심했다. 반도체 기업과 이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직업병임을 알았고, 산재보상 신청을 했고, 목소리를 냈다.

    2003년 미국의 IBM 노동자 알리다 에르난데스는 말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 가난한 채로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내가 반도체 산업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벗겨낼 기회를 가졌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제임스 무어와 나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미래의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말한다.
    “병든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방지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삼성에 반드시 노동조합을 세워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동조합이 생길 때까지, 노동자가 안전할 때까지 파헤치고 싸울 거예요.”

    백혈병으로 남편을 잃은 정애정 씨는 말한다.
    “제가 일했던 회사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건강 같은 거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노동자란 무엇이며 노동자의 인권이니 건강권 같은 문제는 선생님 연애담을 듣는 자투리 시간에도 들어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말한다.
    “작업 환경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제도가 제대로 만들어져야 해요. 일을 하다가 병에 걸린다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피해자 엄마여서가 아니라, 피해자 아니라도 정말 건강하게 일을 하는 자식의 엄마들도 그런 걸 너무도 바랄 거 같아요. 이런 일을 다른 부모들은 겪지 않는 편안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
    “우리 딸 너무 예쁘고 진짜 사랑해. 가엾고.”

    그녀의 말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려준다. 일하고 병들고 죽어간 이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소중한 그/녀들은 살아갈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 권리를 너무 쉽게 빼앗겼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반도체의 그늘에 대해 쉼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너무 늦어 버리지 전에.”*

    *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Challenging The Chip, 메이데이)의 공동저자 짐 하이타워의 글을 인용했다. 위의 글은 이 책의 내용을 인용 및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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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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