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치지 않고서야, 숭미주의 관료들"
    자유무역은 없다, 미국'보호'무역뿐
        2010년 12월 07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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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재협상이 타결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한미‘자유’무역협정의 본질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름만 ‘자유’라는 탈을 쓰고 있을 뿐 한미FTA는 사실은 ‘관리’무역 혹은 ‘보호’무역협정임이 뚜렷해졌다. 돼지고기 등에서 우리도 얻은 것이 있다는 등 ‘쥐꼬리’를 달아 본질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식 ‘공정무역협정의 일례’로 극찬할만하다.

    자유무역협정은 없다

    모든 법은 제1조에 그 법의 목적을 기술한다. 이번 자동차협상에 목적이 규정되었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제1조(목적) 이 법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미국산 자동차의 대한 수출을 촉진하고 한국산 자동차의 수출증가 가능성을 막아 미국의 이익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 크게 3가지의 수단과 방법이 합의되었다. 첫째는 관세철폐 기간의 조정, 둘째는 한국의 자동차 관련 제도의 수립과 적용에 있어 예외적용 및 관여, 셋째는 마음만 먹으면 발동할 수 있는 수입증가 차단 장치이다.

    이 중 관세철폐 기간의 조정은 중요성이 가장 덜한 카테고리이다. 물론 이 역시 한국과 미국의 철폐 일정이 불균등하게 조정되었다. 한국은 관세를 50% 즉시 철폐하고 나머지 50%는 5년 후 철폐하며, 미국은 5년 동안 그대로 놓아둔 후 5년 후 철폐로 재조정되었다.

    화물자동차도 7년간 미국관세 감축이 유예되었고, 반면 미국이 강한 전기자동차는 관세철폐가 5년으로 단축되었다. 불평등한 재조정이지만 5년이든, 7년이든 시간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유’무역 이라는 말은 인정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카테고리는 자동차 관련 국내규범에 대한 예외적용과 국내 자동차 제도 수립 과정에서 미국의 관여이다. 이는 영구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우선 안전기준이다. 과거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제작사별 6,500대에 해당하는 물량에 대해서만 국내 안전기준 적용을 면제하였지만, 이번에는 25,000대로 획기적으로 늘렸다.

    미국차, 안전기준 치외법권

    미국의 자동차 메이저 3사만 적용해도 75,000대 물량이고, 가격으로 따지면(미국산 고가 자동차를 국내산 일반 자동차로 환산하면) 20만대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게다가 혼다, 토요타 등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를 고려하는 경우에는 끝없이 늘어난다. 게다가 25,000대에 도달하면 그 이상의 물량에 대해서도 기준 면제를 의무적으로 협상해야 한다. 사실상 모든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서는 ‘안전기준 치외법권’이 인정되었다.

    또 한국이 세제, 환경, 안전 등 각종 자동차 관련 규범을 수립하려는 경우에, 시행까지 1년 동안 집행을 유예하여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규범을 시행한 후에는 ‘사후 검토 제도’를 도입해 그 규범의 타성성과 효과성을 미국과 함께 재검토해야한다.

    특히 자동차 세제의 경우 규범을 개정하거나 수립하려는 경우 사전에 미국과 협의를 거쳐야만 한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이산화탄소(CO2) 규제 적용의 완화도 합의했다. 이는 한미FTA 협정문의 환경 챕터가 규정하는 ‘무역증진을 위한 환경기준 완화를 금지’하는 조항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래서 정부는 이 문제는 한미FTA와 별건으로 취급하여 별도의 의정서를 통해 체결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국산 자동차에 불리한 한국의 제도수립은 애초부터 차단하고, 이미 수립된 불리한 기준에 대해서는 예외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미 2007년의 한미FTA 원안은 한미 양국의 당국자가 참여하는 ‘자동차 표준작업반’을 설치해서 한국의 자동차 관련 규범의 수립과 집행에 수갑을 채웠다.

    이번의 합의는 수갑의 열쇠까지 버린 것이다.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 증대를 더욱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오직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 촉진을 위해서 수립된 규범과 미래의 규범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과연 ‘자유’무역 협정인가?

    노골적인 보호무역 협정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카테고리는 ‘압력수단’ 혹은 ‘관리수단’이다. 2007년 협정 원안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스냅백(snap back)’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 내용이 더 문제이다. ’기대‘했던 수입 증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한국이 도입하려 하거나, 그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미국이 일방적으로 기존 관세율로 원상복구하는 제도이다.

    한마디로 미국 자동차 수출이 기대한 것처럼 되지 않으면 어떠한 핑계거리를 찾아 일방적으로 관세를 복구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그렇게 관세를 ‘낚아채서 되돌리면(snap back)’ 한국은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 조항 하나만으로도 정부가 말하는 한미FTA의 경제적 이득은 사라질 수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이프가드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원래 세이프가드 제도는 합법적인 수출 증가로 인해 급격하게 수입이 증가하여 수입국의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그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보상을 전제로 단기간 적용하는 정당한 조치이다.

    그런데 이번 세이프가드는 다르다. 한미FTA 발효 후 총 15년 기간 동안 발동할 수 있는 이 제도는 한 번 발동하면 4년 동안 발동할 수 있고, 같은 제품에 대해 여러 번 발동할 수 있기 때문에 15년 내내 발동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세이프가드를 보다 쉽고 일방적으로 발동할 수 있고, 보복도 제한되어 있다. 이 정도이면 세이프가드라고 볼 수 없는 노골적인 보호무역 장치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으로 "미측이 요구한 ‘심각한 피해’는 삭제"했다고 자위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세이프가드가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위험이 큰 경우에 발동하는 제도인데, 우리 정부가 이 요건을 삭제한 것이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정상적 관료라면 이럴 수 없다

    미국 자동차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다면, 사실 미국 정부가 원하면 아무 때나 발동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후세에 얼굴을 들 수 없는 굴욕협정이 된다.

    우리 정부와 관료, 도를 넘었다. 도를 넘은 ‘숭미주의’가 노골화 되었다. 최근 공개된 위키릭스에 대충 이런 문장이 들어있다. ‘한국 정부는 G20 회담의 모든 의제에 대해 자신들은 미국편이라고 믿고 있다’. 전작권 환수,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태 등으로 이어지는 안보문제가 한미FTA와 뒤섞이면서 굴욕적 재협상으로 이어졌다는 관측이 많다. 필자도 이러한 시각에 동의한다. 최소한 한나라의 정부 혹은 정상적인 관료라면 이러한 협상을 타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는 그것이 자처한 문제이든 아니든 주어진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본의 이해가 걸린 FTA 협상마저 이런 식으로 체결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현대기아차가 이러한 협정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2.5% 미국관세 철폐를 얻기 위해 보다 심각한 돌덩어리로 된 수갑을 찬 격이기 때문이다. 많이 심했다!

    이제 쇠고기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나 미국 언론 보도에 의하면 조만간 쇠고기 협상이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여론 문제로 비밀리에 그리고 별건으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우리 정부, 관료의 ‘숭미주의’를 볼 때, 쇠고기 문제도 어물쩍 넘어갈 것 같다. 이미 과거에 합의한 ‘수출자율규제’를 자율적 ‘해제’로 바꾸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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