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의 폭력적 대응에 악만 남았다"
    By 나난
        2010년 12월 03일 07: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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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2일 현재 18일째 계속되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누구는 공장을 점거하고, 누구는 라인을 세우고 대체인력을 끌어냈으며, 누구는 서울로 상경했다. 그들의 요구는 모두 “불법파견 철폐-정규직화”다. 

    지난 9월 투싼 단종에 따라 현대차 울산 2공장에서 해고된 2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로 향했다.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농성이라도 하면 사회가, 그리고 정몽구 회장이 귀라도 기울여줄까 싶어서다. 하지만 지난 30일 이들이 양재동 본사 앞을 찾자 그들의 10배도 넘는 300여 명의 용역업체 직원이 인도를 차지하고 이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아직까지 농성 천막은 쳐지지 않았다.

       
      ▲ 지난 30일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1인시위와 농성을 진행하려하자 용역업체 직원들이 이를 가로 막았다.(사진=참세상)

    카메라를 피해 가해지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을 오롯이 맞으며 이들은 ‘쓰레기 치워지듯’ 본사 앞 인도에서 치워졌다. 우상수(30) 씨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모른 척했다”며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이 끌려났다”며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현대차 측의 그 같은 대응은 이들을 더욱 자극시켰다. 우 씨는 “서울로 올라오며 가장 걱정했던 게 회사의 무관심이었는데, 차라리 격렬하게 대응하니 오기가 생겼다”며 “비록 아직까지 서울 상경의 목적이었던 본사 앞 농성은 좌절되고 있지만, 현대차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울산으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천막 한 번 못 치고, 본사 앞 1인 시위 한 번 제대로 못해 안타깝지만 한남동 정몽구 회장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저녁엔 종로 보신각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사태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 씨와 함께 지난 9월 해고된 권두창(38) 씨는  “본사 앞 농성은 포기한 것도, 끝난 것도 아니”라며 “우리는 절박하다. 다시 양재동으로 가서 농성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사태는 울산 1공장에서 2일 현재 18일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400여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이 씨와 권 씨는 “1공장 동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밖에서 해야 하는 투쟁 역시 절박하다”며 “1공장 동료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각오을 다진다. 

    이들이 속한 울산 2공장은 그간 수차례에 걸쳐 파업을 전개하며 라인을 세웠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회사 측 관리자와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적 해산 작업은 이어졌으며, 부상자도 속출했다. 이 씨는 “한 다친 조합원이 병원 치료 후 전화를 걸어와 ‘또 다시 라인 끊으러 간다’며 말을 했다”며 “1공장이 처절하게 싸우는 만큼 이제 공장 밖 조합원들도 악만 남았다”고 말했다.

    “지금의 투쟁에서 비정규직의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때문에 조합원들은 폭력을 당해 머리가 찢어지고, 얼굴이 함몰돼도 또 다시 나가서 싸우려고 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작업복에 적힌 업체명으로 구분되는 야속한 계급이다. ‘사원증’과 ‘출입증’. 누구는 직원이 되고, 누구는 손님이 되는 서글픈 종이 한 장.

    이 씨는 “작업 조끼와 사원증 외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른 건 아무 것도 없다”며 “공장 출입구도 같고, 생산라인도 같다. 사용하는 공구도, 일하는 공간도 같은데, 왜 우리의 요구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냐”며 분노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해고자의 신분으로 벌써 3개월째 현대차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들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 이 씨는 둘째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적은 임금에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는 “2살짜리 아들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됐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는 업체로 돌아가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그것은 명분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씨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비정규직 해고자로서의 복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당당히 공장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9월 해고 뒤 100만 원도 채 안 되는 실업수당으로 생활해야 하는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투쟁을 쉽사리 끝낼 수 없다. 이 씨는 “90여만 원의 고용보험과 대출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며 “한계에 직면했지만 아내 역시 ‘이길 수 있다. 정당한 싸움이다’라는 걸 알고 이해해주는 것 같다”며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그는 “‘밥은 먹었느냐’는 질문에 아내는 ‘밥이 넘어 가느냐’고, ‘미안하다’는 말에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며 이번 투쟁에 대해 묵묵히 지켜봐주고 있다”며 “미안하고, 꼭 정규직으로 공장에 돌아가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0여 명의 울산2공장 해고자들은 현대차 사내하청 사태를 알리기위해 지난 30일부터 서울 한남동 정몽구 회장 자택 인근에서 피켓시위를 펼치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이날도 어김없이 서울 한남동 정몽구 회장 자택 인근에서 1인 시위와 피켓 시위를 펼친 이들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고, 연대를 호소했다.

    권 씨는 “이번 문제는 현대차 사내하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라며 “전국에 890만 비정규직이 있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번 문제를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본인의 문제로 닥쳐야 발 벗고 나서기보다는 지금 벌어진 상황에서 함께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정규직 노동자에 연대를 호소했다. 그는 “현장에서는 아직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연대가 살아있다”며 “하지만 조금 더 실질적인 연대가 이뤄져 회사에 타격을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도 우리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고,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먼저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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