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이여, 코차밤바를 기억하라
    2010년 12월 02일 05: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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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는 한 동료가 칸쿤으로 떠나면서 “몸조심 하세요”라며 농담 섞인 인사를 건넸다. 으레 남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를 그는 반대로 던졌다. 멕시코 칸쿤에서는 지난 달 29일부터 12일 10일까지 모두 194개국 대표단이 참석하는 제1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6)가 열린다.

연평도, 그리고 또다른 전쟁터의 칸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한 뒤 스물 스물 피어오르는 전쟁의 공포가 한국과 미국의 연합 군사훈련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그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남북한의 호전주의자들이 서로를 겨냥해 포문을 열어놓은 채 수십만 명의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할 태세에, 그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 40시간 이상을 날아갈 멕시코 칸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 인사를 받는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연평도 섬에서 피어 오른 검은 연기들은 전쟁 공포의 가시적인 상징으로 누구든 동요케 하였지만, 칸쿤에서 벌어지는 기후전쟁은 포성도 포격 후의 검은 연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등 선진국 부자들의 휴양 도시, 카브리해의 푸른 바다와 야자수를 배경을 하는 칸쿤의 고급 호텔과 세련된 회의장은 오히려 평화로운 사교장인 것만 같다.

그러나 포성 없는 기후전쟁이라고 칸쿤이 결코 쉬운 곳은 아니다. 연평도의 포격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기후 재앙은 수많은 이들의 가족과 집을 앗아갔다. 옥스팜이라는 국제적 원조기구에 의하면 올해 9개월 동안에만 21,000명이 기후관련 재앙으로 목숨을 잃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합의가 늦어질수록, 이 숫자는 더욱 늘어가게 될 것이다. 누가 칸쿤을 휴양지일 뿐이라고, 또 다음 회의를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나.

코펜하겐, 선진국 헤게모니의 붕괴 장소

희망의 코펜하겐(Hopenhagen)에서 전 세계의 민중들은 선진국들의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하여, 지구 생태계의 교란과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제3세계 민중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데 크게 실망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유엔 시스템 내의 기후협상에 회의론이 싹튼 것도 사실이며, 그 기회에 선진국들 일부에서는 ‘가난하고 시끄러운’ 제3세계 국가들이 참여하는 거추장스러운 유엔 테이블을 치워 버리자는 선동도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사실 ‘칸쿤(Cancun)’도 코펜하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Can’t Cut)’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칸쿤은 남미의 또 다른 휴양도시인 볼리비아의 코차밤바를 기억해야 한다. 코펜하겐 회의에 참가한 볼리비아 대통령 모랄레스는 그 실패를 보고, “선진국의 헤게모니의 붕괴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선언하고, 세계의 대안적인 사회운동 진영이 참여하는 민중회의를 제안하였다. 그 민중회의가 열린 곳이 바로 코차밤바였다.

국제 지구의 날(International Day of Earth)인 4월 22일에 맞춰, 2010년 4월 20일부터 3일간 볼리비아 코차밤바(Cochabamba)에서 개최된 ‘기후변화 세계민중회의(일명, 코차밤바 민중회의)’에 125개 국가 2만 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코펜하겐에서 채택된 엉성한 타협책인 코펜하겐 협정서와 분명히 구분되는 ‘민중협정’을 채택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기후정의운동’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코차밤바 민중회의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던, 기후변화의 구조적 원인, 기후부채(Climate Debt), 탄소시장의 위험성, 기후 이주민(Climate Migrants), 원주민(Indigenous people), 기후정의 재판소(Climate Justice Tribunal), 농업과 식량주권 등의 의제를 다루면서 ‘기후정의’의 문제를 명확히 부각시켰다.

기후변화의 구조적 원인은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이런 논의 결과를 담고 있는 민중협정문은 기후변화의 구조적 원인으로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적하면서, “기후가 아니라 정치를 바꿔라(Change the Politics, Not the climate)”라는 코펜하겐 거리에서 외쳐진 주장을 수용하였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의 비용효과적인 방안으로 선전되고 있는 ’탄소시장‘과 같은 접근을 명확히 거부하였으며, 지적재산권에 묶여 있는 기술변화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탄소포집저장(CCS) 기술과 같은 지구공학, 유전자조작 생물체 등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시장주의적, 기술주의적 접근을 반대하면서, 무엇보다도 이것들이 선진국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조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중협정은 기후변화에 의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세기 동안 기온 상승을 1℃로 묶어두고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300ppm으로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선진국은 2017년까지의 2차 감축기간 동안 1990년 대비 50%의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였다. 또한 선진국의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해서 GDP의 6%까지 재정을 지출할 것도 요구했다.

칸쿤이여, 코차밤바의 요구를 수용하라

코차밤바 민중회의는 2007년 발리 회의에서 부각되기 시작하고, 2009년 코페하겐에서 널리 수용된 국제적인 기후정의운동을 더욱 확산하고 강화하였다. 특히 기후변화 국제협상의 측면에서 볼 때, 볼리비아 정부가 민중협정문의 내용에 바탕을 둔 협상 제안서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함으로써 기후정의의 구체화된 의제가 협상의 공식 테이블에 오르게 만들었다.

또한 코차밤바 민중회의에 의해서 고무된 여러 대중운동조직들은 코차밤바 민중협정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칸쿤 회의에서 이 내용을 관철하기 위한 대중적 캠페인을 조직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의 소농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국제조직인 비아 깜페시아(Via Campesina)를 비롯하여 중남미의 여러 좌파 세력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수천의 칸쿤’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되는 국제 공동 행동도 준비되고 있다(한국은 12월 7일, 오후 6시반에 종각에서 진행된다).

특히 멕시코 현지에서 10월부터 5개의 순례단(Caravan)을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는 캠페인이 이미 시작되었다. 기후변화와 시장주의적 기후정책에 의해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소농과 원주민들이 코차밤바의 요구를 앞세고 전세계 기후협상가들이 무기력에 빠져 있는 회의장에 들어서는 날, 칸쿤은 새롭게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칸쿤이여, 코차밤바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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