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보를 묻는다
        2010년 12월 01일 01:07 오후

    Print Friendly

    안보를 묻는다. 대화하라고 말하지 않겠다.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겠다. 문제는 안보다.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공격했다. 어떤 상황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명백한 도발이다.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나? 두가지다. 청와대가 처음에 선택한 단호한 대응과 확전방지가 정답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위기관리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의가 없는 시대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울림이 있듯이, 안보가 구멍 뚫린 시대에 안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북한의 도발을 현장에서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포는 고장나고 레이더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해할 수 없다.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해 아닌가?

    2009년 11월에 3차 서해교전이 있었고, 올해 들어와서는 북한 잠수함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침투해서 유례없는 신기술인 비접촉 폭발로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장소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렇게 안보태세가 허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구멍 뚫린 서해에서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천안함사건 직후 정부가 쏟아낸 단호한 말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안보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천안함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당연히 재발방지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무능한 안보

    군사안보에서 핵심은 정보능력이다. 정부의 말대로 연례적인 포격훈련이라고 하자. 그러나 북한은 대응공격을 하겠다고 경고했고, 실제로 해안포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상과 감청 정보를 분석하면 북한의 공격징후를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훈련을 하더라도 최소한 민간인 대피는 시키고 동시에 북한의 공격에 반격할 준비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정보판단에 실패했다. 군사적 긴장이 이미 고조될 대로 고조된 서해에서 정보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북한이 그동안 우라늄 농축시설을 짓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 정보 무능과 함께,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증오의 말이 아니라, 무너진 안보체계의 시급한 정비다.

    현장에서 자위권 행사를 충분히 했다면 확전방지 지침은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다. 승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초기대응에 실패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확전방지 지침을 번복했다. 위기를 관리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켰다.

    안보 무능이 경제위기 부른다

    현대의 안보개념은 포괄안보다. 군사안보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경제안보도 중요하다.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있을 때, 정부의 말 한마디가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 금융시장은 요동쳤지만 정부의 연기금 투입도 가세하여 곧바로 안정세를 회복했다. 과거 ‘북한 리스크’가 시장에 반영되는 관성이 순간적으로 작동했다.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한 시장 참여자들은 상황이 어떻게 수습될지 주목하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가 확전불사를 주장하고 나오자 시장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는 연기금을 투입하면서 금융시장 안정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리스크가 존재하는 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해외투자 바이어들이 방한 일정을 취소하고, 몇몇 국가에서는 자국민 철수계획을 검토할 정도로 위험한 국가가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경제의 약점인 ‘북한 리스크’가 이제는 ‘한반도 리스크’로 구체화되고 있다. 안보무능이 결국 경제위기를 부르고 있다.

    정부는 여론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당연히 북한의 도발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쟁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정부가 ‘전쟁의 공포’를 자극하는 순간,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이미 천안함사건을 겪으며 재확인된 학습효과가 아닌가? 멀지 않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 책임감을 상실한 정부

    정치안보도 중요하다. 난국일수록 국민의 단합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때일수록 초당적으로 협조를 구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지혜를 얻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민 다수가 참여하는 총력 안보태세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집권당은 전가의 보도처럼 또다시 과거 정부 탓을 한다. 2009년 4월부터 짓기 시작한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도 전 정부 탓이고, 이번 연평도 사태도 서해평화 정착을 추구한 전 정부 때문이라고 한다.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벌써 임기 3년이 지나고 있다. 언제까지 과거 정부를 탓할 것인가? 노무현 정부에서 서해경계선을 한뼘이라도 양보한 적이 있는가? 노무현 정부에서 한번이라도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을 겪은 적이 있는가? 이명박 정부가 서해 평화정착 방안을 계승해서 발전시켰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에 연계한 현 정부가 어떻게 북한의 핵개발 시도를 파악조차 하지 못했단 말인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이래서야 초당적 협력을 할 수 있겠는가? 왜 국민을 분열시키는가?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지 일부 극우세력의 대변자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난국을 수습하기 위한 지혜를 구하라. 냉전의 광기를 방관할 것이 아니라, 이성의 공감대를 구하는 노력을 보고 싶다. 그래야 전례 없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평화 만들기’ 없이는 ‘평화 지키기’도 없다

    그리고 외교는 어디로 갔는가? 안보역량에서 외교는 중요한 수단이다. 중국이 6자회담 수석대표 접촉을 제안한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조차 현재 상황을 극도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이 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하고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중국의 유일한 선택은 외교의 복원이다.

    물론 당장 외교가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고 미국 내에서도 중국 역할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중 양국 모두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의 중요성에 공감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해결의 시급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지난 2년처럼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편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같은 동북아 정세 변화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외교의 역할을 봉쇄하지 말아야 한다.

    평화가 사라진 시대, 평화를 말하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암흑의 시대가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서 묻는다. 평화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 제발 기존의 소극적 평화라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달라. 그러나 아는가? 갈등의 근원을 해소하는 적극적 평화의지가 없으면 현상 관리라는 소극적 평화도 불가능함을, 평화 만들기(peace making)에 대한 그림이 없으면 평화 지키기(peace keeping)도 어렵다는 점을. 그것이 분단체제의 특성이다.

    안보는 진보나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잣대로 국민을 가르고 여전히 역사적 책임감을 방기한다면, 미래는 없다. 이번 사태가 포괄안보의 의미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