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죽어간다, 뭔 증거가 더 필요한가?"
        2010년 11월 30일 03: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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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에는 무재해 시계가 있다. 목표 시간과 달성 시간이 나란히 놓인 시계는 무재해 기록 달성을 자랑하고 있다. 삼성의 무재해 역사는 길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은 1991년 11월부터 1998년 8월까지 104개월간 단 한 건의 재해도 발생하지 않아 세계 최고의 안전 사업장으로 1999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2000년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전사업장이 해외 재보험사로부터 무재해를 기록한 보상으로 보험료 10억 원을 환급받았다. 2002년 기흥공장은 전 세계 어느 사업장도 달성 못한 무재해 기록 60배(2억8천9백6십만 인시)를 달성하기도 했다.

    2010년 삼성전자에 다니는 한 엔지니어는 무재해 시계를 가리키며 말한다.
    "분명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시계가 안 멈추는지 모르겠어요."
    노동 과정에서 작업환경이나 업무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산업재해’라고 한다. 그러나 무재해 시계는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나고 사람이 다쳐도 멈추지 않는다.

    송창호, 한혜경, 김기영, 김옥이…… 故 황유미, 연제욱, 이숙영, 황민웅……은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그러나 산재 피해자는 아니다. 이들은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삼성은 유해물질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12시간 맞교대 근무가 노동자들의 면역력을 떨어트리지 않으며, 반도체 공정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노동자들에게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린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농성 중인 가족들.(사진=반올림) 

    "삼성에 적극 개입을 요청합니다"

    지난달 19일, 황상기 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공단의 대표브랜드 <희망드림> 간판 아래 엎드려 그는 무언가를 썼다. 기흥공장에서 일하다가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가 그의 막내딸이다.
    "공단아, 희망드림은 주둥아리가 아닌 실천으로!"

    흰 종이에 매직으로 쓴 글을 그는 근로복지공단 유리문에 붙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문구가 재밌었는지 슬쩍 웃는다. 그 웃음이 가시기도 전에 그는 근로복지공단 로비에 드러눕는다.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면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삼성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다며 산재 신청을 한 13명이 모두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항의를 하며 이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은 면담 대신 이사장실로 가는 통로를 막고 엘리베이터 작동을 멈췄다. 직원들을 향해 황상기 씨가 외쳤다.

    “내 딸만 산재 인정이 안 된 거면 나는 여기서 나가도 돼. 하지만 너희가 이러고 있는 동안 이건희는 계속 사람을 죽여!”
    어두컴컴한 엘리베이터 안에는 유영종 씨가 있다. 그는 중증 재생불량성빈혈로 9년째 투병 중인 유명화 씨의 아버지다.

    “나오세요. 이러다가 엘리베이터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직원들의 말에 그는 손을 내저었다.
    “난 괜찮아. 내 딸이 9년 째 집 밖엘 못 나가. 걔는 지금 몸이 나빠져서 골수가 와도 못 받아. 걔는 골수이식을 못 받으면……. 자식이 부모 앞세우고 가는 건 죄지만, 부모가 먼저 가는 건 당연한 거야. 괜찮아.”

    한쪽에서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가 근로복지공단 보험국장을 붙잡고 울먹였다. 그녀 또한 남편과 같은 반도체 공장에서 10년을 일했다.
    “내가 국장님한테 십 년을 일한 걸, 그 사연 많은 이야기를 조목조목 몇 시간을 했는데, 우리 앞에서는 알았습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근로복지공단이 뒤돌아 한 일은 산재 불승인 판정만이 아니다. 앞서 17일 국정감사에서 이미경 의원에 의해 근로복지공단 내부 공문 하나가 밝혀졌다.
    "소송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임을 감안하여 소송 수행에 만전을 기하라 … 삼성전자가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이 산재 재심사청구 행정소송을 앞두고 있었다. 공문은 삼성이 행정소송에 적극 개입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행정소송에 참가한 삼성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로펌의 변호사 6명을 대리인단으로 내세웠다.

    뇌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가 보험국장에게 물었다.
    “공단이 정말 깨끗합니까? 삼성과 아무 연관이 없는 게 확실해요? 책임질 수 있으세요?”
    보험국장은 책임질 수 있다며 "아니면 내 배를 째라"고 했다.

       
      ▲근로복지공단 간부에게 항의하는 가족들.(사진=반올림) 

    역학조사 결과대로 불승인을 한 거니 공단에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 삼성에 적극 개입을 요청하는 내부공문에 대해 묻자,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모른다고 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은 공정하며, 불승인 판정은 역학조사 결과에 따른 것뿐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역학조사 결과일 뿐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불승인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역학조사 결과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한 한혜경 씨의 산재 심사결정서에 따르면, 불승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팀은 납과 유기용제 등에 노출됨은 인정하나, 과거 근무 당시 시행된 ‘작업환경측정’에 따라 그 노출량이 미비하고 … 공정은 국소배기장치가 가동되고 있는 밀폐장치였음이 확인되는 바 … 작업환경과 암의 발병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한혜경 씨는 33%가 납 성분인 솔더크림을 6년간 사용했다. 그녀는 뇌종양에 걸렸고, 종양제거 수술 후 1급 장애 판정을 받는다. 그녀는 늘 작업장에서 냄새가 났다고 한다. 그러나 역학조사는 국소배기장치가 문제없이 작동했다고 판단한다.

    국소배기장치가 가동되었는지, 납의 노출량이 미비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한혜경 씨가 일한 LCD 공정은 사라졌다. 2001년 퇴사 후, 그녀가 병에 걸리고 수술을 하고 반올림을 알게 되는 데만 9년이 걸렸다. 1년마다 칩의 밀도가 2배로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 9년이란 세월은 설비가 바뀌고 라인이 없어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한혜경 씨만이 아니다. 황유미, 이숙영 등 백혈병 환자를 배출시킨 기흥공장의 1~3라인은 이미 교체됐다. 림프종 환자 송창호 씨가 일한 온양공장 도금공정도 외주화되었다.

    그/녀들이 일한 작업장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역학조사를 한다는 걸까? 병과 작업환경이 무관하다는 결론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 작업환경 기록, 유사업종에 대한 연구문헌, 피해 당사자나 동료들의 진술을 통해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다.

    역학조사를 담당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 중 ‘작업환경측청’ 기록을 증거로 채택했다. 작업환경측정은 당시 삼성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조사다. 작업환경측정 내용이 실제 작업환경과 다르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픈 당신이 증명하라"

    산재 피해자들의 행정소송 첫 변론이 11월 25일에 열렸다.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과 삼성전자가 각기 변론을 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영상을 준비했다. 삼성 기흥공장 작업환경을 찍은 영상이다. 자동잠금장치와 배기 시설을 담은 영상을 통해 그들은 삼성반도체의 작업환경이 무해함을 주장했다. 작업장 내에서 한 몇 가지 실험도 보여주었다.

    삼성 대리인단이 공장에서 영상을 찍고 실험을 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공장 안에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올해 4월 삼성이 산재문제에 대한 해명을 하겠다며 언론에 기흥공장을 공개했을 때도, 정작 피해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배제됐다.

    같이 가겠다며 버스에 올라탄 정애정 씨를 홀로 남겨두고, 기자들이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공장에 들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개되지 않은 건 반도체 공장만이 아니다. 역학조사 및 반도체 사업장 유해요인 자료도 ‘영업비밀’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공정에서 사용한 화학물질의 성분조차 알지 못한다. 오직 그/녀들이 아는 것은 작업장에 늘 냄새가 났고(이윤정), 제품을 맨손으로 만지면 몸에 발진이 일었고(유명화), 생리를 하지 않았고(한혜경), 잦은 구토가 일어나는(신송희) 등 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며, 12시간 교대근무를 했고, 일은 많았으며, 안전교육과 안전장비가 미비했다는 사실뿐이다.

    삼성이 고용한 로펌이 변론을 위해 공장 안 영상을 찍는 동안, 피해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기억 밖에 내세울 게 없다. 대기업처럼 저명한 연구기관을 불러 환경측정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은 말한다. "증거를 가져와라.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는 상당한 인과관계를 입증할 증거를 가져와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병과 작업환경은 무관하다고 한다. 반올림 공유정옥 산업의학 전문의는 말한다. 삼성과 정부가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증거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이미 사라진 공정, 노동자들의 진술보다 회사 측 기록을 증거로 채택하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삼성보다 가진 것 없고 병든 노동자가 어떻게 명확하고 인과관계가 분명한 증거를 내밀 수 있을까.

    그/녀들은 풍족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돈을 벌기 위해 삼성에 들어갔다. 일을 하다가 병에 걸려 몇천 만원이 넘는 돈을 치료비로 썼다. 건강을 잃었다. 거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증거를 찾아야 한다. 자신이 일하다 병에 걸렸다는 증거를 말이다.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어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국정감사가 있던 날,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반올림 기자회견에서 정애정 씨가 한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멈추지 않는 무재해 시계

       
      ▲공단 앞에서 1인 시위중인 가족(사진=반올림) 

    산재신청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아직 삼성에 근무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올 불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당장 생활비도 치료비도 부족하다. 산재신청을 하는데 쓸 시간도 여유도 없다.

    삼성은 산재가 아니라고 한다. 위로금을 쥐어주면서 산재신청을 철회하라고 요구한다. 대기업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냐고 한다. 작업환경을 증언해 줄 동료들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산재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높다란 문턱이다.

    이는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2009년 산재 불승인 비율은 60%를 넘었다. 2007년 54.6%보다 무려 7%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추세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인정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사고로 인한 재해가 아닌 암이나 신경계 질환은 더욱 산재로 인정되기 힘들다. 2009년 뇌심혈질환의 산재 불승인율은 84.8%다. 10명이 신청하면 2명도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녀들은 일을 했다. 다치고 병들었다. 그러나 산재는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무재해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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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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