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하고 강력한 그들의 수사학
        2010년 11월 28일 10: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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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장하준, 우석훈, 박명림, 손호철 같은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들이 존경을 표하는 학자인 앨버트 허시만의 책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이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15000원)가 나왔다.

    보수의 신념보다 언술 분석이 중요

    세계적인 석학이자 ‘불균형 성장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비주류 경제학자인 저자는 1980년대 미국에서 세력을 얻어가는 신보수주의자들을 보며,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신념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의 담론, 주장, 수사법과 같은 언어적 현상이 발휘하는 힘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저자가 프린스턴 대학 고등연구소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할 당시, 수백 년간 진행되어온 세 가지 정치적 수사에 대해 분석한 책으로, 정치경제학, 이데올로기론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책이지만, 국내에는 이번에 처음 번역되었다.

    저자는 약 200년간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역사적 변환의 국면마다 작동하는 ‘반작용 레토릭’의 근원을 밝혀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성공과 인권선언, 19세기 보통 선거권의 도입, 20세기 복지국가의 수립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유명한 논쟁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하여 변화에 ‘반동(react)’하고자 하는 세 가지 논리를 추출해낸다. 그 세 가지는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누구나 ‘보통선거권’을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지만, 18세기에는 진보적 비판자였던 입센과 같은 이들도 ‘무능한 다수의 지배’이며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라고 이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렇듯 우리가 지금은 아주 초보적이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도,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하던 당시에는 다양한 정치적 의도가 펼치는 공세들에 직면해야 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이 ‘의도’를 가진 공세들에게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 실패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 패턴이 발휘하는 ‘힘’은 막강하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패턴, 실패해도 힘은 막강

    예들 들어 그는 토크빌이 “프랑스 혁명이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이미 그 변화는 혁명 전에 존재했었다”라고 분석하는 데 대해, 그것이 혁명의 성과를 어떻게 ‘무용화’하는 힘을 발휘하는지 등을 밝힌다.

    저자는 『전쟁론』으로 유명한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인용해 “가장 발전된 민주 정치에서조차 많은 토론들은 ‘다른 방법으로 내전을 계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모습들은 2010년 한국에도 재현되고 있다.

    이 책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학’의 틀을 ‘드러냄’으로써, 그 주장이 어떻게 ‘비실효적인’인지를 밝히는 데 있다. 이 책이 인류의 역사에 대한 한편의 재미있는 보고서임과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주는 것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러한 레토릭이 ‘자동차 속도 제한에 대한 규제 정책’이나 ‘자녀부양가족지원제도’와 같은 정책적인 문제에 발동하는 측면에 더 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인류 역사의 ‘발전 법칙’이 아닌 ‘반작용의 법칙’을 밝힌 앨버트 허시먼의 저서가 2010년 한국에 유효하다면, 바로 이와 같은 현실적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단순해서 더 완벽해 보이는 보수의 수사학은 단순해서 더 완벽해보이고, 강력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 역효과 명제와 무용 명제 그리고 위험 명제의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자.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역효과 명제)

    “산업재해보험 제도를 도입하면 노동자들은 일부러 자신의 손발을 자를 것이다.”
    역효과 명제는 단순히 어떤 정책이나 운동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나 좋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회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시도는 당연히 사회를 움직이기는 하지만 의도된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하는 대단히 대담한 지적 책략이다.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무용 명제)

    “혁명의 성과들은 이미 구체제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혁명으로 도대체 바뀐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용 명제는 변화에 대한 시도가 허사라고 말한다. 즉,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어떤 변화라는 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표피적이고 외형적이고 표면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깊숙한’ 사회 구조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위험 명제)
    “투표권을 확대하면 가난한 바보들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다수파와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다.”
    위험 명제는 새로운 진보를 위해 옛 진보를 희생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판단하려 한다. 만약 새로운 개혁이 시행된다면 어떻게 해서 귀중한 이전 개혁을 특히 최근에야 이루어낸 그것을 치명적으로 위태롭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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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앨버트 허쉬만

    좌우 모두에서 인정하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분배의 기능에 주목한 ‘터널 이론’을 주장하고, 몰락하는 조직에서 발생하는 ‘이탈, 저항, 충성’의 행동 유형을 분석하는 등, 현대 경제학사의 주요 틀을 제시한 석학이다. 특히 허시먼은 개발도상국의 발전 과정에 연구에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틀을 적용하여 큰 성과를 남겼다.

    허시먼은 1915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소르본느 대학과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트리에스테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과정 중에 프랑스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였으며, 마르세유에서 나치로부터 난민들의 탈출을 돕는 일을 했다.

    1940년부터는 UC 버클리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FRB(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유럽 책임자와 콜롬비아 보고타의 경제 자문을 지내기도 했다. 1956년부터 예일 대학, 컬럼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옮긴이 – 이근영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에섹스(Essex)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문화 철학, 문화 사회학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케이블 방송국 GTV에서 외화 편성을 담당하는 일을 시작으로 인터넷 방송사 REAL TV 대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 경영실장 등을 거쳤다. 현재 「프레시안」의 문화회사인 ‘프레시안 플러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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