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나이에 상임위원장 맡고 보니
    수면제 먹어야 잠…좌절과 보람 사이
        2010년 11월 26일 08: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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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장님, 너무 힘듭니다.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저도 많이 힘듭니다. 우짜겠습니까. 전생에 서로 어떤 관계인지 몰라도 우리의 포지션이 달라서 그러하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틀 전 해운대구 집행부에서 준비하는 조례 한 건을 부결시키고, 한 건은 보류시키면서 집행부에서 난리가 났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통과되어야 할 집행부 조례가 부결 혹은 보류가 되는 획기적인(?)인 일들이 발생하자 해운대구청의 고위급 공무원이 애걸복걸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햄릿형 스타일인데"

    그런데, 이렇게 집행부 안건을 안면 몰수하고 저지 혹은 부결시키는 것은 사실 나도 너무 힘이 든다. 서로가 싸늘한 눈빛을 주고받고 나서 의회를 빠져나오면 사실 보람보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짖누른다. 예전에 공공노조에서 일했던 후배 놈이 나한테 한말이 문득 떠올랐다.

    “광모 형은 천성적으로 절대 확신범이 될 수 없어요!”

    맞다. 나는 천성적으로 거절도 잘 못하고, 하나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다른 의견을 묵살시키는 악역을 잘 못한다. 대신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는 일들에 더 익숙한 스타일이다, 라고 주장하고 싶다. (아니면, 소심한 햄릿형 스타일 ㅋ)

    그러나, 어린 나이에 상임위원장을 맡고 나서는 어쩔수 없이 악역(?)을 감내해야만 했고, 이것 때문인지 몰라도 의정활동을 시작한지 두 달째에는 화병인지, 우울증인지 몰라도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도 못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고, 이왕 4년간은 정치인으로서 생활해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담력과 배짱을 키워나갈 수 밖에 없다. 여러분 많이 도와주세요, 제발.

    7월 해운대구 의회에 등원을 하고 의정활동을 시작한 지 5개월째 접어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구의원의 신분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는 좌절감이, 때로는 일부분이라도 문제 해결이 이루어졌을 때는 자긍심과 보람이 생겼다.

    좌절감과 보람 사이

    특히, 1년 이상을 끌어온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및 임금 지급 문제는 의회권력과 위상을 제대로 인식시켜 준 일이었다. 매일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일인시위가 있었고 문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부장의 분신시도도 있었다.

    등원하기 전인 6월부터 함께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있었고, 저를 포함한 박욱영, 화덕헌 진보신당 의원과 민주노동당 지주학 의원, 민주노총이 연대를 하여 의회 안팎에서 압력을 넣었다. 해운대구 의회는 한나라당 10명(친박 8명, 친이 2명), 진보신당 3명, 민주당 3명, 민주노동당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과 비교하여 많은 수의 야당 의원이 진출한 것과 한나라당 내의 권력 관계 등으로 인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아니 이전에는 안건 상정조차도 잘 되지 않던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직접임금비 지급 및 처우개선(작업장에서의 샤워실 및 세탁기 설치)이 등원한지 2달도 채 안되어 해결이 되었다.

       
      ▲진보정당, 노조, 시민단체 합동 기자회견. 

    나의 지역구에서 발생한 우신골든스위트 화재사건 때에 무고한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기소되었을 때, 진보정당과 의원단, 노동조합, 시민단체와 함께 억울한 환경미화원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도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직접 조직했고,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특히, 공공노조에서 다음아고라 청원 1만명 돌파와 환경미화원노동자들의 직접 현장인터뷰는 여론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루에도 수없이 중앙 및 지역언론사에서 나에게 환경미화원노동자들과의 현장취재 요청이 있었지만, 연세가 지긋한 환경미화원노동자들이 더 이상의 언론과의 인터뷰에 부담감을 느껴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직 검찰에 사건송치가 되지는 않았지만, 여론의 부담과 여당의 협조로 인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인권조례 전국 최초 통과시켜

    아무래도 나에게 그동안의 의정활동에서 가장 보람을 가지게 한 것은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최초로 11월 1일에 인권조례를 통과시킨 사실이다. 소수정당의 의원이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를 통과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조례를 통과시키기 위한 전술적 방안과 내용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또한 조례 한 건 통과시키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를 통해 충분히 인권조례 내용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 속에서 기초수급권자의 인권침해 사례, 다문화가정 이주여성을 위한 정책생산, 개개인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아니한다는 내용 등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전에 진주시의회에서 인권조례를 추진하다가 부결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진주시 집행부에서 인권조례에 대한 상위법의 부재, 인권조례의 내용이 국가사무인지 지방사무인지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례로서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고, 또한 다수당의 비협조로 인해 진주시의회에서 인권조례는 부결되었다.

    하지만, 이후 행정안전부 부령 및 대법원 판결소추,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을 검토해보니 기초자치단체에서 인권조례를 개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앞의 전례를 꼼꼼하게 따져 우선 국가인권위원회의 도움으로 조례제정 가능성의 법률적 근거를 5분발언을 통해서 밝혔고, 기획관광행정위원회 소속의 한나라당 간사 의원과 공동발의 제안을 통해 여야 간의 표결로 가지 않고,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 조례의 제정을 통해 해운대구에서는 인권증진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인권증진 5개년 계획 수립 및 예산확보를 통해 해운대구의회를 통한 인권운동을 진행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의원+정당+보좌관’ 삼위일체 돼야

    12월 일정을 점검해보니 인권조례 제정과 관련된 각종 토론회, 지역언론사와의 잦은 인터뷰, 심지어 해운대 화재사건으로 촉발된 산업안전법 관련 국회토론회에도 초청을 받은 상태이다. 이외에도 각종 기자회견 및 지역민원 해결, 연대투쟁 참가 등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당장 행정사무감사부터 착실히 준비해야 되는 상태다. 일정이 꽉차있고 바쁘지만, 그래도 든든하게 밑고 기댈 구석이 있다. 다름아닌 정책보좌관이다. 현재 진보신당 해운대구의원 3인의 공동정책보좌관을 맡고 있는 김문령 동지는 이전에 민주노동당 김영희 시의원의 보좌관으로 경륜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지역언론에서는 진보신당 구의원들이 급여를 갹출하여 사무실을 마련하고 유급보좌관을 채용한 것은 예전에는 경험할 수 없는 지방정치 발전의 모범사례라고 많은 칭찬과 격려가 있었다. 또한 정책보좌관을 통한 착실한 자료 준비는 다른 당의 동료의원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받고 있다.

       
      ▲필자.

    힘들더라도 ‘지방의원+정당+보좌관’이 삼위일체가 되어 앞으로 계속 노력한다면 적어도 해운대구에서는 진보정당의 의원은 뭔가 달라도 다르고 능력도 있다는 것을 4년 동안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지역에서부터 집권을 밑그림을 생생하게 그릴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못난 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화병과 울증이 괴롭히더라도,
    경상도 말로 "우짜라고? 힘들지만 계속 간다. 캬악~"

    그건 그렇다치고, 나의 개인적인 삶은 어찌할꼬, 아무튼. 

    * <레디앙>이 진보신당 소속 김광모 해운대구 구의원의 생생한 의정일기를 연재합니다. 지역 정치의 모범사례를 만들고 있는 현장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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