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군사훈련, 상황만 악화시킨다
        2010년 11월 25일 10: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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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비유가 아닌 실제다. 방아쇠는 북쪽에서 먼저 당겼다.23일 연평도에 군부대와 민간인 가옥을 가릴 것 없이 무모한 포격을 감행해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죽고 수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정치권 등에서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자 도발”이라며 강도 높은 규탄 발언과 강경 대응 요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를 ‘평화’를 재촉하는 방향이 아니라, 전쟁을 부추기는 쪽으로 몰고가고 있다.

    확전을 막기 위한 상황관리를 강조하던 한국 정부의 대응조치 역시 강경 대응 기조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긴장이 급격하게 고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오바마 미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예정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28일 서해에서 실시키로 합의하고 훈련 강도 또한 높이기로 했다. 미국은 이 훈련에 핵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를 파견할 예정이다. 아울러 한미는 연합위기관리팀을 가동하고 정규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실시될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할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함이 독도함(1만4000톤급), 한국형 구축함(4500톤급), 미 이지스 구축함 등과 함께 항진하고 있다.(사진=국방부)

    북한이 그동안 한미합동훈련 실시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고 몇 차례 서해안에 대응사격을 해왔던 점에 미루어 이번 합동훈련에 대해 북한의 대응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 불과 3개월 전 북한은 한미합동훈련이 끝나자 NLL 해상에 백수십발의 해안포를 포격했고, 10여발은 백령도 근해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남북 정권의 강경기조가 형성되고, 상황이 ‘관리 수준’을 넘어설 경우 국지전을 넘어서는 확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4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교전수칙 변경까지 언급되기도 했다. 북한의 무분별한 포격에 피해를 당한 처참한 현장 모습은 ‘대응’이 아닌 ‘응징’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더 강화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도발이 확전될 경우 그 후폭풍의 규모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다. 정당 및 시민단체들이 이번 북한의 포격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고, 보수정치권에서는 강력대응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전면전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고 그 가능성 또한 낮게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한미합동훈련이 서해안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 북한은 물론 충격 속 관망에 나서고 있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성장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미합동훈련을 서해상에서 벌일 경우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북중관계를 오히려 긴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역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넘어갈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면서도 “핵항모까지 동원한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8월 포격도 한미군사훈련 직후 벌어진 점을 감안할 때 이번 무력시위로 북한을 억제할 수 있을지도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중국을 자극해 긴장감이 더 고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해안포 공격이 도발적 행동이지만 그 과정을 놓고 보면 지난 1년 동안 서해상에서 내내 한미합동훈련 등을 벌이며 긴장감을 조성해왔고, 이것이 악순환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합동훈련을 강화한다면 제2의 사태까지 불러올 수 있으며 실제 문제해결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성장 연구원은 “북한에서 수차례 (훈련포 사격을 중지하라는)전통문이 왔을 때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미리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했다”며 “오히려 북한이 공격했을 때 전면 타격을 가했다면 북한의 도발이 어려웠을 텐데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다음에 또 공격하면 강력대응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버스 떠난 후 손 흔드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조건 북한의 통신문을 무시한다면 이런 사태가 또 올 수 있다”며 “앞으로 북의 도발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세우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금 북한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중국의 협조”라며 “서해합동훈련을 강화하면 중국의 협조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으로서는 대화를 통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등을 받아내는 것이 우선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경순 부소장은 “핫라인을 재가동하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며 “국민들의 공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강경대응으로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힘으로 북한을 누르기는 어렵고 전면전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며 “불신과 대립의 남북관계를 대화와 협력관계로 전환하고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부소장은 “정부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님에도 대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정욱식 대표도 “장성급 회담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듣고 정전협정 위반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정성장 연구원은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압박을 주문했다. 정 연구원은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경제제제를 가하고 인도적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북한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평화박물관 상임이사)는 “이번 일은 한미동맹이 약해서 발생한 사태가 아님에도 강경하게 더욱 문제를 만들어 대화를 단절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가 여론을 추스르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주도해 확전 여론을 확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NLL에서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는 만큼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미 강경대응으로는 이 정권과 UN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전면전을 제외하고 사실상 다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 정권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서해안 평화구역을 실행하는 등 변화가 없다면 이런 일은 주기적으로 되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전면전으로 치닫는다면 과연 누가 더 많이 잃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G20을 해서 350조의 효과를 얻었다고 선전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경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쟁은 안된다는 마음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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