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투쟁도 '포사격' 유탄 맞나?
By 나난
    2010년 11월 24일 01: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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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하던 공장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한순간 조용해졌다. 3~4명씩 모여앉아 휴대전화 DMB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북한이 연평도에 수십 발의 포사격을 해, 군인과 민간인 등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언론의 긴급뉴스가 휴대전화의 작은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중동이 또 시비거는 거 아니가?"

“진짜가?”,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가?”라며 여기저기서 걱정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론은 북한의 연평도 포사격 사건을 특집으로 보도했고, 다른 모든 뉴스들은 북한 공격 뉴스에 ‘피폭’당했다. 또 다시 걱정의 소리가 나왔다. “언론의 관심이 다 연평도로 집중되겠네”, “조중동이 또 이런 시국에 무슨 파업이냐며 떠들어대겠다”며 한숨이 이어졌다.

실제로, 북한의 연평도 포사격 사건이 발생한 23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지회)의 파업으로 쏠렸던 사회적 관심이 일제히 연평도로 집중됐다. 사내하청지회 파업과 관련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의 언론 인터뷰 2개가 모두 취소됐고, 24일로 예정됐던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야5당과 민주노총 합동 기자회견도 취소됐다.

   
  ▲ 23일, 정규직 조합원들과 사내하청지회 가족대책위가 보낸 음식물이 울산1공장에 들어오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울산 1공장에서 23일 9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아무래도 언론의 관심이 연평도로 돌아갈 것이고, 대포폰과 비정규직 파업 역시 묻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파업의 목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며 “더 열심히 싸우고 정당성을 알린다면 우리의 싸움 역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위터에서는 연평도 포사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접목해 “울산 현대차 공장은 오늘로써 교전 9일차”라며 “비정규직의 눈물겨운 교전을 잊지 말아달라”는 호소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실질적인 연대도 이어졌다.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면파업을 벌였으며, 기아자동차 화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1,800여 명이 2시간 잔업거부를 하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했다.

"비정규직 교전 잊지 말아달라"

이상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분회장은 “파업까지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오늘은 잔업거부지만 앞으로 투쟁을 더 확대할 것을 약속한다. 향후 현대차 사내하청지회와 공동투쟁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정규직 연대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도 정규직 노조 대의원들은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가족대책위가 준비한 음식물 등을 공장 안으로 반입시켰다. 덕분에 하루에 두 끼 주먹밥과 김밥으로 때우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랜만에 컵라면과 흰쌀밥, 김치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가족과 공장 밖 조합원들에게 “오늘 저녁은 푸짐한 한정식”이라며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음식물을 더 많이 갖다 주지 못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은박매트와 비닐에 의존해 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것을 미안해했다. 정규직 노조인 현대차지부 대의원은 “특히 1공장 정규직 조합원들은 형, 아우하며 지내던 비정규직 조합원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어 물품 등을 갖다 주고 싶어 한다”며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부탁으로 헌옷과 양말 등을 전달해 달라며 대의원들에게 가지고 오지만 관리자들의 감시 때문에 반입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울산1공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밥으로 한끼를 때우고 있다.(자료=이은영 기사)

한편, 이날 공장 안에서는 한 비정규직 조합원의 아내의 편지글이 ‘아빠’ 노동자들을 울게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내인 그는 “‘잘 지내고 있냐’는 인사, ‘밥 잘 먹고 있냐’는 인사, ‘춥지는 않냐’는 인사는 접어 둘게… 못 지내고 있어도 ‘잘 지내고 있다’, 못 먹고 있어도 ‘잘 먹고 있다’, ‘견딜만 하다’는 대답들만 할 거 뻔하니까”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노동자들 울린 편지

이어 그는 글에서 “군인이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잘 먹고 잘 지낸다’는 그런 거짓말이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든다”며 “남들이 100원을 받아 집에 들여다 주면, 오빠는 50~60원 받아, 40~50원 치의 미안한 마음을 채워 100원을 만들어다 주는 사람”이라며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또 현대차 사내하청지회의 파업에 대한 지지 및 불법파견 철폐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전개와 관련해 “어느 할머니가 ‘새댁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어린 것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데리고 이 추운 날에 싸인을 받으러 나왔노? 여 와 앉아 밥 한 그릇 묵고 가래이. 돈은 내가 내줄테니까. 애기 아부지 일은 잘 되낄다. 걱정 말고, 내 종이 한 장 도가. 경로당 가서 할마이들한테 도장받아 줄꾸마’라고 했다”며 “결코 내가 나쁜 세상에 사는 게 아니구나, 내가 지금 구걸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불 안 가리고 앞만 보며 더 열심히 투쟁에 동참할 것”이라며 “나는 오늘도 열심히 서명운동 하러갔다가 집회 참석할게”라고 말했다. 해당 편지글을 읽는 동안 한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눈시울은 붉어졌고, 여기저기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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