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아이 잃은 부모앞에 돈 얘기만"
        2010년 11월 23일 06: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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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에서 발언 중인 정애정씨. 

    2004년, 삼성반도체 사내 커플인 정애정, 황민웅 부부에게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정애정씨가 둘째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 황민웅씨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렸다. 감기인 줄 알고 병원을 찾은 날, 그는 바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삼성 사내방송국에서 이 부부를 찾아왔다. 그 방송을 통해 황민웅씨는 임신한 몸으로 자신의 병수발을 드는 아내에게 진심을 전했다.

    “와이프가 너무 많이 고맙고……. 이 세상에서 어떤 여자보다 가장 사랑하고요. 제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남편이 될 거예요.”

    영상을 본 삼성전자 직원들은 모금을 했다. 회사는 모금액을 전달하는 자리를 열었다. 정애정씨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전했다. 몇 달 후, 남편 황민웅씨는 세상을 떠났다.

    삼성은 내게 울타리나 마찬가진데……

    정애정씨는 삼성을 퇴사한 후,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낳은 딸과 아빠를 꼭 닮은 아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이런 생활이 적응될 무렵, 정애정씨는 아는 선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선배는 남편의 죽음이 산재일지도 모르다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한 달을 고민했다.
    “뭘 고민했냐면, ‘삼성이 나한테 울타리나 마찬가진데……’ 그 생각을 했어요. 지금 보면 일종의 세뇌 같은 거예요. 삼성에 대한 막연한 믿음…….”

    퇴사 후에도 사원카드를 버리지 않을 정도로 직원들은 삼성을 다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정애정씨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삼성은 남편을 만난 곳이다. 사내 합창대회 연습을 하던 중 남편을 만났다. 큰 키에 훤칠했던 남편은 누구보다 눈에 띄었다.

    장난을 치는 걸로 애정을 표현하는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속은 깊고 다정했다. ‘선배’라 부르며 어울리는 사이에 정이 들었다. 삼성은 단지 회사가 아니라, 남편과 추억의 공간이자 10년을 근무한 그녀의 젊은 날 전부였다.

    그런 회사가 남편을 죽였다니,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일단 만나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반올림에 연락을 했다.

    “그때가 반올림 초창기라 이 사람들이 반도체 공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예요. 오히려 내가 작업환경이 어땠는지를 말해 주고 있더라고요.”

    제보자는 적었고, 반도체 공장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어떤 약품을 쓰는지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많은 부분이 ‘영업비밀’이었다. 정애정씨는 자신이 일한 작업환경을 설명했다. 되돌아보니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위험하다는 생각도 못하고 지냈는지 놀랍기만 했다. 가스누출은 잦았고, 방사능이 나오는 기계 잠금장치를 수동으로 풀어 제품을 꺼내는 일은 빈번했다. 위험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지나가는 말로 ‘그거(불량난 웨이퍼) 맨손으로 만지지 마라’ 그 한마디 들었어요. ‘하지 마라’ 라는 말은 들었지만 왜 만지면 안 되는지는 듣지 못했어요. 10년 동안 일을 하면서 그 말을 딱 한번 들었는데, 좀 생각 있는 사수를 만나면 듣는 거고 아니면 못 듣는 거예요. 그런 식이였어요.”

    이런 작업환경에서 건강할 리 없었다. 남편의 죽음은 분명 회사와 관계가 있다.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

    “애기들이 살아서 숨 쉬잖아요. 애기들한테 자기 아빠의 죽음에 대해 규명을 해줄 수 있었야 해요, 제가.”
    아이들은 가끔 아빠를 찾는다. 아빠 얼굴도 모르는 둘째 예인이는 “아빤 하늘나라로 갔는데 왜 안 와요?”라고 묻는다. 그럴 때면 오빠가 대신 대답을 한다.

    “아빠 죽었는데 어떻게 와. 엄마, 아빠 못 오죠?”
    그러면서 묻는다.
    “엄마도 아빠 보고 싶죠?”
    두 아이의 엄마인 정애정씨는 삼성에 대한 헛된 추억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진실을 선택했다.

       
      ▲연제욱씨가 근무한 삼성 LCD 공장 앞 집회. 

    제보 약속 당일 아무도 나오지 않아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애기 아빠가 인간관계가 좋았어요. 이 사람이 동료도 되게 많았어요. 장례 치를 때까지만 해도 납골당까지 안치하는데 그 뒤를 이루는 행렬이 차 30대가 넘어가지고, 거기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어요. 그 정도로 사람도 많고, 그렇게 애도하는 사람도 많았는데요, 이 싸움 하면서 도움을 받으려고 전화하니까 다 연락이 안 돼요.”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건 정애정씨만이 아니다. 오빠 연제욱씨를 잃은 연미정 씨도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에 다니던 연제욱씨는 종격동암이라는 희귀성 암에 걸려 1년 6개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연미정씨와 가족들은 혼란에 빠졌다. 당시 오빠 나이가 27살이었다. 건강한 사람이었다. 병이 걸릴 이유가 없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연미정씨는 오빠의 회사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료들은 아는 데까지 전부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 당일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한 김기영씨는 이를 두고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직장인이 인사과에 간다는 것은 우리나라로 보면 검찰에 끌려가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제보하면 어떻게 될지 뻔하죠. 자식 있는 사람은 직장이라는 게 생명끈이나 마찬가지인데.”

    그의 후배도 반올림에 제보를 한 적이 있었다. 후배 박진우씨는 반올림을 먼저 찾아왔다. 그는 주교철(백혈병으로 투병 중), 남택신(흑생종으로 사망) 등 직업병이 의심되는 같은 부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얼마 후, 박진우씨가 다시 반올림을 찾아왔다. 제보 내용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2009년 국정감사에서 그는 삼성반도체가 백혈병과 무관함을 밝히는 회사 쪽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기영씨에게 반올림을 알려준 것도 후배 박진우씨다. 그러나 웨게너씨 육아종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김기영씨가 산재신청을 하려 하자, 후배는 그에게 퇴사를 권했다. 박진우씨 개인 의견이 아니었다.

    후배의 배신, 회사의 퇴사 권유, 김기영 씨는 십년 넘게 일해 온 곳으로부터 버려진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퇴사를 했고, 2010년 5월 반올림을 통해 산재 신청을 했다. 지금도 그는 반올림을 찾은 날이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 생각이 나서다. 그러나 그는 다짐하듯 말한다.
    “후회하는 건 없어요. 삼성에서 10억을 준다고 해도 양심상 찔려서 못 받아요, 이제는.”

    삼성은 돈 이야기만 했습니다

       
      ▲연미정씨와 어머니. 

    연제욱씨의 가족도 산재신청을 했다. 결과는 불승인이었다. 3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역학조사도 없었다. 재심사를 청구하려 하자 삼성 직원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차장이라는 사람이 위로금 2억을 제시했다.

    “제욱씨 병은 겉으로 드러난 게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데 삼성은 초일류 기업이라서 성의 표시를 하는 거”라고 했다. 초일류 기업 삼성은 산재 재심사청구를 할 경우 이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지난 7월 삼성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에서 연미정씨는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며 말했다.
    “아들을 잃은 부모님 앞에서 삼성은 돈 이야기만 했습니다.”

    삼성의 돈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황유미(2003년 기흥공장 입사, 백혈병으로 사망), 박지연(2004년 온양공장 입사, 백혈병으로 사망) 등 피해자들에게 ‘민주노총, 반올림, 언론과 접촉하지 말고 산재신청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위로금을 제시했고, 이 사실이 이날 증언대회에서 밝혀졌다.

    삼성전자는 2010년 활동 목표를 ‘무재해 녹색 사업장 구현’이라 밝혔다. ‘무재해’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안전교육을 강화해서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 산재 신청을 돈으로 철회시키고, 산재신청 불승인 판정을 위해 증인을 조작하고, 내부 입단속을 해서 무재해를 이룰 수도 있다. 선택은 삼성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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