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국가 의제 비껴간 '감세논쟁'
        2010년 11월 23일 01: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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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감세 프레임’론까지 등장하며 격화될 것으로 보였던 여당발 감세논쟁이 결국 ‘법인세율 인하-소득세율 유지’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논쟁 지속 바라지 않는 정부

    한나라당은 22일 예정됐다가 24일로 미뤄진 의원총회에서 이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룰 예정이지만, 위와 같은 타협점에서 크게 벗어난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지난 15일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 의원이 법인세는 종전 계획대로 인하하고 소득세율은 현행 유지하는 일종의 절충안을 내놓았고, 7일 비공개로 진행된 당정청 9인회의에서도 법인세율은 인하하고 소득세율은 유지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 쪽에서도 원론적인 이견 정도를 보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강만수 경제특보의 감세유지 발언이 있긴 했지만, 청와대 역시 이 논쟁의 종착점이 결국 국가채무에 대한 정부 책임 문제까지 확대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논쟁의 지속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도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논쟁의 신속한 종결은 이 대통령이 주문한 바이기도 하고, 소득세율 인하 문제는 내년에 다시 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의 전개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이번 감세논쟁은 일각의 기대와는 달리 복지국가 논쟁과 무관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재원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국가채무에 따른 국민부담의 증가에 반대한다는 것이 감세 반대론자들의 주요한 논지였던 것이다. 복지국가를 매우 좁게 해석하면 바로 조세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감세논쟁은 국가의 조세와 재정정책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지 못하고, 국가채무 위기에 따른 일시적 조정 정도로 봉합되었을 뿐이다. 이번 감세논쟁의 진원지가 다른 데도 아닌 집권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 나왔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누구의 바람대로 정책정당의 면모를 부여주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말의 정치’에 그친 것이다.

    둘째, ‘말의 정치’란 레이코프(G. Lakoff)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레임의 정치’라고도 할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세금폭탄’ 프레임을 놓고 공방을 벌였던 것에 비하면, ‘부자감세’ 프레임에 대한 정부여당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끼게도 된다.

    프레임 형성 시민사회가 주도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프레임의 정치는 정치세력의 전략적 주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집권당의 정책실패를 배경으로 시민사회에서 주도하여 형성된 것이다. 이번 감세논쟁에서 민주당 등의 야당이 논쟁의 장에서 배제된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런 이유에서이다. 감세논쟁을 복지국가논쟁으로 전화시킬 능력이 야당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셋째, 역설적이게도 이번 논쟁을 통해 정부와 여당의 친기업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전체 감세액 가운데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80%를 차지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소득세율에 대한 현행 유지 혹은 과표구간 변경으로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세수비율이 실제적으로 미미하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도 ‘법인세 인하-소득세 현행유지’라는 절충안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평가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선거패배의 원인을 프레임 설정에서 찾아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들의 필독서로 회자되었던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가 출판된 것이 2006년이었다. 이듬해 미국 정치체제를 법인체의 지배(corpocracy), 즉 대기업 지배체제로 규정하고, ‘선거의 덫’에서 빠져나와 시민사회의 풀뿌리 운동과의 적극적 연대를 주창한 미국의 사회학자 더버(C. Derber)의 『히든파워』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레이코프의 책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진보정치의 근본적인 목표 즉, 미국 정치체제의 변동의 관점에서 시민사회와 연대할 때 은폐된 권력인 법인체 지배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주창했다는 점에서 이번 감세논쟁에서 숨겨진 이면을 찾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요컨대 이번 감세논쟁이 프레임 전쟁보다는 자본과 정치권력의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즉 자본주의 정치의 매우 본질적인 측면에 기인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듯하다. 혹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레임의 재구성이 정치사회적인 힘을 갖기 위해서라도, 복지국가 논쟁이 좀 더 시장권력의 교정에 가깝게 가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감세논쟁의 허구성은 좀 더 파헤쳐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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