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들, 제2의 적 '언론'보도에 분노
    By 나난
        2010년 11월 22일 01:4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불법점거”
    “현대차 피해 규모 눈덩이처럼 불어나”
    “불법과 무질서로부터 (일터) 지켜내야”

    노동자, 가족들 언론보도 불신 커

    8일째 공장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언론 보도에 마음이 상한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당해온 차별이 법원의 판결에 따라 부당했음을 인정받고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고자 어렵게 시작했던 싸움이 언론에 의해 부당하게 매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언론은 물론 영향력 있는 전국 단위의 언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외면하거나 노사 간 충돌로 인한 손실액, 그리고 연행자 수 보도 등 노동자에게만 불리하거나, 부정적 측면만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직접 당하는 노동자들의 속은 불이 난다.

    지난 17일 기자가 울산1공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 비정규직 조합원은 “방송사 카메라가 공장 안 모습을 찍어 가면 있는 그대로 방송이 되느냐”며 “UBC(울산방송)나 방송에서 회사 측 사람들과 들어와 (영상을) 찍어 가는데 우리 상황이 제대로 안 나오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가족대책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해 "회사 측 입장에서의 보도가 많다"며 "제발 있는 그대로만 써달라"고 말했다.(자료=이은영 기자)

    21일 다시 울산공장을 찾은 자리에서도 이 같은 우려는 곳곳에서 나왔다.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가족대책위 회원들은 “제발 있는 그대로만 써달라”며 “언론사에서 화면을 찍어는 가는데 회사 측 입장에서의 보도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지를 중심으로 대다수의 언론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 원인보다는 이로 인한 현대차의 경영손익과 손해배상, 연행 등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 내용은 회사 쪽에서 ‘언론 플레이’ 차원에서 공급해준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현대차는 지난 20일 현재까지 차량 7,732대를 생산하지 못해 903억 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며 “22일에는 손실이 1,000억 원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회사 발표 손실액 중심 보도

    <동아일보>와 <뉴시스>도 지난 16일과 19일 보도에서“현대차는 15일부터 파업과 농성 등으로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며 “현대차는 현재 파업이 집중되고 있는 울산공장 1공장의 베르나와 클릭, 신형 엑센트가 모두 생산되지 않고 있어 장기화될 경우 생산차질 차량 대수와 금액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도 21일자 보도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파업…피해액 1,000억 육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대차는 21일까지 울산1공장에서 베르나와 클릭, 신형 엑센트 등 차량 7,723대를 생산하지 못해 903억 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며 “특히 엑센트는 현대차가 소형차 시장 확대를 위해 11년 만에 내놓은 파업으로 인한 출고 적체가 뼈아플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이어 현대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파업 전 하루 20시간의 정규근무가 잔업까지 있었지만 지난 15일부터 생산이 모두 중단된 상태”라며 “하루 평균 2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만큼 내주에는 손실액이 1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은 지난 20일 강호돈 현대차 부사장(울산공장장)이 조합원들이 점거 중인 울산1공장에 대한 퇴거명령서 전달을 시도하며 노사 간 마찰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강 부사장이) 울산1공장 도어 탈착 작업공장을 찾아 이상수 비정규직 지회장에서 ‘퇴거명령서’ 전달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몸싸움으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퇴거명령서 전달 과정 발생한 노조 측의 부상이나, 농성장으로의 진압 상황에서 관리자가 정규직 조합원을 강제로 끌어낸 상황 등에 대한 내용은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매일경제> 역시 20일자 보도에서 “강(호돈) 대표이사는 관리자들에 에워싸여 퇴거명령서를 전달하기 위해 3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계단 손잡이 등에 압착돼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 등의 부상으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갔지만 다행히 노사 모두 큰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불법, 폭력만 부각시켜

    <동아일보>는 지난 16일 “연행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전원 불구속”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울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집회 중에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연행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48명을 전원 불구속 입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경찰의 말을 빌어 “노조 대표 전모(30) 씨 등 조합원 36명은 전날 오전 5시 40분부터 오전 6시 30분까지 북구 효문동 소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시트사업부 1공장 안팎에서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는 중 담을 뛰어넘어 무단침입한 후 시트공장 조립공정라인을 점거, 폭력적인 행동을 한(특수주거침입,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자 보도에서도 “비정규직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인해 생산차질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파업 주동자 45명을 무더기로 경찰에 고발하고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고 밝혔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비정규직 문제 파업으로 풀릴 사안 아니”라며 “이번 파업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파업은 근로조건과 무관한 명백한 불법’이란 해석을 내렸다”며 “최근 일부 법원 판결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유리하게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파업의 빌미로 삼는 것은 물론 업무의 성격이나 강도가 다른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일률적으로 확대 적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노노 갈등 유발 보도도

       

      ▲ <UBC> 울산방송은 21일자 논평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황금알을 한꺼번에 얻으려는 욕심에 거위의 배를 갈랐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우화를 생각하며, 파업 지도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자료=UBC 화면 캡쳐)

    울산 지역방송인 <UBC>는 지난 18일 보도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사흘째 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현행법상 불법”이라며 “때문에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현대차 지부가 교섭창구를 만드는 등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라며 보도했다.

    지난 21일 논평에서도 <UBC>는 사내하청지회의 파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며 쟁의행위의 절차와 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UBC>는 “우리는 지난 수 십 년간 야만적 폭력 투쟁으로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배웠다”며 “현대차 사내 근로자의 5분의 1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번 사태도 예외일 수 없다”며 “엄밀히 말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노사 견해차가 워낙 크고, 근로자마다 근로조건이 다 다른 만큼 법으로 풀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이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재판이 서울 고법에서 아직 진행 중이고, 중앙노동위원회는 현대차와 사내하청 근로자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현대차 노조조차도 이번 파업이 정규직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고 분명히 하며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며 노노갈등을 조장하는 듯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UBC>는 이번 파업과 관련해 “비정규직 노조가 대법원의 판결에 투쟁의 정당성을 두면서도 다른 법률과 절차는 무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며 “황금알을 한꺼번에 얻으려는 욕심에 거위의 배를 갈랐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우화를 생각하며, 파업지도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언론의 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이 같은 편향적 보도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막상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일이다. 노조 파업에 대한 금전적 손실은 자세히 보도하며,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는 회사의 문제점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기사에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과 가족대책위는 “뉴스를 보다 가슴이 막혔다”며 “무조건 비정규직 노조의 잘못이라는 내용을 보고 무척 화가났다”는 반응들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장기화될수록 현대차의 매출손실에 대한 보도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교섭을 회피하면서 생산 차질액을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며 매출 손실을 줄이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조건 없는 교섭에 응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노조 탄압 비용, 정규직 전환 자금으로 써야

    지회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차의 생산차질액 1,000억 원 주장이 노동자들의 파업을 음해하기 위해 엄살떠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매출손실을 우려하는 것”이라며 “그 비용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측은 1,000억 원의 생산차질을 감수하면서도 교섭요구를 묵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회는 “오히려 현대차는 수십 억 원의 비용을 들여 노조를 탄압하고 공장 안의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기 위해 용역을 동원하고, 노동자들에게 손배소를 청구하는 등의 노조탄압 비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비용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자 가족대책위 부대표는 비정규직 파업과 관련된 언론보도에 대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언론들은 아예 보도를 하지 않거나, 회사 측의 주장만을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회사 측의 손실액과 조합원 연행 등만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불법파업이라 선전하고, 조합원들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퇴거명령서 전달 과정에서의 강 부사장 부상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그는 “언론이 강호돈 부사장이 폭행을 당해 호흡 곤란을 겪었다는 등의 보도를 주요 기사로 다뤘지만, 그날 발생한 황인화 조합원의 분신 뉴스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공장에서 22일 현재 8일째 점거농성을 진행 중인 한 비정규직 조합원은 “언론에는 비정규직 파업과 관련해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연일 현대차 측의 손실액만을 집중 보도되는데, 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사 갈등, 조합원들의 공장 점거 등을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합원들의 부상 등은 기사화되지 않고 있다”며 “공장에서 조합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왜 파업을 하는지, 관리자들이 어떻게 조합원들을 폭행하는지 있는 그대로만 보도해 달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