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오바마는 대화를 두려워 말라"
        2010년 11월 22일 1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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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지난 11월 초순 방북한 미국 핵전문가에게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20일자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최근 방북한 시그프리트 헤커 박사는 수백개의 현대식 원심분리기로 구성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미, 특사 황급히 동아시아 3국 방문 이유

    현재 스탠포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으로 있는 헤커 박사는 “우라늄 농축 시설은 이제 막 건설된 것으로 보였으며, 초현대식 통제실에서 제어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 관리가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말도 전했다. 

    이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일반적으로 우라늄은 3% 수준으로 저농축을 하면 경수로 연료로 이용되지만, 90% 이상 고농축하면 핵무기 원료로 사용된다.

    이에 따라 북한이 경수로에 필요한 연료 제조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면 북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기술적으로 저농축 우라늄을 고농축으로 전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은 플루토늄 방식을 통해 5∼10개 정도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까지 확보할 경우 북한의 핵무장 잠재력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플루토늄 추출과는 달리 외부에서 탐지가 거의 불가능하고, 우라늄 핵폭탄의 기폭장치는 플루토늄 핵폭탄의 기폭장치보다 훨씬 만들기가 쉽다. 

    황급히 한-중-일 순방에 나선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이를 두고 “지난 20년 이래 가장 도발적이고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의) 이번 행동은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왜 ‘일급비밀’을 공개했을까? 

    그런데 북한의 행동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일급비밀’에 해당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적대국의 핵과학자에게 공개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 시설을 목격한 헤커 박사는 2004년 1월에도 방북해 북한의 재처리 시설을 직접 본 적이 있고, 2006년 10월 핵실험 직후 및 핵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2008년 2월에도 방북해 북미간에 메신저 역할을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번에도 ‘핵 권위자’인 헤커 박사를 통해 경수로 사업 착수와 함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에게 ‘대화에 나서든지,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를 감수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방북해 북한의 고위 관리들을 두루 만난 헤커 박사의 설명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다. 그는 방북 보고서를 통해 “이번 방북기간 만났던 북한 관리들은 아주 분명한 어조로 ‘북미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비핵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는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억지력으로서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는 뜻을 언명했다”며, “북한은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가 문제 해결의 좋은 출발점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일단 북한의 이러한 의도는 일정 정도 충족된 것으로 보인다. 다급해진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보즈워스 대표를 한-중-일에 급파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전략적 인내”를 앞세워 북한의 대화 제의에 무시로 일관했던 오바마 행정부에게 상황의 시급성을 전달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 

    그러나 북한의 의도대로 오바마 행정부가 북미 대화나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할 가능성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미국 내에서는 대화 재개 자체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팽배할 뿐만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자신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가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오바마 행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상원 비준과 관련해 공화당의 ‘반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인식은 더욱 악화될 것이 확실하다. 작년 4월 5일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강경 대응을 선택한 것도, 북한의 로켓 발사가 자신의 ‘핵무기 없는 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으로 간주했던 탓이 컸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을 설득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중국도 찬성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위반한 만큼, 중국도 대북 압박과 제재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보즈워스 대표가 방문 일정을 한국→일본→중국 순서로 잡은 것도 강력한 한-미-일 3각 공조를 통해 중국을 설득·압박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은 작년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과 2차 핵실험 직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 1874호에 찬성했다가 북한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 바 있다.

    중국이 작년 말부터 어렵게 북중관계를 복원하고 그 관계를 ‘혈맹’ 수준까지 끌어올릴 상황에서 또 다시 북중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대북 제재 동참을 선택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오히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한미 양국이 대화를 거부하면서 제재에 몰두한 것이 상황 악화를 초래했다며, 조속한 북미 대화 및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대화만이 파국 막을 수 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이 대단히 유감스럽고 또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 것은 있다. 한미 양국이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면서 압박과 제재에만 몰두할 경우, 북한의 핵 능력은 더욱 강화되어왔다는 ‘북핵 20년사’의 핵심적인 교훈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특히 북한이 공개한 우라늄 농축 시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이 북한에 체류했던 2009년 4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비롯한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 능력 강화를 저지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한미 양국이 ‘실패한 외교’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조속히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외교의 기본자세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양국 내에서는 ‘협상 무용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협상다운 협상도 해보지 않고 선입견과 일방적 요구에 사로잡혀 상황 악화만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귀를 기울어야 하는 것이다. 

    대화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북한이 최근 공사에 착수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험용 경수로는 아직 건설 초기 상태에 있다. 또한 헤커 박사는 자신이 목격한 우라늄 농축 시설이 “이제 막 건설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조속한 대화 재개가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지연될수록, 그리고 북한이 강성대국의 해로 선포한 2012년이 다가올수록, 북한은 이들 시설 공사와 가동에 박차를 가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이를 되돌리기란 더욱 어려워지고, 북한이 이들 시설 포기를 약속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추가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무력 사용을 통한 북핵 해결은 동북아의 지정학과 전쟁 발발시 엄청난 피해 발생에 대한 우려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금기가 되었다. 한미 양국이 강력히 선호해온 대북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도 이미 실패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대화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미 양국 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 강화에 정말 큰 우려를 갖고 있고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가 사활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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