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 대비, 쓰레기통에 물 담아 놔
"분신 소식 듣고 두려움 사라졌다"
By 나난
    2010년 11월 22일 12: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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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멘트 바닥에 은박매트만 깐 채 자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사진=이은영 기자)

아침에 먹은 초코파이 같은 ‘주전부리’ 과자만으로 한나절을 견뎠다. 먹을 것이 없어 점심은 굶었다. 다행히 울산 4공장 여성 조합원들이 보급해준 주먹밥 하나로 저녁은 해결할 수 있었다.

굶주린 배 주먹밥 하나로 채우다

텅 빈 공장은 바깥 날씨보다 차게 느껴진다. 시멘트 바닥에 보온장판 대신 은박매트를, 오리털 이불 대신 비닐을 덮었다. 단수조치에 대비해 십여 개의 쓰레기통에는 예비용 물이 담겼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춥고 배고프고 힘든 날이 1주일을 넘기고 있다. 지난 15일 기습적으로 들어간 파업과 공장점거가 21일로 딱 1주일째다. 공장 한 켠에 쌓여 있던 컵라면과 생수, 캔 커피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점거농성의 날수가 하루씩 더해지는 만큼 회사 측의 대응 강도는 높아지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이날도 정오 경 식료품 보급을 위해 1공장 을 찾았지만 관리자들에 막혔다. 실랑이 끝에 오후 늦게나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주먹밥 하나,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배를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일회용 커피도 부족해 한 잔을 3~4명이 나눠 먹었다. 그것도 행복한 듯, 한 비정규직 노동자(@cuj0326)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1공장 비정규직 500여 명이 주먹밥으로 저녁 한 끼를 해결했다”며 “커피 한 잔으로 여러 노동자가 나눠 먹고 있다”며 공장 안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마운 ‘보급투쟁’

이날 점거농성이 진행 중인 1공장 안에서는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트위터 교육이 이뤄졌다. 비록 지금은 세상과 단절되고,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없지만 스스로 온라인을 통해 공장 안 상황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해 보자는 취지다. 이메일을 등록하고 트위터 계정을 만드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웃을 수 있는 한, 투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매체가 생긴 것이다. 2시간 가량 진행된 트위터 교육 후 조합원들은 공장 안 상황을 세상에 알렸다. 감사의 인사에서부터 가족에 대한 그리운 마음, 연대를 호소하는 내용까지 다양했다. 한 조합원(@sky9352)은 “현대차 비정규직 농성 중인 한 사람입니다. 몸은 힘들지만 굳센 맘으로 꼭 이기겠습니다”라며 응원을 부탁했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울산 1공장 벽면에는 이들의 요구가 빼곡히 붙어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또 다른 조합원(@kkang330)은 “우린 울산 1공장 비정규직입니다. 오늘이 7일차 농성입니다. 양말 대용으로 토시 차고 이불 대신 비닐 봉다리로 대치하고 있습니다”며 “많은 관심과 응원을 달라”는 글을 남겼다. 한 조합원(@cuj0326)은 “여기 동지들은 따뜻한 밥 (한) 공기가 그립다”며 “오늘로 파업 투쟁한 지 7일 지났는데, 춥고 배고프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하루하루가 힘들다”며 자신들의 처지를 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마음을 편지에 담기도 했다. 지난 7일간의 점거농성에 대한 회한은 물론 비정규직의 삶을 기록하며 투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대부분의 노동자가 점거농성이 길어지고, 물리적 충돌과 분신 등의 극한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단결’을 위한 연대를 호소했다.

정규직 형님들이 고맙다

한 조합원은 “정규직 형님들과 평소에 친분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파업하며 비정규직을 도와주고 엄호해 주시는 모습 보고 저 자신도 부끄러웠다”며 “평소에 비정규직을 무시하는 것 같고, 우리를 단순히 ‘방패막이’로만 생각하시는 줄 알고 있던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지금은 함께 일하고 있지 않지만, 빨리 일터로 돌아가 형님들과 함께 웃으며 일하고 싶다”며 “저희들 지켜봐주시고 더 큰 응원해 달라”며 연대를 호소했다.

   
  ▲ 라인이 멈춰 버린 울산1공장.(사진=이은영 기자)

지난 14일 폐업한 동성기업 소속 한 조합원은 “사측과 용역들이 미친 듯이 저희와 정규직 활동가를 폭력적으로 제압하는 걸 보고 무척 두렵고 무서웠다”며 “하지만 4공장 조합원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속에 참아왔던 그 동안의 서러움을 생각해보니 한 순간에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부턴 미친 듯이 싸울 것”이라며 “정규직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절대 승산이 없다. 내 아들, 내 형제, 내 동생이라 생각하고 도와 줬으면 좋겠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도 없다. 이미 업체는 폐업했고, 이 싸움지면 저희는 한 순간 무직자가 된다. 일하고 싶고, 형님들 보고 싶다. 도와주고 응원, 지지해 달라”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미친 듯이 싸울 것"

사내하청지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글을 각 공장에 붙인다는 계획이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물론 사내하청 비조합원도 해당 글을 보고, 파업의 상황을 공유하고, 연대에 나설 수 있도록 촉구하기 위해서다.

21일로 7일째 공장에 스스로를 가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긋지긋한 고용불안을 끊고자,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가치를 재단하는 세상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자 오늘도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다.

다음은 1공장에서 점거농성 중인 한 비정규직 조합원이 현장에 적어 붙여놓은 글이다.

남들한테 자동차에서 일한다하면 하청인지 직영인지 불어봅니다.
여자친구한테 사귀자고 하면 하청인지 직영인지 물어봅니다.
예비 장인, 장모님을 만나면 하청인지 직영인지 물어봅니다.
보험 넣을 때 보험 아줌마를 만나면 하청인지 직영인지 물어봅니다.
나이트 가서 부킹을 하면 여자 분이 하청인지 직영인지 물어봅니다.
이제 이런 질문에 그만 답하고 싶습니다. 정규직 행님들, 따뜻한 마음으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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