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대연합은 진보 재구성의 과정”
        2010년 11월 17일 03:31 오후

    Print Friendly

    홍기표 님의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정치’ 속에서 모호하게 말한 것도 있는 것 같고, 또 반대로 비판을 검토하면서 제 말의 근거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도 되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를 추려 답변의 형식으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단과 냉전 효과와 진보

    우선 보수-중도-진보의 삼분법과 관련해서, 이러한 근대 정치 일반의 스펙트럼을 사용한 것은, 취약할 뿐만 아니라 위기를 겪고 있는 진보 정치가 2012년의 정치적 계기 속에서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목표를 가늠하기 위한 배경으로 삼은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진보 혹은 좌파가 오랫동안 의미 있는 정치 세력이 되지 못한 것이 분단과 냉전의 효과였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정전 협정으로 중단된 한국전쟁과 분단의 고착화 속에서 한반도의 정치 세력은 공간적으로 재편되었고, 이후 한국 정치는 냉전 반공 체제의 압박 속에서 보수-우익의 절대적 우세와 북한 체제의 존재로 인해 진보 정치가 자리 잡을 여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분단 고착화 이후 한국 사회의 고유한 변화는 새로운 진보 정치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항거와 광주 민중 항쟁이라는 사건을 상징으로 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민중 운동, 노동자 운동이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1987년 이후 노동자, 민중의 독자 정치 세력화라는 깃발로 진보 운동을 형성하려는 첫 걸음이 내디뎌졌습니다.

    이후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라는 사선적(斜線的) 효과에도 불구하고 ’87년 체제의 정착과 지속, 포스트 냉전의 효과로 인한 분단 체제의 사회적 효과 약화로 진보 정치 세력의 대중적 진출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청년진보당(이후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창당,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은 그러한 역사적 궤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20세기 진보운동의 지연 효과

    하지만 돌이켜 보면 민주노총의 시민권 획득 및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20세기 진보 운동의 지연된 효과였을 뿐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담론적 지배 속에서 과거의 진보 운동은 그 토대가 발밑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1990년대 이후 등장한 다양한 정체성의 정치 및 새로운 주제의 운동으로 진보(?) 운동 자체가 다원화, 다양화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보의 위기입니다. 이러한 진보의 위기가 희화적으로 표현된 것이 2007년 대선이며, 표면적으로는 퇴행적이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며 드러난 것이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진보대연합으로 제가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진보의 위기를 넘어 진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이 진보‘신’당의 창당 정신이었을 것이며, 사회당이 2006년부터 주장한 내용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진보대연합을 하나의 정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사회당이 지난 8월에 있었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진보대안연합 추진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흐트러진 진보 세력의 대오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진보대연합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의결한 것은 이런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진보대연합은 홍기표 님이 말하는 “가치 중심의 연합”을 추구하는 과정이자 방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의 위기를 넘어서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하고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진보 위기 넘어서는 역동적 과정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 연합과 통합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진보대연합의 실천 과정에서 두 가지가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치, 전술적 목표 등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으며, 일단 열어놓자는 것이 인터뷰에 임할 때까지의 제 태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열린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진보대연합을 통해 대안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보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한국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는 문턱으로 삼기 위해서는 ‘진보 좌파’의 선결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진보의 재구성을 힘 있게 추진할 세력이 현실적으로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터뷰에서 진보 좌파의 선결집의 중요한 형태인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통합 문제에 대해 “미래적 관점에서 가장 합당한 현실성 찾아내면, 통합의 계기를 찾아낼 것이라 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때 통합의 계기는 앞서 말한 진보신당의 창당 정신, 사회당의 진보 재구성 노력, 지방선거와 은평을 재선거에서 보여준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안을 찾아내려는 진지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홍기표 님이 주장한 ‘보편적 복지’가 대안 형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만으로 대안의 전부를 구성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보편적 복지가 다른 사안 혹은 의제와 관련해서 어떤 배치 속에 있는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복지 시대착오적 말장난 빠질 우려도

    예컨대 복지가 조세, 재정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경제 체제와 연관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내수 진작 효과는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지만, 복지와 지속가능한 경제 사이의 연관을 해명하지 못한다면, 보편적 복지라는 담론은 자본주의 황금기에 가능했던 것을 신자유주의 위기의 시대에 옮겨놓는 시대착오적 말장난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효상 대표(사진=사회당) 

    다음으로 이는 기본소득과도 관련되는 문제인데, 보편적 복지가 겨냥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홍기표 님은 보편적 복지를 “평등사회를 제도화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평등사회를 분배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아무리 보편적 복지라 하더라도 관료제적인 의사결정과 전달 체계로 이루어진다면 시혜적 성격을 내장할 수 있으며, 서구 복지 국가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가 보였던 (어느 정도) 평등한 분배도, 그 정치 체제가 지녔던 관료제적 성격과 맞물려 평등 사회가 아니라 부동(不動) 사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는 사회구성원의 삶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능동적 시민으로 형성하기 위한 정치적 사정(射程)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홍기표 님이 선거 연합 전술로 제시한 보편적 복지라는 담론을 가치 연합이라는 통합의 계기라는 관점에서 검토한 것입니다. 물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 담론을 선거연합전술의 중심 고리로 삼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복지 재원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경제 체제 등등과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주류 정치 세력과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대안적 경제 체제 논의까지 나아가야

    끝으로 “진보신당이나 사회당은 당원 중심의 정당”이며 따라서 연합이나 통합을 포함한 어떤 정치 방침이든 “당원 대중의 원만한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극히 지당한 말씀을 글머리에 담을 수밖에 없는 경험과 상황이 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지도부가 정치 방침을 제시하는 것 또한 주요한 책무이기도 하다는 말씀만 덧붙이겠습니다.

    정말로 마지막으로, 굽은 길의 굽은 곳까지 가 보지 않는다면,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연합이든 통합이든, 또 그 어떤 것이든 과정으로 이해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