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평-비례-견제 없는 불공정 수사
        2010년 11월 17일 0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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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나 재판은 공정성이 핵심이다. 편파적이지 않고 방어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는 가운데 치열한 법리 다툼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 것이 공정성이다. 이는 수사와 재판을 믿을 만한 씨스템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공정성은 결과의 적정성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근대형사법에서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되지도 않는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수사에서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아니, 검찰 스스로 공정성을 무시하고 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는 극히 미진하거나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아가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혐의도 있다. 청와대의 구체적인 지시 내용과 보고 사실, 그리고 ‘대포폰’ 사용 의혹이 국회에서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여당 국회의원도 재수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은 수사의 미진이나 사건은폐 의혹을 뒷받침한다. 수사권의 남용이다.

    균형추 잃어버린 검찰 수사

    한편 청목회의 국회의원 후원금 수사에서는 검찰이 사실관계의 확인에 앞서 혹은 범죄의 정도에 비추어 지나치게 가혹한 수사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국회의원에 대해 뇌물수수인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인지 논란이 정리되기도 전에 유죄의 인상을 주는 압수수색영장을 동원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뇌물을 받았다면 당연히 수사해야겠지만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과도한 수사를 진행함으로써 사실상 유죄의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수사권 남용이다.

    수사권 남용은 곧 수사나 재판과 같은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해친다. 형사절차는 국민에게 가혹한 권리침해를 초래하므로 매우 신중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형사절차의 공정성은 크게 세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형평성이다. 이것은 수사나 재판이 다른 사건과 비교해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같은 사건은 같게, 다른 사건은 다르게 처리되어야 한다. 이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이 수사과정에 반영된 것이다. 이 말은 헌법상의 평등원칙을 위배한 수사나 재판은 그 자체로 위법, 부당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번 검찰의 민간인 사찰 수사는 이 원칙을 무시했다.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 범죄는 국가공권력의 위법한 행사이기 때문에 그 어떤 사건보다 심각한 사건이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으로서 남용될 경우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심각하고, 따라서 그 책임은 일반인의 경우와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공권력의 남용에 대해서는 가장 철저하고 확실한 진실 규명과 이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국가공권력의 남용으로 인권이 침해된 역사가 있어 과거사 정리까지 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검찰은 공권력의 민간인 사찰 배후에 대해 부실한 수사 혹은 의도적인 은폐로 공권력의 책임을 묻고 있지 않다. 이 사례는 검찰의 정치적 편향과 정검(政檢)유착 의혹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정성의 하나인 평등원칙을 침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구속영장 줄었지만 압수수색영장은 증가추세

    둘째, 비례성이다. 이것은 수사기관이 해당 사건에 걸맞은 수사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원칙을 말한다. 즉 무거운 사건에는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밝히기에 충분한 강제수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벼운 사건에는 인권침해의 위험이 적은 임의수사를 해야 한다. 이것이 비례성이다. 범죄와 형벌은 비례해야 하고 수사 역시 비례해야 한다. 경범죄 수준의 범죄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권총을 쏘면서 체포한다고 난리를 피워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번 청목회 국회의원 후원금 수사에서는 이 원칙이 깨져버렸다. 물론 국회의원이 공인으로서 일반인에 비해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일반인과 완전히 달리 국회의원이 무차별적인 수사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압수수색영장은 수사의 대상에 관계없이 과도하게 남발되어서는 곤란하다. 압수수색영장 역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 그리고 사법개혁의 결과로 매년 구속되는 국민의 수가 1995년에 비해 10만명이나 줄어들었다(1995년 144,314건, 2009년 42,732건). 그리고 형사공판사건에서 구속자수가 차지하는 비율도 66%에서 14%로 줄어들었다.

    1995년에는 10명중 6명에서 7명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지금은 1명에서 2명만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이것은 지난 군부독재나 권위주의정권하에서 수사 자체가 지나치게 가혹하여 사건과 수사의 비례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불균형이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줄어드는 만큼 압수수색영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압수수색영장 역시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범죄의 수준에 맞추어 제한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이번 청목회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지나친 수사로써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위법수사와 인권침해 막을 견제장치 필요

    셋째, 견제와 감시체계다. 이것은 수사나 재판을 진행하는 도중에 사건이 무고함이 밝혀지거나 위법수사가 있다면 그 즉시 절차를 그만둘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왜냐하면 수사나 재판 자체가 국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수사, 공소, 재판으로 단계가 바뀔 때마다 다른 기관에서 다른 원칙에 의하여 그 이전단계를 심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를 위하여 프랑스는 대혁명 후 수사와 공소, 재판을 각기 다른 기관에 배분하는 원칙을 확립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견제씨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무고함이 밝혀지든 위법한 수사가 있든 멈추지 않는다. 수사가 진행되면 기필코 공소에 이르게 되고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어도 굳이 항소하여 끝까지 다툰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나 정연주 KBS 사장 사건, <PD수첩> 사건 등이 그 사례이다.

    검사를 포함한 법률가는 위법여부, 즉 인권의 침해여부에 대해 특별하게 훈련을 받으므로 어느 단계에서든지 인권 침해요소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나 재판을 중단시킬 줄 알아야 한다. 형사절차의 핵심에는 인권이 있고 법률가는 최소한 인권에 대해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행태에서는 이런 견제씨스템이 작용하지 않고 있다. 일단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다. 형사절차에서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 국민이 검찰의 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검찰이 범죄를 수사한다고 하니 믿고 싶은데 형평성, 비례성, 견제라는 형사절차의 공정성 원칙이 파괴되니 수사 과정과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넘어 형사절차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산된다.

    그러면 검찰이 이같이 형사절차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 즉 공정성을 파괴하면서까지 수사와 공소를 강행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수차례 지적된 바처럼 검찰의 정치적 편향과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그리고 이 권한 행사가 다른 기관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은 다시 검찰개혁이다. 검찰이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민주적 견제방안을 마련하는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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