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법 통과 후, 대형마트 저지되나
    “재벌이 경제 살린다고? 미친 소리”
    By mywank
        2010년 11월 16일 06: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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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 수유동 일대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대형마트의 입점이 저지된 첫 사례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또 앞으로 이법의 실효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리트머스 시험 지역

    다음달 1일부터 유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관련조례 제정을 통해 전통시장과 전통상점가를 ‘전통상업보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역의 경계로부터 반경 500m 이내에서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등록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입점을 추진하고 있는 ‘롯데마트 삼양점’은 삼양시장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어서 유통법 개정안의 적용을 받게 된다. 한편 롯데마트 입점예정지에서 750m 떨어진 곳에는 수유마을시장이, 500m 조금 넘게 떨어진 곳에는 동북시장 등 전통시장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16일 롯데마트 삼양점 입점에 반대하며, 수유마을시장 상점(사진 상단)과 삼양시장 부근 상점들(사진 하단)이 시장 가게 문을 닫는 ‘철시투쟁’에 나섰다 (사진=손기영 기자) 

    삼양시장에서는 지난 2009년 1월 시장부지 소유자인 서 아무개 씨가 전통시장 현대화 등을 명목으로 재건축 공사(시장정비사업)를 추진해 지난달 29일 준공 심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는 리모델링된 시장 시설 대신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있는 지상 5층짜리 건물이 지어진 상태이다.

    롯데마트 삼양점 입점에 맞서, 지역 상인들은 지난달 11일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 신청을 내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2월 삼양시장 재건축 공사가 승인될 당시 강북구청장은 한나라당 출신 김현풍 씨였다.  

    ‘꼬마 삼양시장’ 상인들의 저항

    재건축 공사 이전 200여개 상점이 있었던 삼양시장은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 대규모 전통시장인 ‘등록시장’으로 지정됐지만, 시장부지 소유자가 롯데마트 삼양점 입점을 위해 ‘대(형)점포 등록’을 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승인할 경우 ‘등록시장’ 지정이 말소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또 삼양시장에서 실시된 재건축 공사로 인해 대부분의 상인들은 일정 금액의 보상을 받은 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으며, 현재 50개 안팎에 일부 상점의 상인들만 시장부지 주변에서 ‘꼬마 삼양시장’을 일구며 살고 있다. ‘꼬마 삼양시장’은 상점 수가 적어,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 소규모 전통시장인 ‘인정시장’으로 지정되지 못했지만,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이곳을 ‘삼양시장’으로 부르고 있다.

    결국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 전통시장 반경 500m 이내의 대형마트 및 SSM의 입점 제한이 가능한 유통법 개정안이 앞으로 시행되더라도, 대규모 전통시장인 ‘등록시장’ 지정 말소 가능성이 높은 롯데마트 입정예정지(삼양시장 부지)에서는 이법이 적용되지 않고, ‘인정시장’으로 지정되지 않은 시장부지 주변 ‘꼬마 삼양시장’ 상인들 역시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삼양시장 부근 상점에 롯데마트를 규탄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꼬마 삼양시장’에서 25년째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규흥 씨(삼양시장 상인협의회 회장)는 “애초 전통시장 시설을 현대화한다고 해놓고 대형마트가 입점할 건물을 지어놓았다. 강북구청 측에서도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강북구청은 시장부지 소유자의 ‘대(형)점포 등록’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허가 과정 문제 있다"

    만약 강북구청 측에서 ‘대(형)점포 등록’을 승인하지 않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형마트 및 SSM 입점 규제를 위해 전통시장과 전통상점가를 ‘전통상업보전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조례 제정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강북구의회 의석 구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6석,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각각 1석을 차지하고 있다.

    구본승 민주노동당 강북구의원은 “이 문제에 관심 있는 강북구 정당들이 ‘공동 발의’ 형식으로 관련조례를 발의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최선 진보신당 강북구의원은 "이 조례는 절대 부결되면 안되는 것이기에, 구의회 구성원들의 충분한 공감대와 동의를 얻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롯데마트 삼양점 입점예정지 앞에서 ‘철시투쟁’에 나선 상인 200여명이 규탄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상인들이 롯데마트 그림이 있는 펼침막을 찢는 상징의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16일 ‘꼬마 삼양시장’ 상인들은 롯데마트 입점에 반대하며 시장 가게 문을 닫는 ‘철시투쟁’에 나섰고, 인근 수유마을시장 상인들도 여기에 대거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슈유시장, 수유재래시장, 수유골목시장 등 3개의 전통시장이 모인 수유마을시장에는 400여개의 점포가 있다.

    수유시장 상인 임래수 씨는 “(유통법 개정안에 있는) 500m 이내 규정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최소한 1~2km 이내는 돼야 한다. 지하철, 버스 등 교통 수단이 발달한 요즘 누가 걸어서 대형마트를 찾겠는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무찌르자, 롯데 마트"

    그는 이어 “이곳에 롯데마트가 들어서게 되면, 인근에 있는 수유시장 상인들까지 모조리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는 유통법 개정안이 법 적용 대상지역을 제외한 인근지역의 상권은 보호하지 못하는 맹점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장 가게 문을 닫은 ‘꼬마 삼양시장’ 및 수유마을시장 상인 20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삼양시장 오거리 롯데마트 입점예정지 앞에서 규탄집회를 개최했다. 상인들은 ‘무찌르자 롯데마트’, ‘재래상인 다 죽이는 롯데마트 물러가라’ 등의 피켓을 들며 거세게 항의했고, 롯데마트 모습이 그려진 대형 펼침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분노를 나타나기도 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대형마트 문제뿐만 아니라, 유통재벌의 문제를 지적하는 상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안영승 수유재래시장 상인회 회장은 “재벌들이 잘되면 경제가 살고, 그 결과가 서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미친 소리’”라며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상인들도 있었지만, 재벌들의 대형마트와 슈퍼가 곳곳에 들어오면서부터 상인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벌들은 서민 경제에 이바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민 경제를 초토화시키고 있지 않느냐. 이곳 상인들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지금 상인들은 재벌들의 문제를 체감하는 수준이 아니라, 생사가 달린 극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피켓 뒤로 롯데마트 삼양점 입점예정지 건물이 보이고 있다(사진=손기영 기자) 

    수유시장 상인 박치학 씨는 “나이 60이되도록 재벌들이 골목까지 들어올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할 게 있고 안할 게 있지 않느냐”며 분노했고, ‘꼬마 삼양시장’ 상인 조규현 씨는 “재벌이라면 크게 놀아야지, 왜 조잔하게 중소상인들의 밥그릇까지 뺏으려고 하는가”라며 “재벌이라면 자국민들의 돈을 갈취하는 게 아니라, 수출을 많이 해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이날 규탄집회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구본승 민주노동당 강북구의원, 최선 진보신당 강북구의원 등이 참석해 규탄발언을 하고 상인들의 투쟁을 독려했다. 오후 12시 40분경 규탄집회를 마무리한 상인들은 다시 시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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