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비정규직, 내게 복지는 없다"
    2010년 11월 16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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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말 꼬리를 잡는다고 뭐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보’의 ‘원천기술’ 보유자인 마르크스를 보라. 그가 얼마나 사람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는지. ‘복지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595) 제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헌데 김준성씨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다.

시급 4200원 40대 후반의 삶

복지를 잘 해왔다는 유럽을 보자. 난리가 아니지 않는가? (이 사태가 나는 반갑기만 하지만 어쨌건 시끄러운건 사실이니까) 복지를 축소한다닌까 프랑스의 노동자 수백만이 모여서 항의를 하고, 영국의 학생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그리스는 어떠한가?

그럼 전세계가 복지를 축소하는 부자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는데 오직 유일하게 이명박 정권 아래 한국에서만 복지혁명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국가와 은행이 망하더라도 복지가 축소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이 점은 오해가 없길 바래본다.

자랑스럽지도 않는 개인적인 애기를 한다는 것이 여간 껄끄럽지만, 나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해 잘 모르니 내 개인 애기밖에 할게 없다. 나는 곧 있으면 나이 50이다. 시급 4200원이고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내가 집에 180만원을 가져가려면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볼트를 박든지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토요일은 무조건 특근을 해야 한다. 특근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때가 많다. 최저임금 수령자의 비극이다. 이건 무능한 나 혼자만의 애기는 아닐게다. 비정규직이 900만을 넘어선다고 하던데 기실 그들 대부분은 최저임금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임에 거의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복지국가혁명이 시작된 게 아니라 뼛골 빠질 일만 남았고, 빨리 죽을 일만 남았다. 혹 나 모르게 혁명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나도 모르게 혁명이 시작됐나?

나라고 왜 복지란 것을 싫어하겠는가? 복지가 되어 무상의료 받고, 무상교육 하고, 집도 하나 얻고 할 수 있다면 누군들 싫어하겠는가? 전두환은 정의 사회를 내걸고 쿠데타를 했다. 누군들 ‘정의로운 사회’란 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름답지 않는가 ‘정의’.

노무현은 ‘참여정부’라고 했다. 근사하지 않는가? ‘참여’. 그럼 이명박은 무어라고 하는가? 공정사회를 내세우지 않는가? 고맙지 않는가 ‘공정 사회’. 나에게는 ‘복지’라는 말이 이런 말들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마치 지금 논의되고 있는 복지라는 것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900백만의 비정규직들이여, 하루에 12시간씩 죽어라고 일을 하여라. 비록 최저임금이지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이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불구가 되면 무상의료로 너희들을 치료해주마, 혹 산재로 사망하더라도 안심해라 너희들이 다치면 ‘복지’가 장례비를 지급하겠다란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죽거나 다친 후에 받게 될 복지가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마저도 어림없는 소리지만.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장되는 노동조합의 대한 권리도 보장이 안되고 있고, 그나마도 초보적인 보장이라도 받을라치면 분신이라도 해야 한다. 대법원에서 정규직화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고 있다.

피켓 시위라도 할라치면 용역 깡패를 동원하여 패고, 손해 보상이랍시고 남의 집 장롱까지 팔아먹고 있다. 집회를 했다고 유치장에 가두고, 민사소송을 걸고, 900백만의 노동자가 시급 4110원을 받고 개같이 일하는데도 생존을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복지 이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

나는 복지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필요성을 공감한다. 하지만 먼저 이런 것들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혹 이런 건 ‘복지’가 아닌가? 아니면 복지이긴 한데 낡은 복지인가? 아니면 ‘복지’를 하기만 하면 트리클 다운(넘쳐 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일까?

자본가나, 국가는 쌀 한 톨 양보할 생각이 없다. 만약 ‘복지’가 누구나(자본가, 국가)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명제라면 두 가지 이유에서 일게다. 첫째는 부자나 그들의 국가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론 ‘복지’가 전혀 혁명적이 아니고, 구호에 그칠 때 뿐이리라.

나는 무상급식으로 모든 아이들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상급식도 아직 제대로 실행될지도 의문이지만. 그 외에 한국에서의 복지는 나날이 피폐해지고 있다. 이윤이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없는 ‘복지’는 공허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자꾸 드는 생각은 당신들이 주장하는 ‘복지’가 900만의 비정규직을 불변인 현실로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계획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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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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