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속한 사회에 살기엔 너무 고결한"
        2010년 11월 16일 08: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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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 김부선 한 정치인과 잠자리 가져”.
    이 문장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이 평범한 사실을 ‘충격’으로 포장하는 시선이다. 그 다음으로 놀라운 점이 있다면, 기꺼이 김부선이 스스로 이 사실을 말했다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의 대응은, 끝까지 숨기거나, 사실이 밝혀지면 최대한 축소해서 말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실을 충격으로 포장하는 시선

    김어준과의 인터뷰에서, 김부선은 대마에 대한 자신의 변치 않는 신념을 설파하고, 윗사람들한테는 소신 한번 펴지 못하고 알아서 무릎으로 설설 기는 ‘쪼다’ 같은 사내들이 자신의 밥줄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이 한심스런 시대에 대한 긴 한숨들을 토하던 와중에, 자신의 삶에 불쑥 침입하여 휘저어 놓고 사라진 또 한 사내의 이야기를 슬쩍 끼워넣었던 것이다.

    <W>를 열정적으로 진행하던 김혜수가 같잖은 이유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꼬라지를 지켜본 후, “MBC가 대체로 엉망”이라고 한마디로 가볍게 밟아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부선에게 연예인 대마사범 잡아들여 짭짤한 재미 볼 생각만 하는 경찰들과 촛불시위에 나와 말 한마디 안하는 새파란 사내 후배들, 거기서 바른 말했다고 자기를 자르는 방송사 PD들, 총각으로 행사하다가 거사 치른 이후 본색을 드러내고 사라진 남자는 모두 한통속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들이 대단한 줄 아는 멍청한 쪼다들이다. 이 활극같이 파닥이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충격, 김부선 정치인과 잠자리 가져”라는 한 줄의 카피를 일제히 뽑아낼 수 있는 기자들도 자신들이 같은 부류임을 즉각 인증해 준다.

    사랑 앞에서 비겁하게 굴다

    얘길 들어보자면, 그녀와 그 남자 정치인은 짧은 연애를 한거다. 누구나 인생에서 꿈꾸듯이. 그리고 가뭄에 콩 나듯 실현하듯이. 김부선은 임자 없는 남자인줄 알고, 자신에게 열정을 바치는 남자를 기꺼이 품안에 받아준다. 그러다 막판에 뒷통수 맞은 거고, 남자는 비겁하게 속이고 만난 후에, 그나마 결혼한 자로서의 책임을 상기하며, 황급히 내뺀거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흔히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 서로의 몸을 겪고 나서, 여자는 그 때부터 스토리의 성을 쌓으려 하고, 남자는 그것으로 스토리를 마무리 짓고 싶어한다.

    그는 기혼자로서 자신의 가정을 생각하며, 막판에 나름의 합당한 수습을 했다고 자부할 수는 있겠으나, 짧은 만남이었을지언정, 그 사랑 앞에서 매우 비겁하게 굴었던 면에서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한 여자 앞에서 그토록 부끄러운 짓을 벌인 자가 만인 앞에서 지자체장이 되겠다고 나서서는 결코 안 된다고, 이상주의자 김부선이 생각했을 건 당연하다. 김부선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기어이 출마하고, 당선까지 된 그 남자를 실컷 비난할 수는 있으나, 이 짧은 연애사건에서 그녀는 비난을 들어야 할 일을 눈꼽 만큼도 행하지 않았다.

    오죽 쓸 만한 ‘수컷’이 없었으면…

    그러나, 이 사건을 둘러싼 세상의 반응은 그녀가 마치 발칙한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태도다. 성공한 남자 인생 망치려고 뒷통수 치는 요망한 여자라고 손가락질이다. 감히, 숨겨야 할 사실을 까발리는 망측한 여자라고 비난한다.

    그녀가 언제나 잃지 않아왔던 자신의 욕망과 진실과 정의에 대한 거침없는 솔직함, 그걸 털끝만큼도 용납 못하는 이 사회와 그녀가 벌여온 힘겨운 육탄전에 세상은 감당할 길 없는 도발의 기운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김어준이 알려준, 그녀의 스토리에서 내심 놀라웠던 건, 그토록 파토스가 충만해 보이는 그가 오랜 세월, 자존심을 지키며, 욕망을 가두고 살아왔다는 사실. 피부는 좋을지 모르지만 인간은 그닥 쓸만해 보이지 않는 그런 놈에게, 김부선이 잠시나마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오죽 대한민국에 쓸 만한 ‘수컷’이 없었으면… 

    의리의 여인, 김부선은 그자가 그녀에게 열심히 구애하고, 사랑을 나누던 순간에 대해, 결과는 차치하고, 여자로서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깨끗하게 고백하는데, 발뺌하는 그 남자. 정치인 특유의 치사와 뻔뻔을 제대로 구현한다.

    어딘가에 마냥 저당 잡힌, 자기 것이 아닌, 재미도 의미도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러브스토리가 풍겨내는 야릇한 향기에, 오감을 곤두세우고, “어머나 그랬구나” 한나절을 떠들어 댈 수는 있을지언정, 이 사건에서 김부선을 비난할 빌미를 찾아내고, 습관처럼 찾아낸 또 하나의 마녀를 물어뜯는 건 여기저기가 아픈 한국사회를 입증해줄 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잘못은 여자가 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수컷들의 사회의 증상이 여기서 한 번 더 도진다.

    많이 아픈 한국사회

    정치권과 연예인이 결부되는 연애사는 언제나 언론이 가장 좋아하는 폭발적인 이슈였다. 그렇다한들, 이들의 연애사건을 “잠자리”라는 한마디로 요약하는 언론의 풍경도, 한국사회가 무성하게 즐기는 성소비와 그 짤막한 “행위” 자체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준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공개적으로 말하면 난리가 난다. 심지어는 스캔들이 된다. 이중성을 습관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예의바른 사람이 된다. 바로 이 지점이야 말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밟고가야 하는 가장 서글픈 지점이다.

    겉과 속이 다르게 행세해야 하는데, 겉과 속이 같으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 자세를 위협적, 공격적으로 느낀다. 성은 권력을 향해 상납하거나, 댓가성으로 제공하거나 혹은 사는 것인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이 사람들이 달큰한 연애를 즐겼다는 대목이 더 충격적인걸까? 

    며칠 전 프랑스 시사주간지 마리안느를 읽다가 “감히 그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적인 코딱지 만한 코너에 난 한 구절을 읽고 박장대소를 했다.

    프랑스 환경부 장관 장 루이 볼르로 왈 "사실 까를라 브뤼니가 날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여자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자기 남편의 맘을 아프게 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 이런 발언은 주간지 귀퉁이에 잠시 웃고 넘어가라고 놓여있을 뿐이다.

    김부선이 프랑스에 살았다면, 포털 사이트 1위에 이틀 연속으로 오르는 영광은 커녕, 주간지 귀퉁이에라도 올라왔을 수 있었을까 싶다.

    오, 김부선, 당신은 이 저속한 사회를 살아가기엔 너무 고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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