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50대 하우스푸어 고민 답해야"
        2010년 11월 15일 07: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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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4분기에 방영 시작된 일본 드라마 <프리타, 집을 사다>를 보면,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 가족의 살얼음판 같은 스토리가 나온다. 주인공인 ‘캥거루족’ 아들과 가부장적인 아버지, 전업주부와 시집간 누나가 나오는 빤한 구도는, 소소한 위기는 있겠지만 결코 폭풍은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소시민’ 가족의 스토리를 상상하게 하지만, 여기에 2010년이라는 시대적 진실성을 부여하는 스파이스는 강력하기 짝이 없다.

    현해탄을 초월해 눈시울에 침투하는 <프리타…>의 스파이스는 바로 가족의 안녕과 낙관적인 인생관을 신앙으로 믿고 살던 어머니의 우울증. 우울증이 발병해 불 꺼진 부엌 바닥에 앉아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누군가에게 “미안합니다. 오늘도 죽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50대 주부의 모습 뒤에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붕괴 조짐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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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담론 위에서, 20대와 비교되는 대상은 항상 87년을 겪은 386세대와 촛불을 든 10대였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10대부터 40대까지는 진보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고, 비록 도마 위에서였지만 세대별 특성이 드러나 스스로 단련되거나 진보와 반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윗세대들은? 올 봄, 부모님 댁으로 이삿짐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베이비 붐 세대의 생활은 적어도 진보 정치에 의해서만큼은 그야말로 왕따 상태였다.

    최근, 사회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가 조명된 것은 아무래도 석 달 전 출간된 『하우스푸어』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주택 융자대출을 받아 구입한 집의 가격이 떨어져 손해를 보게 된 사람들의 실상을 정리한 이 책의 핵심은 대책 없는 아파트 ‘폭탄 돌리기’에 절대 빠져들지 말라는 것.

    진보정치로부터 왕따 당한 세대

    그러니까 앞으로 멋모르고 부동산에 뛰어들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커밍아웃 시킨 셈인데, 정작 그들에 대해서는 이 책이 나온 이후에도 별다른 대책이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 책임으로 보건, 개발 정책에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건, 어쨌거나 『하우스푸어』를 통해 수도권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사람들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간 한국의 부동산 투자를 주도한 것이 베이비 붐 세대라는 인식과 맞물리면서 여론은 베이비 붐 세대는 투기 세대와 동격으로, 그리고 그 중 10~20% 정도로 추정되는 하우스푸어는 투기꾼들을 따라하다가 실패를 맞본 패배자들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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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경기도 신도시 일각에서 만나 본 몇몇 베이비붐 세대 하우스푸어의 실상은 노는 돈으로 주택 ‘재테크’를 하는 전문투기꾼들의 활동과는 규모와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필자가 아는 A씨(55세)는 2007년, 2기 신도시인 용인 수지의 7억 원대 아파트를 선분양 받았다. 그동안 ‘돈과 용기’가 부족해서 빚을 얻어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은 꺼려왔다던 그는 두 자식을 대학 보내고 남은 돈으로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서 가장 안전할 것 같은 곳에 아파트 투자를 ‘감행’했다고 했다.

    분양가 7억 원대의 아파트에 입주한 것은 작년 가을, 분양가가 7억이 넘었던 아파트의 현재 호가는 6억 5천만 원 수준. 그나마 이 가격으로 거래되는 매물은 수개월 째 0이라고 한다. 급매물로 팔리는 가격은 5억대 후반까지 내려간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미 A씨 가족은 떨어진 아파트 가격에 구입을 위해 받은 융자대출의 이자 및 상환금을 더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55세 A씨의 경우

    문제는 이미 분양가의 70% 가량인 5억 원 가량이 부채로 잡혀있기 때문에 급여의 상당량이 이자와 상환금으로 인출되고 있다는 것.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집값이 오를 때까지만 참자고 다짐했던 것이 이제는 빠져나갈 가망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모아둔 돈과 빚을 합쳐 구입한 아파트 값이 분양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떨어져서 지금 아파트를 팔면, 지방의 작은 아파트 한 채도 구입하지 못하는 상황. 그 상황에서 월급은 이자와 상환금으로 절반 이상 빠져나가는 상태. 이미 내핍이 아니라 궁핍 상태라고 표현하는 A씨는 경제문제로 집안에서 고성이 오가는 날이 많아지는데, 집값이 오르길 기다리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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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는 『하우스푸어』에 나오는 일반적인 하우스푸어의 상황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가 A씨처럼 퇴직을 3년 앞둔 상황에서 IMF 때 선 지급된 퇴직금에 빚을 얹어 그야말로 있는 돈에 없는 돈까지 보태서 집 하나를 구입한 것이라면, 직장을 가지고 있을 때 걸 수 있는 마지막 도박에서 진 셈이 된다. 손절매라는 방법은 은퇴를 앞둔 세대에게는 더더욱 권하기 힘든 옵션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투기성 있는 투자에 포함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어차피 개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A씨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50대 중반인 A씨의 부인은 폐경기가 진행되면서 발생한 공황장애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고, A씨 자신 역시 각종 내장기능의 약화로 의료비로 매월 수십만 원의 의료비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비슷한 소득을 얻고 있는 다른 50대처럼 A씨도 노후를 대비한 보험은 생명보험 정도밖에 없고, 저축은 이미 아파트 중도금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여기에 올해 대학을 졸업한 두 자녀의 학자금 상환금이 월급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있지만 막상 그들은 번번이 구직에 실패하면서 자신들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국지적, 집중적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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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 하단부(혹은 중산층 워너비)에 대거 몰려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50대 하우스푸어는 대부분 40대에 IMF를 겪으면서 퇴직금 정산 등의 조치를 받았고, 이 자금으로 각종 사행성 상품에 ‘재테크’라는 이름의 투자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보험 가입률이 낫고, 저축 등 미래를 위한 재산이 적다. 그 와중에 노후설계를 위한 마지막 결정타로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직장의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으며, 주부의 경우 폐경기에 접어들면서 부부의 심리상태가 극도로 예민해지는 단계이기도 하다. 반면, 그들의 자식들은 최악의 실업난에 빠진 20대로, 막대한 사교육비로 키워낸 값비싼 소비재지만, 그 역할을 즉각적으로 해내지는 못하는 세대다.

    『하우스푸어』의 추산대로 A씨와 같은 하우스푸어 가구가 전체의 10~20%대에 불과한 것이 맞는다면, 일본의 91년 버블붕괴와 같은 대규모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10~20%가 A씨처럼 부동산 관련 부채 외에도 높은 교육비와 의료비 부담, 생애 과정상의 여러 위기 등을 동시에 겪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50대 중산층 하단부와 서민층에서 국지적이지만 집중적인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예측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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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진보는 이들처럼 계급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제스처를 보내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에선 이들의 정황을 들여다보는 대신, 고령층의 극우파로 한데 묶어버리거나 신분 상승을 위해 투기열풍에 뛰어들고, 이익이 잘 나지 않으니 토건 개발 세력을 여당으로 뽑아놓은 사람들이라며 힐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 이념으로 지속적인 이익을 얻었던 사람의 멘털리티와 비슷한 기대를 안고 지지했다가 배신을 맛본 사람의 멘털리티를 똑같다고 본다면, 한국사회에서 진보가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설득 대상의 현재 위치가 아니라 설득의 방식이 향하고 있는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대선에서 이들은 자신들을 ‘중산층’으로 인식하고, 투자에 대한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개발 세력에 표를 던졌다.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마지막 남은 재산을 진짜 투기꾼들에게 날리는 결정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이들은 앞으로도 개발 세력을 지지해야 하는 건지, 다른 대안이 있는 건지 답답해하고 있다. 적어도 A씨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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