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할아버지 노동자에 힘을 준 노래
    By 나난
        2010년 11월 13일 05: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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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년은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던 해입니다. 구속된 사건도 사건이지만 ‘꽃다지’가 처음으로 일본 공연을 간 해이기도 합니다. 95년 11월, 민주노총이 출범하던 노동자대회 전야제는 연대 노천극장에서 열렸습니다. 한국의 노동자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노조 간부들이 참석을 했고, 그 때 꽃다지가 <단결투쟁가>를 대합창 편성으로 불렀지요.

    꽃다지 일본 공연

    그것을 보고 일본에서 온 전통일(젠또이쯔)노조 서기장과 상근활동가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사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떤 힘을 느낀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 노동자투쟁의 정서와 에너지를 노래와 문화를 통해 일본 노동자들에게도 전달해주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96년 메이데이 때 꽃다지를 초청하게 됩니다. 민주노총 문화국과 협의를 해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한국의 메이데이 집회에서 빠지고, 일본 전노협의 메이데이 집회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집회 말고 콘서트도 있었지요.

       
      ▲히비야 공원 공연 모습.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꽃다지가 공연하던 순간에 물론 저는 없었습니다. 재판 중이라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고, 구청에 전화해 항의도 해보고, 아는 빽(?)도 써보고 했지만, 결국 출발 당일까지 여권이 나오지 않아 혼자 남았지요.

    그 후 다시 가을에 일본 공연을 가게 되었습니다. 사전 준비를 할 때 일본에서 협의를 하러 오신 활동가, 오자와구니꼬씨가 우리에게 "일본에서 어떤 곳에 가고 싶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의 기업 단위 사업장에 찾아가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약 10여 차례의 노조 순회공연을 잡게 되었고 콘서트도 2개 도시에서 열게 되었습니다. 이 중 인상적인 몇 개의 투쟁과 사업장들이 있었습니다. 국철 해고 투쟁은 많이들 알고 계신 것처럼 1987년 1,047명이 해고되어 복직 투쟁을 20여 년간 계속 해오고 있지요.

    현장 노동자들 앞에서 공연하다

    그분들을 만나 그 긴 세월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영화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다니구찌라는 작은 공장이었는데, 여기는 기업이 부도나서 은행에 넘어가고, 공장 문을 닫게 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못 받은 임금을 대신해 은행보다 우선권을 주장하며 싸워서 회사를 인수 받아 노조가 관리하는 자주관리기업입니다. 전체 노동자 수가 9명이었고, 그들의 가족까지 모여 공장 앞마당에서 파티를 열며 의자 뺏기 놀이, 바위처럼 율동과 해방춤을 추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치 8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한군데 기억에 남는 곳은 고구레 보탄이라는 단추공장인데, 재래적인 수공업 방식으로 교복단추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이곳은 노동자가 4명이고, 수동으로 단추를 만드는 공정을 4명이 돌아가며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홋타라는 할아버지가 60세 즈음에 노동조합을 결성합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정년을 65세에서 60세로 낮추는 규정을 졸속으로 만들고 홋타 할아버지를 강제 퇴직시켰습니다.

    홋타 할아버지는 이에 맞서 싸웠고, 이 투쟁을 전통일 노조가 지원을 했습니다. 우리가 방문할 당시 회사 정문에는 ‘부당해고니 복직시키고,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 공고문이 붙어있지만, 회사는 전혀 미동도 안하는 상태였습니다.

       
      ▲두번째 공연. 국철 해고자 단결대회 공연 모습. 

    홋타 할아버지

    이렇게 일주일간 10여 군데의 사업장을 돌고,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가운데 느낀 점들을 콘서트 때 담았습니다. 그 당시 연출을 맡았던 조민하 선배의 순발력과 대중감이었지요.

    그 공연 중에 한 부분에서 홋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60세가 넘었는데도 노동조합을 스스로 결성하고 부당해고에 맞서 4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 투쟁을 하신 그 열정과 근성에 대한 찬사와 존경을 담아 꽃다지 가수 김용진이 부른 노래가 <사람이 태어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공연이 끝나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부끄러웠지요.

    98년 홋타 할아버지는 끈질긴 투쟁 끝에 승리했고, 보상도 받았다고 합니다. 투쟁 승리 보고대회에 그 노래를 부른 당사자인 가수 김용진이 초청을 받아 참석을 하여 축하 공연을 했고요.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나 2009년 동경 공연에서 70세를 훌쩍 넘기셨지만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계신 홋따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어에 서툰 저에게 할아버지는 꼭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그 당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시절은 아주 힘들었다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전통일 노조가 지원해 주긴 했지만 일반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투쟁하면서 지쳐있었다고요. 그런데 그 때 ‘꽃다지’가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고, 일본인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지지와 용기를 받았다고요. 그래서 그 뒤에도 더 열심히 힘내서 버틸 수 있었고 자신의 투쟁은 승리할 수 있었다고요. 그건 다 그 때 꽃다지의 덕분이라고, 꽃다지가 그 때 그런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길 수 없었을 거라 하셨습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못할 거라 하시며 제 손을 꼭 잡고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자

    한국에서도 많은 노동자가 더 처절한 투쟁을 끈질기게 하고 있고, 그리고 승리하기도 하고, 또 패배하기도 합니다만, 이미 노동운동이 침체되었다고 하는 일본에서 어쩌면 더 어려운 투쟁을 하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바위처럼>으로 잘 알려진 유인혁의 곡입니다. 91년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의 정서에 맞게 창작되어 집회나 투쟁현장에서 뿐 아니라 일상 시기에도 많이 불린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일본의 한 노동자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수 있는 건, 바로 노동자의 정서를 잘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처럼 노래는 시간과 공간이 다르더라도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시키는가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갈 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고요. 늘 강조하지만 여러분도 각자 자신의 노래를 꼭 만드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태어나>

    유인혁 글, 곡

    1. 사람이 태어나서 세 번을 운다지만 노동자는 오직 한번 동지를 위해 운다.
    끝없는 노동 속에 우리 젊음 흘러가도 머리띠를 묶으면 다시 또 청춘이다.
    노동자 가는 길에 후회일랑 없구나 오늘은 투쟁이다. 내일은 해방
    2. 사람이 태어나서 육십을 산다지만 노동자는 오직 하루 해방의 그날위해
    자본가 너희 놈들 아무리 빼앗아도 가져갈 수 없는 건 동지의 굳은 사랑
    노동자 가는 길에 후회일랑 없구나 오늘은 투쟁이다 내일은 해방

    *음원출처 : 노동가요 공식음반 중에서 김태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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