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당거래>, 그들만의 권력과 섹스
        2010년 11월 12일 09: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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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많고 많은 섹스가 있고, 그 중엔 좋았던 섹스와 싫었던 섹스도 있었을 것이다. 좋은 섹스, 나쁜 섹스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 모든 섹스를 아우를 수 있는 말은 딱 하나 뿐이다. 정치적 섹스.

    영화 <부당거래> 얘기를 할 거면서 왜 뜬금없이 섹스 얘기를 하나 하실 거다. 섹스신 하나 없었던 영화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넘치고 넘치던 게 섹스 얘기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라, 섹스의 다른 의미를.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그 뜻을.

    수컷들의 권력 카르텔

    영화 <부당거래>에서 주로 비추어주는 여성들의 역할을 생각해보자. 최철기의 여동생, 장석구의 아내와 내연녀, 주양의 아내, 이동석의 아내와 딸, 요정의 언니들, 간혹 나오는 검사실의 수사관과 주양의 동료 검사. 그리고 강간 후 살해된 여자 아이들.

    이들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억나는가? 영화에서 그 여성들의 얘기를 비중있게 다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 <부당거래>는 ‘권력’을 둘러싼 이야기고, 그 이야기를 충실하게 풀어낼 필요가 있으니까.

       
      ▲ <부당거래>의 한 장면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나. ‘어, 죄다 남자들이네?’라고. 하긴. 나만 이 생각을 한 건 아닌 거 같다. 영화 정보를 찾다가 ‘주 출연진이 깔끔하게 다 남자인 거 꽤 좋아’라는 리뷰 제목을 봤으니까. 나는 <부당거래>의 캐스팅과 영화의 구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바로 이 영화 속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나타나는 ‘권력’의 속성과 유지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심히, 엄청나게 불공평하다는 거다.

    권력은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자와 권력을 얻으려는 자, 혹은 권력이 필요한 자들끼리의 은밀한 만남과 거래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러한 거래는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부당거래가 이루어지는 곳 = 여성이 시중 드는 곳

    영화의 장면들을 생각해보자. 부당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들 중 대부분은 여성이 시중을 드는 요정이거나, 남성 전용 마사지샵이다. 혹은 폭력집단을 이용하여 이루어지거나, 혼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법들은 오직 ‘이성애자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성이거나 게이 남성들은 부당한 거래에 참여할래야 참여할 수조차 없는 방식 아닌가.

    영화 속 여성들이 나온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 나이까지 장가 가지 않고 추레하게 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욕한다"는 철기 여동생의 대사를 생각해보자. "오빠, 나 저거 갖고 싶어"를 얘기하던 장석구의 내연녀를 생각해보자. 박수를 치며 웃음짓던 골프장의 여성 노동자를 생각해보자. 요정에서 술시중을 들던 여성을 생각해보자. 룸사롱에서 남자들이 껴안고 만지던 여성들을 생각해보자. 승진의 발판 삼아 결혼한 주양의 아내를 생각해보자.

    여성은 돌봄 노동을 하는 내조자이거나, 남성에게 빌붙거나, 권력 승계의 매개체가 되거나, 접대의 도구로써 비추어지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화 속 캐스팅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여성들이 ‘권력’에서 어떤 식으로 배제되어 있는지를 이 영화가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다.

    생각해보라, 요정이나 룸살롱을 찾는 사람들은 여성이나 게이들인가? 남성 전용 마사지샵을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가? 폭력 집단에서 여성은 주축으로 활동할 수 있는가? 경찰은 어떤가. 영화 속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경찰대’는 여성을 입학정원의 10%만 뽑을 뿐이고(2011년 경찰대학교 모집요강 참조), 경찰 고위 간부 중 여성은 6.7%뿐인 현실에서 원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마저 남성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상할 수 있는가. 주양의 스폰서가 여성 기업가인 장면을. 주양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시켜주는 사람이 장인이 아니라 장모인 장면을. 해동건설 대표가 여성인 장면을. 김기자가 여성인 장면을. 최철기의 팀에 여성이 절반인 장면을. 강력폭력2반 팀장이 여성인 장면을. 최철기를 찾아온 강국장이 여성인 장면을. 경찰청장이 여성인 장면을. 회의하는 검사들의 절반이 여성인 장면을. 부장검사가 여성인 장면을. 검사장이 여성인 장면을. 그리고 여성과 혼인하지 않고도 조직생활에서 내쳐지지 않은 채 승승장구하는 남성을.

    상상해보자, 여성이 권력의 주인인 장면을

    영화 속의 중심인물들과 사건들과 사건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상황들은 모두 이성애자 남성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것들이 어색하지 않고 ‘그럴 법하다’라고 인식되는 이유는 실제로 우리가 겪는 삶 속에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성애자 남성들이 권력을 누리는 것은 ‘그럴 법’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 – 여성이나 게이들 – 이 누리는 것은 ‘그럴 법’하지 않은 어딘가 어색하고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여성이나 게이들이 ‘권력’에 다가가는 건 고사하고, 일상에서 존재를 위협받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말이다. 그야말로 ‘수컷들의 권력 카르텔’이 아닌가. 젠더도 아닌 섹스를 통해 모든 일이 결정되고 있으니.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호스트바에서 접대를 받거나, 레즈비언이 요정에서 접대를 받거나, 게이가 게이바에서 접대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저 상황과 권력 관계들을 그대로 둔 채, 성별만 뒤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특정 성별/성정체성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해체하고, 그저 성별/성정체성과 상관없이 당당히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바로 성정치가 존재하고, 내가 성정치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이유이며, ‘정치적 섹스’를 말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이 글의 필자는 "기나긴 학교 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뛰어든 초보 작가이자 정치인. 할 수 있는 일로 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 『여기 사람이 있다-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는 작업에 참여한 후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쓰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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