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진 소수파'의 주목할 만한 성찰
    "진보, 좌유주의 좌파와 연대해야"
        2010년 11월 11일 03: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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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사회당은 무엇보다도 모순적 이미지로 남아 있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밝히는 것만으로 마치 세상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생각하는 얼치기 정통 맑스주의 정파. 한국 사회의 대표적 소수자 의제인 장애인 문제를 ‘이동권’ 개념으로 공론화하는 데 공헌한 헌신성과 집행력을 갖춘 실천적 정파.

    사회당, 그 모순적 이미지

    여기에 최근의 기억을 덧붙이자면 첫째, 대중정치가라기보단 현학적 이론가처럼 보이는 금민이라는 리더가 표방한 ‘사회적 공화주의’라는 이념. 둘째, 노동과 소득을 분리해 생각해보기는 커녕 노동에 대한 정당한 소득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존재의 대가를 지불하라’며 ‘기본소득’을 설파하는 몽상.

    그런데 최근 취임한 안효상 사회당 대표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들의 고민의 대강을 알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진보신당 내의 자칭 ‘진짜 좌파’들보다 현실 변화에 더 민감하고, 진보정치세력의 시대적 소명에 대한 고민이 더 깊다는 것도 알았다. 안효상 대표 인터뷰에서 2012년 진보진영 전략과 사회당의 역할과 관련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진보정치세력은 2012년 정치 국면에서 ‘보수-자유-진보’의 삼분구도를 정립해야 한다. 이 목표에 동의하는 모든 진보정치세력의 대연합이 필요하다. 이 연합을 기반으로 진보정치세력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대선에도 후보를 내보내 민주세력과 공동정부 구성을 포함하는 민주-진보 연합을 이룬다.

    이를 위해 사회당은 ‘급진적 소수파’로서 독자 조직을 갖는 대신에 통합진보진영의 큰 틀에 참여할 용의가 있고, 그 틀 내에서 독자적 정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청년기본소득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자 한다.

    이같은 발언은 그간 ‘급진적 소수파’로서의 독자성을 고수해온 사회당으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인식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내외에서 진보세력의 대통합을 지지해온 이들과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한 것은 이같은 입장선회 자체가 아니라 안 대표가 보여준 정치 과정에 대한 성찰인데 이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보겠다.

    신임대표의 파격적 인식 전환

    첫째, 안 대표는 진보대연합의 과정를 기존 진보세력의 단순결합이 아닌 하나의 역동적인 정치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진보대연합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의 기존 진보정치세력의 단순 결합이 아닌 ‘큰 변화’의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진보 연합과 진보 혁신을 별개로 보고 있는 진보신당 내 소위 ‘독자파’의 인식과 달리 진보의 혁신(재구성), 진보의 대연합이라는 당면한 두 과제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물론 안 대표가 말하는 ‘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명확하지 않지만, 진보연합이 ‘도로 민주노동당’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가 탄생하는 과정으로 보는 점에서 진보 혁신이 수반되지 않는 진보세력의 연합은 정치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본 필자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특히 안 대표는 진보 혁신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하나로 ‘청년기본소득운동’을 제안하고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청년계층이 시장만능주의의 최대 피해대중 가운데 하나인데다가 청년계층의 문제를 기존의 사회운동 틀로 다룰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사회당은 ‘급진적 소수파’로서의 자신의 지지 기반을 청년계층에서 찾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힌 셈이다.

    둘째, 안효상 대표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대해 반감이 당내에 존재하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선통합론’(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통합)이 자칫 진보세력의 왜소화로 이어질 것도 우려하며 ‘최대한 정서를 배제하고 미래적 관점’으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의 계기를 찾겠다고 했다.

    즉 진보 통합은 ‘가능하면 최대한 더 크게’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는 진보신당 일각에서 당내의 통합세력을 제어하는 전술의 일환으로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선통합론을 보는 협소한 입장과 명백히 궤를 달리한다.

    반MB 연합, 거부 또는 확장

    셋째, 안 대표는 ‘민주주의 투쟁에서 항상 좌파가 선두에 섰다’고 지적하며 반MB 연합 자체를 거부한 적이 없고, 오히려 반MB 연합의 확장을 위해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즉 반MB 연합 내부에서 MB의 실질적 패배와 시장만능주의에 반대하는 진보파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고민하기보다는 반MB 연합 자체를 거부하고 그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여기는 전선(가령 ‘반신자유주의 연합’이었다가 중도파가 좌회전하면 ‘반자본주의 전선’ 하는 식으로 급진적으로 보이나 실질적인 힘이 부재한 전략)을 구축하려는 과격파 세력들과 구분되는 입장이다.

    이 같은 안 대표의 문제의식은 진보파를 한국 정치의 주요 축으로 구축한 뒤에 2012년 대선 정국에서 공동정부 구성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안 대표의 문제의식은 진보진영 전체의 통합을 통해 진보정치의 발전을 고민하는 이들과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여전히 논점은 존재한다.

    안 대표가 ‘과거 맑스주의, 사회주의 운동으론 어렵다’는 인식에서 급진적 소수파로서의 새로운 길찾기에 나섰다면, 필자가 진보혁신과 진보연합을 통합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은 ‘한국 진보파가 자유주의 세력의 실질적 대안이 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냉엄한 현실’ 때문이다. 이는 1999년부터 2009년 사이 무려 11개 주요국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대안으로 진보파가 집권한 라틴아메리카와 매우 대조적이다.

    이 좋은 시기, 진보파가 대안이 되지 못하는 이유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자유주의 세력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고, 이명박 보수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팽배하다. 게다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난파선에서 탈출하려는 자유주의 명망가들의 발언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진보파가 한국 정치의 대안으로 간주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 대표의 말처럼 민주주의 투쟁에서 늘 진보파는 최선두에 싸워왔다. 그 정치적 성과 즉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자들은 누가 챙겨갔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주의세력이 만든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가? 그 뒤 시장만능주의 반대투쟁에서 진보파는 최전방에서 육박전까지 벌여가며 전투를 벌였다. 이제 후방에서 시장만능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누구는 ‘신자유주의는 침몰하는 타이타닉’이라고 하더라는 소문이 들려온다. 자 이제 진보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진보파가 고를 수 있는 정치적 선택지는 다음 세 가지일 것이다.

    첫째, 더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요즘 진보신당 내에선 이 같은 노선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여온다. 이른바 ‘자유주의세력과 차별화’라는 주장 아래 현재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욱 과격한 주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이 과거 자신이 주장했던 것을 망각한 것은 물론, 끊임없이 실질적인 정치력을 보여줄 계기를 찾기보다는, 보다 과격한 입론을 세우는 것에 만족하려는 경향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유주의세력과의 진정한 차별화는 과격한 입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 좌클릭 레토릭’을 ‘실질적 좌클릭’으로 만들어내는 정치력을 과시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진보파의 세 가지 길

    둘째, 안 대표의 주장처럼 전통적인 진보파의 단결이다. 이른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세 주체의 결합이다. 만약 이들이 그들의 한결같은 구호처럼 정규직 노동자계층(민주노동당), 비정규직 노동자계층(진보신당), 실업자 및 취업자로 구성된 청년층(사회당)의 실질적 지지를 받고 있다면 아마도 이들 삼 주체의 연합은 집권정치연합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조차도 정규직 노동자계층에게 정치적 대안으로 간주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셋째, 필자가 주장해온 길로서 진보파의 단결, 그리고 자유주의 좌파와의 연대의 길이다. 전통적인 진보파의 단결, 탈시장만능주의 입장에 합류하면서도 민주당에 합류하는 것을 꺼리는 자유주의 좌파와의 연대를 기반으로 한 통합진보정당의 건설이다.

    혹자는 이를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으로 좁혀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시장지상주의에서 이탈하는 자유주의 좌파의 정치 노선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일시적인 선거연합은 가능할 수 있어도 같은 당의 일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는 김기식의 빅텐트론 혹은 문성근씨가 주장하는 제3지대 단일정당론 등 반MB 진영 전체를 통합하는 정당을 건설하자는 입장과도 궤를 달리한다. 한국 정치 지형을 진보파가 늘 캐스팅보트의 역할에 자족해야 하는 미국이나 일본식 양당구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럽식의 양당구조로 개편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진보파의 전략적 목표

    최근 ‘반신자유주의 정치연합’을 당론으로 채택한 진보신당의 조승수 신임 대표는 국참당과 민주당이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이다. 설령 그들이 탈신자유주의 흐름에 동조한다고 해도 그들이 ‘좌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좌파가 아니지만 시장만능주의를 반대하고 보편적 복지국가에 동의할 만한 정치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당한 얘기를 조승수 대표가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다. 즉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연합의 강도를 전략적인 수준까지 높이지는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자칫 정치의 역동성을 배제하는 수세적인 차별화 전략에 그칠 위험이 크다.

    현재 3개 정당으로 분열된 자유주의 정치 진영에서 시장만능주의에서 이탈하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것은 당론인 ‘반신자유주의 정치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고, 보수파를 실질적으로 패배시키고 시장지상주의가 지속적으로 유예시켜온 한국형 사회복지국가의 안정적인 건설을 위해서도 불가결하다.

    진보파가 자유주의 좌파세력과의 적극적인 연합 전략을 구사하지 못할 경우, 과거의 시장주의 노선을 이탈해갈 자유주의세력들이 반MB 탈신자유주의 정국의 불완전한 헤게모니를 더욱 강고하게 만들어갈 확률이 높다.

    그 결과 탈독재 과정에서 그러했듯이 탈신자유주의 과정에서도 진보파는 또 다시 정치의 주역이 아니라 또 다시 정치의 조연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불철저한 탈시장주의를 뜻하며, 낮은 수준의 사회복지국가를 뜻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이 양자간의 연대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자유주의세력의 입장에선 지난 집권 10년의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진보파가 필요하고, 진보파 입장에서도 통치에는 명백히 실패했고 책임을 져야 하지만 집권과 통치의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이 필요하다.

    통합진보정당의 사회당계?

    게다가 현재로선 기존의 전통 진보세력 전체를 통합해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자원이 태부족한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결국 진보정치세력이 원내교섭단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탈신자유주의에 동의하는 여러 인사들과 정치세력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 전략이 한국 정치를 한나라당, 민주당, 통합진보정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전통적 진보세력과 자유주의 좌파의 연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으로 위력적으로 삼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통합진보정당에서 사회당은 ‘급진적 소수파’로서 진보세력 전체의 상상력의 지평을 확대시키며, 시급하지만 늘 후순위로 밀려온 청년과 소수자 등의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섰으면 좋겠다. 현재의 인텔리들의 학습모임 같은 모습에서 환골탈태하여 라틴아메리카처럼 대선에도 출마하여 20%의 지지를 얻는 대중적 급진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특히 ‘통합진보정당의 사회당계’는 기본소득운동을 청년들의 대중운동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여 당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가기를 기원한다. 현재로선 ‘기본소득제’는 유럽풍의 몽상에 가깝지만, 실업의 늪과 경쟁의 정글 속에서 배회하는 청년세대의 대중적 지지를 획득한다면 미구에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여기 생생한 사례가 있다. 프랑스 혁명기 자코뱅파보다 더 급진적이었던 앙라제(Enragés)파는 1793년에 누진소득세 도입을 주창했다. 당시로선 소수파의 백일몽에 불과했던 누진소득세는 그 후 전체 좌파의 상식적인 주장으로 자리 잡았고, 마침내 국가 조세의 근본 원리가 되었고 사회복지국가의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물론 이를 실천에 옮기고 국가운영에 적용한 것에 성공한 것은 급진파가 아니라 온건파 사민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손치더라도 진보파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상상력은 늘 요구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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