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에서 알바로…변한 건 하나도 없다"
By 나난
    2010년 11월 10일 11: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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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40년 전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시다 여공들의 고픈 배를 채웠던 청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거침없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그다. 그리고 그의 이름 뒤에는 자연스레 ‘열사’란 말이 따라 붙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엔 여전히 청년, 비정규직, 여성, 고령이란 이름으로 무수한 현대판 시다들이 존재하고 있다. 노동계는 “열사정신 계승”을 외치며 그가 몸소 실천한 ‘기득권을 버린 연대’를 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열사’라는 이름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에 <레디앙>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는 공동으로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2010년을 살아가는 각 세대와 현대판 시다들을 통해 ‘전태일’과 그의 ‘정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0대에서부터 50대까지 각 세대가 바라보는 [세대공감, 나와 전태일], 기륭전자, 동희오토 등으로 상징되는 비정규직 [현대판 시다와 전태일], 다양한 세대를 통해 들어보는 ‘오늘 왜 전태일 정신이 필요한가’에 대한 시선 [전태일, 그리고] 등 3가지 각기 다른 소재로 2010년 전태일을 만나보자. <편집자주>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 <사계>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를 들으면 눈물이 고인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에는 눈물은커녕 ‘노래 좋다’라는 생각만 했었다. 초등학생 때 이 노래를 ‘거북이’라는 대중가수가 리메이크를 했었는데 가사 하나 변한 것 없이 랩만 넣었을 뿐이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이 가사의 남모를 뜻이 담겨져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말이다.

중학생 때였다. <사계>가 잊혀져갈 때 즈음에 중학교 필독도서로 『전태일 평전』이 있었다. 필독도서라고해서 독후감 쓰는 숙제였는데 난 『전태일 평전』을 읽지 않고 인터넷에서 독후감만 찾아 숙제를 냈던 기억이 난다. (난 책읽기를 꽤 싫어하는 아이였다)

독후감 숙제는 인터넷을 베꼈었다

   
  ▲ 공기

고등학생이 된 후 나름 사회문제에 관심 있었을 때, 학교는 지루하고 점심시간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나는 밥을 빨리 먹고 도서관에서 인터넷도 쓰고 책장 뒤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는 걸 즐겼었다.

그러다가 책장에서 『태일이』라는 만화책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내가 다녔던 학교는 만화책을 빌리는 게 불가능했기에 『태일이』 시리즈를 다 읽을 때까지 점심 먹고 도서관, 야자가 있는 날엔 석식 먹고 도서관 가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화책을 다 읽었는데도 마음이 공허했다. 그 공허함은 아마 내가 그 책을 접하기 전에 청소년 노동 빈곤팀 이라는 활동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노동빈곤팀 이란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팀으로 <알바권리,바로내가!바로지금!(알리바바)>라고 흔히 칭하며 선전전과 실태조사 세미나 등 다양하게 활동하는 모임이다.)

전태일이란 인물을 왜 몰랐을까? 아마도 전태일과 나는 아주 먼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는 일찍이 개발도상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마주쳐 노동법을 외쳤던 사람이니까. 그 후로 벌써 40여 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지났고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그 공허함은 방금 말 한 것과 같이 ‘변한 것 없이 더 잔인한 세상에 내몰려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그 시절 청계천 주변에 있는 미싱공장은 여성과 어린아이 등 임금이 싸고 오랜 시간 노동시킬 수 있는 인간들을 모아서 쉴 새 없이 일을 시켰을 것이다. 싸디 싼 노동력이기에 미싱공장은 1층과 2층을 나뉘어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허리를 펴기도 여의치 않고 환풍 시설 또한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내 가족과 내가 먹고 살기위해 노동의 악조건에서도 침묵해야만 했다.

변한 건 하나도 없다… 아무도 인간의 말을 들어주려 않는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변한 건 하나도 없다. 지금의 청소년 노동자들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혹은 알바생이라는 명목 하에 엄연히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인 소모품처럼 취급당할 뿐이다. 그리고 만만하기 때문에 임금이 체불되어도 혹은 떼먹어도 악덕사장들은 할 말이 많다.

‘싫으면 다른 곳으로 꺼져라’ 따위의 모욕적인 말만 돌아올 뿐이다. 경찰도 선생님도 어쩌면 부모님도 한 인간이 이야기하려 할 때 진지하게 들을까? 선생도 부모도 경찰도 비슷한말만 되풀이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누가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래? 공부를 하루종일 해도 시간이 모자란 나이야 너는!"
"그것은 경찰서가 나서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동부로 가봐."
"그러게 아르바이트 같은 건 뭐하러 했니? 지금 주는 용돈만으로 부족한 거야?"

이런저런 걱정을 앞세운 방관의 말들일 뿐이다. 그 누구도 청소년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에 집중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똑같이 순응 할 수밖에 없다.

적게 주면 적게 주는 대로, 욕하면 욕을 들어야 하고, 때리면 그냥 있어야 하고… 그 태도에 저항 혹은 문제제기를 한다 해도 곧바로 잘리게 되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무기력해지지 말자… 무기력지지 말자…라고 되풀이해도 현실은 더욱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능력이 중시되고 학벌이 중시되는 요즘에 그것들을 가지지 못한 자는 소외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오늘 전태일 40주기를 맞아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때 그가 외쳤던 그 구호가 오늘날에 와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기 마음껏 누릴 수 없도록, 아울러 더 이상 다른 약한 이들을 착취할 수 없도록 말이다. 이렇게 더 치열하게 고민 할 수 있는 그 대상에 아마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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