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는 너무 괴로워"
        2010년 11월 09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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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 몇 달 사이에 거짓말을 여러 번 했다. 기륭에 다녀와서는 기륭자본이 가장 나쁜 놈들이라고 했고, 동희 오토에 다녀와서는 현대자본이, 반올림을 접하고선 삼성자본, 두리반에서는 GS자본이, 재능교육에 다녀와서는 재능자본이 가장 악질이라고 했다. 아마 또 이런 거짓말은 앞으로도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진보’를 하기로 작심했기 때문이다.

    진보를 하려면 거짓말을?

    예전에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던 것 같다. <미녀는 괴로워>. 추녀가 성형수술을 통해 미녀가 된 이후에 여러가지의 괴로움이 있었다는 등 그런 내용이었지 싶다. 나는 이 제목을 차용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이런 복잡한 세상을 단지 ‘보수’ ‘진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킨다는 것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화하고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두 단어는 임의성이 강하고, 마치 자기가 중산층이라 주장하는 근거처럼 근거가 미약하고, 심리적인 면도 강하니 딱히 할말도 없다. 하지만 어떤 경향성이나, 성향 정도를 나타낼 수는 있겠다 싶다. 일테면 내성적이니 외성적이니 하는 것처럼.

    나도 한때는 진보신당의 당원이었으니, 내 성향은 진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한때 진보신당 당원이 아니었다 해도 나는 진보라는 단어가 보수보다는 뉘앙스도 좋고, 정체되지 않고 진취적이란 생각도 들어 좋아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보다는 변화를 지향하는 게 젊은이답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래도 보수주의자들 보다도 그 숫자가 현저히 적으니, 조금은 우쭐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무수히 널려있는 돌멩이(보수)보다야 희소한 옥(진보)이 가치가 있고 자기를 드러내기가 더 낫지 않겠는가?

    최근 몇 달 사이 내게 일어난 일들

    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에 나는 이 ‘진보’가 아주 괴로워졌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친구들에게 내가 진보자라서 무상급식을 말하고, 자유를 말하고, 노동해방과 평등에 대해 했던 말들을 모두 다 쓸어 담고 싶어졌다.

    "술 먹고 헛소리 했노라"고, "누구든지 조금의 주사는 있지 않느냐"고.
    그럼 최근 몇 달 사이에 내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말 해야겠다. 여러 군데의 강연회도 많이 참석하고, 책 읽는 모임에도 등록하고, 이런저런 집회에도 많이 참석하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보’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런데 내가 ‘진보 생활’ 을 시작하자마자 나의 생활에 여러가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세상 일에 대해 이것저것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진보’을 하기로 했는데 세상 일에 무심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라서 관심을 가지다보니 관계를 안 가질 수는 없게 됐다. 자연히 푼돈이지만 여기저기 후원금을 내게 됐다. 형편없는 나의 수입에서 ‘진보’를 하려니 요즘은 담배를 끊는 문제도 심각히 고민 중일 정도다. 이게 나에겐 참 괴로운 일이다.

    다음으론 한 이십 년 전쯤에 이것저것 주워 읽었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잡동사니들로 현재 ‘진보’를 하기는 한계가 있어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강연회 등을 쫒아 다니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의 유일한 소유(?)인 휴식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을 수가 없고, 식어버린 머리에 이것저것을 쟁여 넣자니 괴롭고, 과거의 나를 부정하자니 갈등도 생기더라. 이래저래 괴로움의 연속이다.

    여기저기 투쟁의 현장 특히 비정규직 싸움의 현장에 가보아야 했다. ‘진보’는 이래야 할 것 같았다. 대략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고 있고, 때때로 노숙농성도 해야 한다. 이게 나에게는 괴로움이다. 매번 갈까말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진보생활을 하기로 했으니 안 갈 수도 없고 괴로움이 이만저만 아니다.

    가족관계, 약간 불화 발생하다

    이렇게 되니 맨 먼저 가족관계에서 약간의 불화가 발생하고 있다. 장모 생일에도 빠지는 경우가 있고, 퇴근 후 고작 두어 시간 정도의 개인 생활에도 지장이 막대하고, 가족들 얼굴 보는 기회도 드물어지고 있다. 친구들 만나 술 한 잔 하는 일도 적어지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활의 변화와 불만의 말들을 감내하기가 나에게 괴롭다. 더군다나 소위 투쟁의 현장이란 곳들이 대부분 열악하기 그지 없다보니 내 몸도 아주 파김치가 될 때가 종종 있을 뿐더러, 나의 약삭빠름이 조금만 둔해진다면 본의 아니게 유치장에 갇히거나, 벌금 고지서를 받을 처지가 될 수도 있으니 불안하고 이게 또 큰 괴로움이다.

    내가 죽기 전에 진보세상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 짓을 평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또한 괴로움이다.

    어째서 나의 ‘진보’는 이렇게 괴로운 것이란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자칭 ‘진보’라는 친구들은 진보라서 자랑스럽다고 하던데 나는 그들과 다른 ‘진보생활’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오늘 아무리 곰곰 생각해보아도 ‘진보’ 는 괴롭다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진보생활’에서 발을 뺄 수 있는 마땅한 방법도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생에서는 괴롭지만 ‘진보’로 살고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보수’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방금 문자가 도착했다. 재능노동조합이 시청 앞 재능 서울지국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단다. 빌어먹을 이 겨울에 노숙농성이라니. 그냥 촛불 정도만 하고 말지. 진보는 괴롭다. 내복이나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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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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