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업장 유해물질 규제의 '정치적' 성격
        2010년 11월 08일 09:40 오전

    Print Friendly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투쟁없이 제정되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1971년 미국의 노동안전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이 생겨난 것은 1960년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권 운동과 생태적 가치를 고민했던 환경운동 그리고 침략전쟁인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전운동이라는 진보적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노동자들이 온갖 독성물질에 노출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이 생겼다는 사실에 뿌듯해 했습니다.

    유해물질 기준 결정의 ‘정치성’ 

    하지만, 노동안전청이 생겨나고 나서 작업장 내의 유해물질을 규제하는 과정 역시 그 하나하나가 결국은 입장을 달리하는 과학과 또 다른 과학의 싸움이었고, 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세력들간의 지난한 투쟁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 최근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이 노출되었다고 알려져 또 한번 화제가 된, 바로 벤젠(Benzene)의 규제 기준입니다.

    지금은 노동자들이 벤젠에 노출이 되면 백혈병, 악성 빈혈, 림프종 등에 걸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1978년 미국노동청이 벤젠 노출 기준을 정하려했던 당시에는 지금에 비해 그 근거가 훨씬 더 빈약했습니다. 물론 1900년대 초반부터 벤젠 노출이 백혈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임상의사들들의 사례보고나 동물실험의 연구결과는 있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역학 연구는 단 두 건만이 출판된 상황이었습니다.

    1978년 당시 미국노동안전청은 작업장 벤젠 노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1ppm이라는 노출기준(Permissible Exposure Limit)을 정합니다. 작업장 대기중 벤젠의 농도가 1ppm 넘는 사업장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고 처벌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석유산업과 연관된 기업체들이 1ppm이라는 규제 기준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소송을 제기합니다. 결국 1980년 미국대법원은 벤젠 노출기준을 10ppm으로 완화하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벤젠의 유해성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쌓이면서 10ppm으로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집니다. 결국 1987년 미국 노동안전청은 벤젠 노출기준을 다시 1ppm으로 되돌립니다. 결국 노동안정청의 벤젠 관련 규제가 시작된 1978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의 노동자들은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1ppm이 넘는 벤젠에 노출되었고 국가는 그것을 공식적으로 허가했던 것이지요.

      ▲유해물질 발생 사업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는 노동자. 

    많은 산업보건 연구자들이 그 상황을 씁쓸하게 생각하며 지나갔을 때, 뉴욕의 마운트 시나이(Mount Sinai) 의과대학 산업의학과의 Nicholson 교수는 좀 더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다름아닌, 10여년간의 규제 지연으로 인해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을 노동자들의 수를 계산해내기로 한 것입니다.

    질병과 사망 ‘이후’에 오는 규제

    Nicholson 교수는 1978년에서 1987년까지 1ppm과 10ppm 사이에 노출되었던 노동자들의 수를 미국 전체에서 9600명이라고 추정해내고, 그 규제 지연으로 인해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노동자들의 수가 최소 30명, 최대 490명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연구는1989년 환경보건분야 최고의 저널 중 하나인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에 실립니다.¹

    저는 이 오래된 논문을 읽고서 몇가지 생각에 씁쓸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왜 항상 규제는 노동자들이 다치고 병든 이후에야 생겨나는 것일까’라는 의문 혹은 자괴감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매년 수백 개의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개발되고 그것들을 수많은 공장의 노동자들이 사용하는데, 기업의 기술보안이라는 이유로 많은 경우 그 정체조차 알 수 없고 또 벤젠처럼 과학적인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규제가 되지 않습니다. 훗날 어렵사리 생겨나는 과학적 근거라는 것도 결국 노출이 계속되다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병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임을 생각하면 더욱 답답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2002년에 울산의 SK 석유화학공장에서 일하다 35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고(古) 송은동씨가 생각나서였습니다. 벤젠에 노출되며 일하다 걸린 남편의 백혈병이 직업병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며, 아내분께서 흰색 소복을 입고 회사 앞에서 135일 농성을 하셨습니다.

    결국 송은동씨의 백혈병은 직업병으로 인정이 되고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았지요. 2003년까지 한국에서 벤젠 노출 규제기준은 10ppm이었는데, 송은동씨가 일했던 공장에서 진행된 역학조사의 결과 보수작업을 할 경우에는 평균 벤젠 노출량이 11.6ppm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SK석유화학 고 송은동씨의 경우

    SK와 같은 거대 공장에서도 벤젠 노출이 10ppm이 넘었다면, 영세 사업장에서는 그동안 어떠했을까요. 한국에서는 2003년이 되어서야 벤젠 노출 기준이 1987년의 미국 노동청 기준을 따라 1ppm으로 바뀝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그동안 1ppm에서 10ppm 사이의 벤젠에 노출이 되며 백혈병에 걸렸을 사람들을 얼마였을까요. 규제가 지연되며, 한국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은 몇 명일까요. 아니, 2003년 이전까지 10ppm의 규제는 얼마나 지켜졌을까요. 한국에서도 Nicholson교수의 연구처럼, 스스로의 병이 직업병인지도 모르고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을 그 숫자를 누군가는 추정해내고 또 누군가는 계속 기억해야 할 텐데요.

    과거로부터 배우고 실천하지 못하면, 비극은 반복된다고 하던가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의 경우에도 또 다시 벤젠이 등장했습니다. 삼성측에서는 계속 부인해왔지만 삼성 반도체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기흥공장에서는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황유미 씨나 이숙영씨의 경우도 벤젠에 노출이 되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7753)

    직업병 역학을 공부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상처를 주고받는 시간이 지나가고 황혼 무렵에야 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요. 많은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며 다치고 병이 들고, 그 이후에야 연구자들은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내고, 또 시간이 지나 그 근거들을 기반으로 어렵사리 규제가 생겨나도 그 규제를 현장에서 집행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한국사회에서 말이예요.

    * * *

    1. Nicholson, W.J. and P.J. Landrigan, Quantitative assessment of lives lost due to delay in the regulation of occupational exposure to benzene. Environ Health Perspect, 1989. 82: p. 185~8.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