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분노…회한…"이곳은 막장"
    By 나난
        2010년 11월 05일 07: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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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학습지노조 사무실에는 ‘화병약’이 상비돼 있다. 1080일간의 농성을 진행해 오며 쌓인 스트레스와 분노를 그렇게라도 다스리기 위해서다. 

    노조사무실에 상비된 ‘화병약’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은 “숨통을 조이겠다는 거다”, “가슴이 답답하다. 화병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내 그는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노조 사무실 집기는 쓰레기니 가져가려면 가져가라’고 말해왔는데 막상 가져간다고 하니 마음이…”라며 유 지부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유명자 지부장(사진=이은영 기자)

    4일 오후, 유 지부장과 재능교육 조합원들은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아야 했다. 며칠 전 재능교육 측이 낸 업무방해금지가처분 결정 위반에 대한 간접강제(압류)가 진행된 후 이날 해당 물품에 대한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1050일간의 농성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손때가 마치 ‘동지애’처럼 묻어있는 묻은 컴퓨터, 복합기, 세탁기, 냉장고, 책상과 의자 등이 경매물품에 올랐다. 법원 감정가는 모두 합해야 71만 원이다.

    ‘손님들’이 찾아온 건 3시 50분 경. 서울중앙지방법원 집행관실 관계자와 채권자인 재능교육 측 대리인, 경매 참여자 등 6명이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학습지노조 사무실에 나타났다. 집행관은 “경매 때문에 왔다”며 경매 참여자에게 “물건을 보라”며 노조 사무실로 밀고 들어왔다.

    유 지부장과 학습지노조 조합원들은 “누구냐”,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집행관은 “경매를 진행하러 온 집행관”이라고 답했지만, 그의 신분증을 확인하기 위해 조합원들은 계속 항의했다. “정당한 공무집행하러 온 것이 아니냐”, “신분증을 보자”는 조합원들의 항의해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집행관실 주임’이라고 명시된 신분증을 내놓았다.

    경매 진행 못해

    조합원들은 법원조치에 따라 압류되고, 진행되는 경매절차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져가라”고 악을 쓰는 것밖에. 유 지부장이 “재능교육 관계자가 들어와서 직접 돈 가져가라”, “채권자도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소리치자 한 집행관은 “악 쓰는 것만 배웠냐”며 빈정거리기도 했다.

    “내 물건 뺏기는데 악 안 쓰게 생겼냐. 어차피 온 거 재능교육에서 직접 물건 가져가라고 하라”며 유 지부장은 더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경매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달려온 노조 관계자들은 “노조 사무실 집기까지 압류해 경매를 하느냐”며 “조합원들의 목을 조여 손발을 묶겠다는 심사가 아니냐”며 항의했다.

       
      ▲유 지부장이 재능교육 대리인에게 "직접 물건을 가져가라"며 항의하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집행관들이 4일 압류품에 대해 경매를 진행하기 위해 서울 성북구 학습지노조 사무실에 왔다,(사진=이은영 기자)

    결국 이날 경매는 진행되지 못했다. 경매 참여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참여하겠느냐”며 자리를 떴고, 집행관도 “(노조가) 방해해 경매가 유찰됐다”며 “다음엔 채권자 동의를 얻어 직권으로 들어와 경매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한 후 자리를 떠났다.

    이들이 떠나고 난 뒤 노조 관계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오수영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은 “(농성장) 때려 부수고, 고소고발만 수십 개에, 이제는 압류에 경매까지 막장이 따로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14일 자신의 집에도 ‘빨간 딱지’가 붙었던 오 사무국장이다. 시어머니가 혼자 계신 집에서 이뤄진 압류와 지난 3일로 예정됐던 경매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2일 저녁 6시경에 집행관에게 전화해 ‘내일 경매 진행할 거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확인까지 받았는데, 막상 3일 오전 ‘경매가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경매 때문에 시어머니는 시골로 아이는 외갓집으로 보냈는데, 또 다시 경매 날짜가 나오면 무슨 핑계를 대고 내보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노조가 하는 모든 것 못하게" 가처분신청

    현재 오 사무국장은 물론 조합원들은 가정집과 노조 사무실에 대한 압류, 경매 조치에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급여나 통장이 가압류된 것도 문제지만, 나로 인해 가족이 피해를 받고, 생활물품이 집에서 빠져 나가는 걸 봐야 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노조 관계자 역시 “노사관계에서 강제 집행은 초유의 사태”라며 “노조 압박카드가 될 수는 있지만 압류에서부터 경매까지 법 집행을 하는 것은 법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재능교육 측의 압박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회사 측은 집회금지가처분 신청도 냈다. 재능교육 회장 등을 지목해 해당 ‘사람들에게 50m 이내 접근해 모욕적인 언행을 하거나, 이들의 차량이 지나갈 때 소리치고, 가로 막는 행위는 물론 농성 중 깔판을 사용하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한 우산 등을 금지시켜 달라’는 내용이다.

    유 지부장은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전 업무방해가처분은 소음 70데시벨 이상, 모욕적인 피켓 사용 금지 등이었는데 반해, 어제 낸 것은 구체적으로 현재 노조가 하는 행위 모든 것을 금지시켜달라는 것으로, 해당 행위를 위반할 경우 1회당 500만 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가처분신청에 대한 결정문은 오는 12일 나올 예정이다.

       
      ▲ 학습지노조 사무실 압류 목록.(자료=재능교육지부)

    여기에 노조탈퇴 종용도 계속되고 있다. 오 사무국장은 이날 한 조합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회사가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학습지교사 경력만 16년차인 해당 조합원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향한 특별한 탄압들

    오 사무국장은 “탈퇴를 하지 않고 회사에 맞서는 것도, 그렇다고 노조를 탈퇴하는 것도 조합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좋은 날이 올 거’란 말 밖에 해주지 못했다”며 한 숨을 쉬었다.

    그는 “회사는 지난 9월 17일부터 현직 교사들에게 노조탈퇴 종용을 위한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최근 서울지역에서 9명을 면담해 전원 노조를 탈퇴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지국장 면담을 통해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재계약이 불과하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있으며, 만약 이 같은 행위가 문제가 될 경우 모든 책임은 회사에서 진다는 지침까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오 사무국장은 “회사는 그간 10월말까지 현직 교사 내 조합원을 모두 정리하겠다는 입장이었다”며 “모든 지시는 내부문건으로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매가 진행된 4일은, 임금삭감과 해고협박, 단체협약 해지로 시작된 재능교육 노조(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의 농성이 1050일째 되는 날이다. 최근 간접고용 문제로 장기간 투쟁해온 기륭전자와 동희오토가 쏙쏙 합의 소식을 전해오고 있지만 재능교육의 노사 갈등은 갈수록 그 골이 깊어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유 지부장은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 때문에 부당해고 소송을 해도 이긴다는 자신감 때문에 회사는 더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다”며 “회사 측은 아주 당당하게 ‘개인사업자들이 노조를 사칭한 불법단체로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며 말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에 단체협약도 파기하고, 해고를 남발하고,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05년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로 볼 수 없어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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