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홍길순’의 개인정보를 훔쳤나?
        2010년 11월 04일 10:1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2006년에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전자주민증 사업을 들고 나왔을 때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행자부가 제시한 전자주민증 시안에 찍혀있던 “홍길순”의 신상이 온라인에 뿌려졌던 것.

    한참 전자주민증 문제로 시끄럽던 어느 날, 전자주민증 관련 기사를 냈던 한 일간지에 원래 “홍길순”의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이 포토샵으로 처리되어 등장했다.

       
      ▲ 왼쪽 사진=행자부 전자주민증 시안. 오른쪽 사진=모 일간지 기사의 포토샵(IC칩 수록사항 설명 내용은 2006년도 행자부의 안이었으며 현재 행안부의 안과는 다름)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해당 일간지는 전자주민증 시안의 여성 모델의 프라이버시권 및 초상권 침해를 우려해 이렇게 포토샵을 했던 것인데 이것은 보기 드물게 언론사가 프라이버시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사례였다. 문제는 이 포토샵 기사가 올라오기 이전에 이미 저 여성모델의 개인정보가 온라인에서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개인정보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에서 출발한 전자주민증 사업은 궤도에 들어가기도 전에 오히려 이렇게 어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홍길순”의 프라이버시는 누가 침해했나?

    행안부 관계자는 이 사건이 전자주민증 사업의 본질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사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이 사건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전자적 네트워크 체계가 개인정보보호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근 발생한 신원도용사건 하나는 전자주민증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이달 중순 구속된 한 절도용의자는 남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하여 1년여 동안 편의점 등을 전전하며 위장취업을 한 후 금품을 절도해왔다.

    그런데 이 용의자는 훔친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거나 변조하여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용해왔다. 다만 훔친 주민등록증에 인쇄되어 있는 사진처럼 ‘변장’을 하고 범행을 저질러 왔다.(한국일보 인터넷판 2010년 10월 29일 기사 참조)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면 이런 ‘변장’을 통한 범죄를 전자주민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나? 행안부의 주장대로라면 전자주민증 리더기는 전자주민증의 진위여부 혹은 주민등록번호 확인 정도의 역할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전자주민증만으로는 ‘변장’에 대처할 방법이 없는 거다.

    그렇다면 전자주민증으로 본인식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있다. 바로 지문인식기(스캐너)다. 행안부는 전자주민증의 IC칩에 지문정보를 수록하겠다고 한다. 이 전자화된 지문정보는 지문인식기가 있을 경우 바로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행안부는 아직까지 지문인식기 상용화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수순을 따르자면 ‘변장’을 통해 신원도용을 하는 범법자를 잡기 위해선 이제 모든 관공서는 물론 일반 가게 점포에서도 지문인식기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지문날인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제 단순히 법적 근거도 없이 전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채취해서 경찰이 보관하고, 수시로 AFIS(자동지문감식시스템)을 돌려가며 국민들을 범법자 취급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자화된 지문정보가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정보를 연결할 수 있는 열쇠(matching key)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행 주민등록법에는 열손가락 지문을 날인하고 이를 경찰에 넘겨주어야 하는 근거가 전혀 없다.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 역시 주민등록번호와 마찬가지로 1968년 주민등록법 개정과정에서 도입되어 1970년대에 정착되는데, 1997년 주민등록법 개정까지만 해도 주민등록법에는 ‘지문’이라는 단어조차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의 시대를 넘어 지문정보의 시대로

    한편 만17세가 된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하고, 이렇게 날인된 지문정보는 곧장 경찰에 넘겨지게 되는데 이런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다.

    국민의 지문정보 일부(손가락 하나 혹은 둘)를 수집하고 신원확인 등 행정처리를 위해 사용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일정 연령 이상 자국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을 모두 수집하여(그것도 회전지문, 평면지문 모두) 경찰이 전산화해서 일괄 관리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국민 열손가락 지문 강제날인제도는 신체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등 기본권과 적법절차의 원칙 등 헌법이 정한 기본권 보호조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제도로서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부, 특히 경찰은 이 제도를 강력히 옹호한다.

    경찰은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의 존치근거로 신원확인, 범죄수사, 간첩색출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런데 신원확인이나 범죄수사의 경우 지문정보의 활용이라는 것은 굳이 전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을 다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전국민 지문정보를 통합관리하지 않으면서도 범죄자 검거율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는 다른 국가들은 무슨 신통방통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

    진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간첩색출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덜떨어진 간첩이 지문으로 색출된다는 걸까? 만일 지문으로 간첩을 잡을 수 있다고 하면 그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적국 간첩의 지문정보를 이미 한국의 공안기관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어떤 나라가 자국 스파이의 신상정보와 지문정보를 적국에 제공하나?

    2005년 5월 헌법재판소는 6대3 다수 의견으로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를 합헌으로 결정했다. 재밌는 것은 다수의견이 제시한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가 헌법적 판단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바로 경찰에 제시했던 “남북 대치”라는 상황논리였다는 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문날인제도가 있음으로 해서 ‘북한괴뢰도당’의 남침야욕을 분쇄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날아오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이나 장사정포탄을 주민등록증에 찍힌 지문으로 격퇴할 수 있다는 이야긴가?

    지문날인제도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전자주민증이 도입됨으로 인해 야기되는 새로운 문제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행안부의 거듭되는 부정에도 불구하고 전자주민증이 신원확인목적의 용도를 십분 발휘하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지문인식기가 동원될 수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한국 국민은 주민등록번호 외에 네트워크에서 신원정보의 연결을 위한 코드 하나가 더 생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불편으로 다가올 것이다. 신원확인 할 때마다 지문을 스캔해야 한다는 것과 이젠 주민등록번호뿐만이 아니라 지문정보까지도 노출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전자주민증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편리는 제로이거나 마이너스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토록 엄청난 혈세를 낭비하면서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려는 걸까?

    경찰업무는 경찰이 해야

    단순히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만 전자주민증이 기획된 것이 아님은 이런 사례를 통해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어차피 이런 식의 신원확인절차의 증가가 행정공무원들의 입장에서도 결코 편리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자주민증을 강행하는 그 이유는 모호하고 그래서 자꾸만 음모론적인 추정을 유발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행안부가 일정한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 하나를 팁으로 알려주겠다. 현재 열손가락 지문채취는 경찰 고유 업무이다. 즉 수사절차업무일 뿐 이것은 주민등록증 발급업무와는 전혀 무관하다.

    따라서 차제에 행안부는 만17세, 즉 현재 대부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주민등록증 신규발급 대상자들이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을 할 때, 열손가락 지문채취를 경찰업무로 이관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동사무소는 주민등록증 발급업무만 하고 열손가락 지문채취는 경찰서에서 하라는 것이다.

    만17세가 된 청소년들이 아무 죄 지은 것도 없이 경찰서로 가서 경찰 입회 하에 열손가락 지문날인을 하는 모습은 괴기스럽긴 하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행정은 명확해야 하므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형사소송법 등 수사업무와 관련된 법에 만17세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를 명시해야만 한다.

    또한 당연히 지문채취 과정에서 경찰은 해당 청소년에게 당신이 제공하는 열손가락 지문은 전자적으로 처리되어 AFIS에 입력되고, 수시로 경찰이 필요할 때마다 당신에게 알려주는 일 없이 지문정보를 돌려서 수사를 할 것임을 사전 인지시켜야 한다.

    물론 행안부의 주장처럼 어차피 사용도 하지 않을 지문정보라면 굳이 전자주민증 IC칩 안에 지문정보를 등록할 필요도 없다. 국민이 싫어하는 친절은 베풀지 않는 것이 국가기관의 매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