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금지-인권조례는 학생들의 것
교사들, ‘익숙한 현실’에서 벗어나야”
    2010년 11월 02일 03: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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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시작되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이제 시대적 대세가 되었다. 학교, 학생, 교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고 쉽지 않은 과정들을 겪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견하는 이유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학교 학생이나 교사로부터 그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학교와 학생, 교사의 삶을 답답해하고 때로는 측은(?)하게 생각한 운동 세력들의 노력으로 일정한 결실을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과 교사들의 요구가 없었다는 것을 ‘전혀’ 없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87년 6.10 항쟁 이후 소위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우리사회 상식의 기준이 바뀌어 나간 기간 동안, 학교는 점점 사회 발전 속도보다 뒤처지는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희생을 담보로 미래의 주역을 길러낸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들을 현재화하고 있는 집단이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이 결국 우리(?)가 요구하고 만들어낸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밖에서부터 강제된 학생인권조례를 만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아닐까.

   
  

학교 밖으로부터 강제된 학생인권조례

그래서 앞으로 참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야기 되어오던 익숙한 내용들이 담긴 학생인권조례이지만 구체적 실천 상황에 직면한 학교는 한 번도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았던 낯선 내용에 맞닥트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현실 진단일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될 다양한 상황 변화에 대한 대처가 내적 동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제도적 강제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학생은, 교사는 심각한 자기 분열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라는 법적 강제, 행정적 조치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운동의 역량 결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보 교육감의 출현이 양날의 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1. 학생인권조례 내용은 당위적으로는 받아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수용하기 어렵다?

지난 7월 서울에서 곽노현 교육감이 체벌 금지 원칙을 천명하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체벌금지 반대를 천명한 교원단체조차 체벌금지의 당위성은 받아들이지만 체벌 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방법적 절차적 문제와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자기 입장을 설명하였다.

이후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여러 교사들조차 방법적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며 체벌금지 조치에 대한 성토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들 체벌금지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당위성의 문제라는 전제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적어도 본인은 이런 전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체벌 금지가 당위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동안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고 고민하고 이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와 실천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교육운동을 해왔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진보적이라는 전교조조차 체벌 금지에 대한 원칙적 천명만 했을 뿐 교육운동으로 이를 실천해 나갈 구체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성명서 한 장 발표하는 것으로 상대적 진보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대중적 조직운동이 아닌 입장 표명만으로도 그 존재 이유를 갖게 하는 다른 형태의 운동 방식을 택했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집단적 실천으로서의 교육운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전교조가, 합법화 이후 대중조직으로 거듭난 전교조가 조합원들과 함께 체벌 금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본래 운동은 사회적 금기에 도전해서 평등과 자유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허용과 금기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긴장이 운동의 동력 아닐까? 그런 경험을 통해 교육운동에 종사하는 우리들의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깊어져 나 자신부터 스스로의 금기를 깨고 나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체벌 금지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걸어오는 많은 내용들이 익숙한 자기 논리의 반복에 불과한 ‘현실적 어려움’(이건 교육감이 현실을 모른다는 조롱의 다른 표현이다)과 ‘절차적 미숙함’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너무 큰 아쉬움을 갖게 한다.

체벌 금지와 관련지어 이야기했지만 결국 우리는 지금 현실적이 아니라 당위적으로도 학생인권조례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척박한 상황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당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현실을 빗대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2.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다. 교사들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교사간 관계 맺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니 학생들이 새로운 기준에 걸맞는 자기 권리와 책임을 다한다면 많은 어른들의 우려는 말 그대로 우려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부분도 역시 별로 전망이 밝지 않다. 이유는 학생인권조례를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로 만들어내는 과정과 절차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례제정 과정에서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주어진(?) 잘 차려진 밥상이 과연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부분은 모두 고민하고 있으니 차츰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섞인 전망을 가져본다.

경기도 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뒤, 서울에서 체벌금지 조치가 내려진 뒤 모든 언론은 학교와 교사들의 고민과 우려들만을 기사화한다. 정작 이러한 조치의 한 쪽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발견할 수 없다. 학생들은 무조건 환영하고 마음껏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교사에게 도를 넘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이다(사실 체벌 금지와 관련한 학교 논의과정에서 여러 학생들이 절제된 체벌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학생들은 미숙한 존재여서 교사의 관리와 통제를 받아야 하고 필요할 경우 기본권을 제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할 경우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는 필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언론 보도를 보면서 우리 언론이 이런 학생관을 가지고 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 교사들은 어떠한가? 앞에서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 내용들을 당위적으로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매우 무례한 말이고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는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가 담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성찰적 고민을 집단적으로 진행시킨 경험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학생관을 우리에게 묻고 있는데 우리는 현실이 어떻다는 답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교사들조차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좀 더 허용적인 교사에 불과하지 근본적으로 학생들의 존재 자체를 다르게 사고하는 분명한 학생관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많은 교육적 상황에서 일관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의 학생관을 분명히 세우는 것이 학생인권조례를 학생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교사들의 적극적인 자기 노력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것이니 그들의 사회적 성취를 축하해 주고 교사들은 이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이야기 없이 학생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너무 공허하다.

3. 학교 민주주의 발전, 학생인권조례를 넘어 학교인권조례로…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를 많이 하면 교사들은 공허해 진다.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중요한 목표중 하나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교사들은 민주시민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교 정치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학교 자율성 확대는 거의 독재에 가까운 학교 관리자의 권한 확대로 이어져 교사들을 짓누르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교육적 상황에 대한 책임은 교사 개인이 떠맡아야하는 숨 막히는 상황에 놓여있다.

한마디로 학교 정치에서의 권한은 없고 오로지 머슴같이 학교 관리자와 학생 학부모로부터 이리저리 떠밀려 술 취한 듯 휘청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체벌 금지를 말하면서 교권 추락을 염려하고 우려하는 것은 기우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 체벌 금지 등과 관련하여 교사 집단이 보이고 있는 방어적 태도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교사들은 지금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밖으로부터 강제되는 제도적 도전이자 일상의 삶의 모습의 변화를 스스로 가져와야 하는 안으로부터의 도전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밖으로부터 강제된 도전은 교사 자신에게 자기 존재를 되묻는 반성적 성찰을 촉발시키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들에게 허용된 권리로서의 여러 가지 내용들이 교사들에게는 일상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것일까? 혹시 교사인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권리들을 학생들에게 보장하라고 하는 낯선 상황은 아닐까?

교사, 하찮은 존재들

사회적으로 교사들은 ‘정치 활동’을 금지당한, 정치적으로 반신 불구의 인생을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들이다. 월 1,2만원의 정당 후원금을 낸 것을 가지고도 해직을 당해야 하는 하찮은 존재들이다. 학교 내에서도 자신들의 교육적 견해를 모아내고 표현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마디로 교사들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의 사각지대에 (의도적으로)방치된 정치적 미숙아들이다. 교사들의 존재를 이렇게 파악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학교 현장이 우리사회 민주주의 발전의 수준, 상식의 기준에서 한참 뒤떨어진 낙후된 제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에 대한 우회적 표현인 것이다.

민주적인 제도 속에서 민주시민으로서 권리와 역할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학교 민주주의의 지체가 교사들의 학생인권조례를 바라보는 시각을 틀 지웠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구현해 내는 교육 민주화의 진전을 위해 실천적 노력에 나서라는 것이 지금 우리 교사들에게 주어진 외부로부터 강제된 도전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들은 투표로 자신들의 대표를 뽑고 ‘학생회’를 구성하는데 교사들은 ‘교사회’는 커녕 투표 행위 자체를 낯설어 하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학교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오동석 교수가 충분히 이야기했고(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 법제화와 지역주민까지 포괄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틀 마련이 그 골격임, 현재 학운위와 같은 형식적 운영이 아니라 법적 지위를 갖는 교사, 학생, 학부모 대표와 지역대표가 함께 협력하여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것) 그동안 교육운동 진영에서 이미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에 또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필요에 의해 집단적 요구와 실천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그것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교사들의 논의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짜증나고 재수없는’ 교사에서 벗어나려면

안으로부터의 도전은 사실 좀 미묘하고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논의를 출발시키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운동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학생들은 학교 생활에서 교사들과의 관계 맺음에 어려움을 호소하곤 한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지만 아주 단순화해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면 이렇다. 교사들의 학생 지도 기준이 달라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어떤 수업 시간에는 허용되는 것이 다른 수업시간에는 그렇지 않고, 어떤 선생님은 야단치지 않는 머리 상태가 다른 선생님에게는 단속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함께 살아가는 교사 중 아이들과 관련한 교육적 판단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동의하기 힘든 상황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는 각 교사들의 주관적인 교육적 판단과 교육행위에 대해 주변 어느 교사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각 교사들의 교육적 판단은 그저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형태의 개입과 입장 표명은 금기시 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정책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학생들과 직접 마주치는 일상적 교육 활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별 교사들의 교육적 판단은 공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몇 경우 아이들은 교사들의 교육적 판단을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들 표현으로 ‘짜증나고 재수 없지만’ 뒤돌아 욕하는 것으로 그냥 흘려버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의 신뢰와 상호존중의 관계 맺음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이러한 상황은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그냥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바뀐 상황 속에서는 이런 형태의 교육 활동은 많은 저항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적어도 적지 않은 도전으로 학교와 교사를 압박할 것이다. 따라서 이 내적 도전 역시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합리적인 합의점 도출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즉 교사들의 개인적 주관적인 교육 신념과 교육적 판단을 사회적 기준과 상식에 비추어 객관화하는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합의된 교육활동을 집행하는 공적 활동을 자기 신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생활규정 개정을 위한 논의 과정을 통해 더 구체화할 것이며 교사들의 자기 성찰적인 내부 논의 과정을 통해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외부적 도전에 대해서는 뭔가 담론적인 논의가 가능해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제3자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으나, 내적 도전으로 고민되는 지점은 교사와 학생 모두 주관적인 자기 생각과 익숙한 자기 행동 방식이 있어 이를 조정하는 데 쉽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문화와 교육적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거대한 도전이다. 어디까지는 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는 소극적 기준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학생이란, 교사란, 또 학교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 역시 익숙한 자기 문법에서 벗어나 낯선 시선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을 돌아보는 근본적 성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는, 진보교육감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이다.

* 이 글은 11월 2일 전교조 주최 ‘학생인권토론회’에서 발표될 토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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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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