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과 울음소리가 교차하다"
    By 나난
        2010년 11월 02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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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은 지난 2008년 교섭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사진=이은영 기자)

    “시원섭섭합니다. 처음부터 함께 싸웠던 조합원들과 다함께 복직하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1일 오후, 1895일간의 투쟁이 고스란히 담겨진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구사옥 앞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교차했다. 6년간의 기나긴 투쟁이 직접고용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10명의 기륭전자 조합원들과 이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뒤엉켜 있었다.

    "꿈처럼 끝났다"

    하지만 ‘묘한’ 허탈함을 감출 수도 없었다. 합의서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목숨을 내놓은 6년간의 싸움이 종이 2장으로 일순간 끝났다”는 허무함과 몇 차례에 걸친 회사 측의 입장 번복으로 끝날 듯 끝나지 못했던 싸움이 “꿈처럼 정말 끝이 났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버텨온’ 10명의 조합원은 자신의 복직에 대한 기쁨보다 함께 싸웠지만 생계 등의 문제로 조금 더 빨리 농성장을 떠난 ‘동지’들이 함께 공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죄책감에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김소연 분회장은 이날 열린 합의 보고대회에서 2008년 노사 교섭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조합원들과 논의했다. ‘굴욕적 합의는 절대 할 수 없다. 파견이 끔찍해 노조를 만들고 그 결과로 잘렸는데, 하도급으로의 고용은 받을 수 없다. 두 손 털고 (공장에서) 나가더라도 싸울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보자’며 울었다”고 말했다.

    당시 교섭중재자로 나선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도 “제발 살아만 달라며”며 애원했고, 그렇게 교섭은 결렬됐다. 하지만 “걱정마라 끈질기게 싸우면 타결될 수 있다”는 김 분회장의 말과 달리 투쟁은 힘겹게 진행됐다. 사회적 관심은 멀어져갔으며, 교섭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일 해보고 싶다’는 젊은 조합원에게 ‘자신 있다. 싸워보자’는 말을 못했다”며 “결국 그 동지를 떠나보내게 됐다”며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될 것들

    “대규모 집회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쪽수가 적어 못했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어도 해결 안 되는 원인에는 파견법이 있고, 그 파견법 폐기 투쟁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누군가는 파견법 문제 잡고 끈질기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광화문 사거리에 나가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기륭전자 노사 합의 소식을 듣고 농성장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김 분회장의 말에 숙연해졌다. 눈물을 흘리는 가하면, 고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더 많이 연대하지 못한 미안함의 표시였다.

    비록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직접고용’과 함께 합의서에 명시하고 싶었던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지 않겠다.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회적 책무 조항을 넣지 못했다. 이에 김 분회장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 생계문제로 농성에서 빠져야 했던 강순렬 조합원은 "10명이라도 복직돼 다행"이라며 미안해하는 조합원들을 오히려 위로했다.(사진=이은영 기자)

       
      ▲ 1일 현재 20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윤종희(왼) 오석순(오) 조합원.(사진=이은영 기자)

    그리고 그는 함께 울고 웃으며 농성을 벌인 조합원 모두가 복직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조합원 전체가 복직해야 하는데 10명만 복직하는 안에 결국 도장을 찍었다”며 “처음 노조가 생겼을 때 ‘이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겠다’며 눈물을 흘렸던 아주머니들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며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200명으로 시작된 파업과 긴 투쟁, 각종 손해배상청구 등 무임금 무노동은 노동자에게 너무 힘든 조건이었습니다. 특히 생계문제가 컸던 여성노동자는 끝까지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공단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3~6개월 단기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복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원망이나 하지 않을까… 처음처럼 끝도 함께 해야 하는데 힘이 너무 보자라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마음은 모든 조합원이 동일했다. 1일 현재 20일간 단식을 벌인 윤종희 조합원은 2005년 구속됐을 당시를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주말에는 가족 밖에 면회가 안 되는데 한 조합원이 (우리 아버지와) 남편의 이름이 똑같아 ‘친정엄마’라 속이고 면회를 왔어요. 그때부터 ‘엄마’라고 불렀는데, 오늘 조인식을 하면서도 차마 전화를 못했습니다. 조합원 모두가 함께 복직할 수 없다는 마음 때문에, 그 죄책감 때문에 연락도 못했는데 그 엄마가 지금 여기 와 계십니다.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엄마’인 강순렬 씨는 오히려 윤 씨가 단식을 끝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는 “딸자식도 있는데 저게(윤 씨) 단식한다고 저러고 있어서 걱정이 많았다”며 “고생이 말도 못했다. 추운 날씨에 경비실 옥상에 앉아 있는 거 보면 속이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현재 기륭전자 구사옥 인근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년 전 농성장을 떠났다. 하지만 1주일에 1~2번은 꼭 농성장에 들러 조합원들의 손을 잡아주고 건강을 챙기던 그다.

    “노동운동하다가 죽는 사람을 이해 못했어요. 그런데 김소연 분회장을 보며 ‘저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속이 말이 아니었을 거예요. 10명이라도 복직돼서 다행입니다. 나는 괜찮아요. 맘고생 많았으니 이제는 잘돼서 공장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누구도 쉽사리 예측하지 못했던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6년간의 싸움이 노사 합의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이제 시작”이라 말한다. 파견법이 여전히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고, 이로 인해 전국의 수많은 사업장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박행란 조합원은 “종이 2장 때문에 회사와 웬수가 돼 6년간 싸워오다 오늘은 악수를 했다”며 “그 종이 2장이 뭔가 싶기도 하지만, 내 딸처럼 단기아르바이트를 하는 , 쓰다가 버려지는 노동자들을 위해 파견법 철폐를 위해 계속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1일 기륭전자 합의 보도대회에는 기쁨과 허탈함, 죄책감이 묻어난 눈물이 넘쳐났다.(사진=이은영 기자)

    이날 보고대회 내내 눈시울을 붉힌 문재훈 서울 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은 “IMF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대안이 없다’며 치부돼 왔는데 이번 기륭전자 합의는 이에 대한 첫 번째 반격”이라며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이제 기륭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간접고용 노동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그 투쟁을 이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장 높은 투쟁, 가장 단순한 요구

    그는 “간접고용 문제와 관련해 그간 노동계가 ‘대충 해결하자’, ‘어차피 안 된다’며 손을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십자가를 지고 결국 승리를 이끌어 냈다”며 “‘직접고용’이라는 가장 단순한 요구를 가장 높은 투쟁을 통해 이뤄냈다”고 말했다.

    11일간 동조단식에 참여한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비록 만신창이가 됐지만 결국 승리했다”며 “그것을 회사 측은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기륭투쟁의 승리를 시작으로 동희오토, GM대우, 재능교육 등 전국에 산적해 있는 투쟁 사업장이 그 힘을 받아 승리하자”고 말했다.

    이날 기륭전자 합의 보도대회에는 조합원들 외에도 동희오토, 쌍용자동차,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참여해 기쁨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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