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 정책 이전 '말의 전쟁' 시작됐다
        2010년 11월 02일 07: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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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에게 ‘말’은 매우 유용한 정치적 ‘도구’이자 ‘이념’이고, 때에 따라서는 ‘유일한 실천’이기도 하다. 말이 곧 실천이라는 것은 말이 단순한 상징체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말은 대중들에게 가장 쉽게 인지될 수 있는 신뢰의 무게이자, 사고의 지평이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말

    그래서 동일한 정치적 목표를 가진 집단인 정당은 이념과 정책 목표를 나열한 정강정책보다는 주요 정치인들의 말을 통해 ‘진정한’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 또한 발언 이후 "오해였다"거나 "왜곡되었다" 혹은 "과도한 해석" 등등의 해명이 뒤따르는 말일수록 진심의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한 여론조사(내일신문 10월 11일)에 따르면, 2012년 대선화두로 국민·국회의원·전문가 모두 ‘복지’를 꼽았다고 한다. 다음 대선에서 복지가 쟁점이 되리라는 점은 이외에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 있고, 상당한 정합성도 있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그 배경이다. 어느 정권보다 복지를 부르짖었던 민주정권10년 동안의 양극화를 통해 ‘경제(혹은 성장)’가 호명되었다면, 경제는 자신있다던 정권에 배신당한 유권자들이 ‘복지’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들이 선호하는 복지체제가 ‘보편적 복지’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예컨대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쟁점이었던 ‘무상급식’을 통해 국민들이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너무 앞서간 것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파들이 ‘무상급식’을 “사회주의 정책” 운운하며 과잉대응한 것이 자충수였다. 무상급식을 과도한 복지로 몰아붙이는 이들의 ‘말’은 학교급식을 의식주와 같은 기본권으로 접근한 야당보다 훨씬 진부한 것으로 유권자들에게 인식되었고 설득력도 떨어졌던 것이다.

    국민들은 보편복지를 선호한다?

    같은 조사에서 복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 국민의 64.3%는 “기업이나 부자의 기부를 통해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가의 재정지출을 늘려서 확대해야 한다”는 답은 34.9%에 그쳤다. 연령대 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 국민들은 국가복지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다. 복지는 여전히 민간의 자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국가복지에 대해 부정적인 것, 그리고 젊을수록 국가복지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그래도 복지는 민간의 영역이라는 답이 많은 이유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장담론의 세례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실제 조세를 부담하는 것만큼 복지혜택을 못 받아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수세력의 복지인식은 그들이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고 해도 여전히 상당한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시혜다. 그렇기 때문에 ‘과도’하면 안 된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약자라고 무조건 봐주지는 말아야 한다”며 “응석받이 어린이에게 하듯이 복지도 무조건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그러면서 학교 무상급식과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혜택을 ‘과잉복지’ 사례로 거론했다. 그는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

    논란이 일자 “발언의 취지가 잘못전달 되어…”라며 한 발 물러섰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다시 사과를 하기도 했지만,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그가 단순하게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의 실수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박근혜, 손 안대고 코 풀겠다?

    박근혜 역시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정책적 완결성을 갖는 복지정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편적 복지가 진보세력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복지화두가 진보세력, 정확하게 얘기하면 야당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버지의 최종 꿈이 복지국가였다”는 그의 발언에서도 민주당에서 얘기하는 보편적 복지를 얘기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그는 이른바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며, 법질서를 세운다)를 케이프레이즈로 내세운 바 있다. 그는 약속은 지키고 한 번 한 말은 거둬들이지 않는 ‘소신’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다.

    3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는 하나, 세금을 줄이면서 복지국가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손 안대고 코 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앞으로 벌어질 여야간 혹은 대권주자간 복지국가 논쟁은 구체적인 정책논쟁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바탕 ‘말의 전쟁’을 전초전으로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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