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진보신당의 '낡은 진보'를 비판한다
    2010년 11월 01일 11: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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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도 옛말이니 요즘은 10년이면 강산이 더 자주 변할 법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발전한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잘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의 진보, 즉 오래된 진보의 낡은 사고다. 단언컨대, 낡은 사고에 고착된 오래된 진보는 더 이상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진보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진보

필자는 오래된 진보를 비난할 목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래된 진보의 낡은 사고가 우리시대의 각광받는 새로운 진보의 미래지향적 사고로 거듭나고 우뚝 서 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하려는 것이다.

인간에게 관성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차 잘못하면 기존의 관성에 묶여버리게 된다. 과거 우리가 진보라고 믿었던 것들이 더 이상 진보가 아니거나 오히려 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과 변화와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려는 ‘깨어있는’ 자세다.

지금 대한민국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로 인해 우리 국민은 사회경제적 불안(insecurity)과 심적 불안(anxiety)으로 고통 받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심화되는 양극화 사회에서 우리 국민은 가계 또는 개별적 수준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각종 불안에 대해 시장적 방식으로 대응하였지만 민생불안의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이것이 2010년 들어, 특히 지난 6.2지방선거를 전후로 우리 사회의 저변에서 일기 시작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과 요구 증대의 근원적 배경이다. ‘보편적 복지’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뿐만 아니라 서유럽의 많은 선진복지국가들에서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제도화되고 발전을 거듭해왔던 것이기에 우리나라의 정책전문가 사회에서는 전혀 낮선 용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거의 들어보지 못한 낮선 것으로 존재해왔다. 이는 그동안 우리사회가 ‘보편적 복지’를 수용할만한 정치사회적 맥락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경천동지할 변화

실제로 필자는 김대중 정부 시기였던 1999년경 당시 여당(새천년민주당)의 꽤 진보적인 정치인들에게 ‘보편적 복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은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황당해 하거나 필자의 말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용어는 민주당 강령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했다. 경천동지할 변화다.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양극화와 신자유주의의 위기 등으로 세상이 바뀌니까 이에 따라 정치지형도 바뀌는 것이다. 정치의 핵심주제가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로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보수정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에서 관찰되고 있다.

보편적 복지의 중요성은 단순히 복지의 보편적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의 탈상품화와 탈계층화를 통해 우리네 삶의 사회적 영역을 최대로 확대하고, 단순한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일정부분 결과의 평등까지를 포함하는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며, 공정하고 혁신적인 경제와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보편적 복지는 우리사회가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혁명적 전환을 이루는 데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지난 6.2지방선거를 전후로 우리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에 보편적 복지가 널리 수용되고, 최근에는 민주당마저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용어를 국회의 정당대표 연설에서 천명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보편적 복지국가’가 우리시대의 진보로 수용되는 모양새다.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리의 ‘시대정신’이라 믿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상황전개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진보양당을 잠시 둘러보자. 진보신당은 현재 복지국가를 당의 강령에 명시하고 있다. 복지국가라는 용어 앞에 무슨 수사를 붙이든 보편적 복지국가의 중요한 원칙을 구체화하는 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보편적 복지는 시대정신

민주노동당은 현재 강령을 개정하는 중이므로 지켜볼 일이나 지난 6.2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책적으로는 이미 ‘보편적 복지’를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우리시대의 진보에 대부분의 진보개혁 정치세력이 함께 올라탄 형국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곧 복지국가 혁명이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라는 하나의 자본주의시기를 마감하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질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시기를 열어야 할 시대적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것이 우리시대의 진보적 과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인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즉, 우리네 삶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뒷받침해줄 역동적 복지국가의 보편주의 전략은 적극적 조세재정전략을 요구한다.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한 배를 타기’ 위해서는 누구나 정당한 권리로서 일정한 소득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더불어 누구나 자신의 소득과 능력에 합당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세금 없는 복지국가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만능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복지국가 혁명’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시대정신인 역동적 복지국가를 어떻게 열 것인가? 이는 폭력적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적 방식만이 정답이다. 사회구성원 다수가 원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자본과 이에 연합한 지배적 엘리트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민주주의의 실체적 작동을 가로막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대정신의 구현 수단으로 민주주의를 고수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성찰의 시기 동안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하였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깨어있는 시민’ 없이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누진적, 연대적 방식으로 세금을 기꺼이 더 내겠다는 ‘깨어있는 시민’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다수가 될 때 비로소 복지국가라는 ‘배’가 출항하게 되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복지국가 가능케 해

우리나라의 일반정부 재정(general government,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재정과 비시장적 공공기관의 재정을 합한 것으로 국제비교의 기준으로 사용됨) 규모는 2010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약 31% 정도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의 ‘GDP 대비 일반정부 재정’의 평균은 55% 정도이고, 유럽연합 국가들 평균은 약 5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평균은 약 45%다.

우리네 삶의 공공적 영역이 유럽 복지국가들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협소한 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반대로 우리 삶의 대부분은 정치와 국가의 영역 밖인 최대한의 ‘자유시장’에 내몰려있다. 시장만능의 강화와 경제사회 양극화의 확대에 따라 우리네 삶의 불안정과 불안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장 전형적인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국내총생산의 55%를 국가재정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가 추구해야할 역동적 복지국가의 구체적 재정 목표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특성에 맞는 토종형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면 되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나라도 가입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GDP 대비 국가재정’ 규모인 45%에는 최소한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보편적 복지를 비롯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각종 프로그램들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한꺼번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나 최선을 다해 빠른 시일 내에 달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GDP 대비 국가재정’ 규모가 31%이므로 OECD 국가들의 평균인 45%에 도달하려면 약 14% 포인트가 더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2010년 GDP를 약 1,100조 원으로 잡으면, 2010년 일반정부 재정은 약 340조 원이 되고,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도달하려면 여기에 약 150조 원의 일반정부 재정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국가재정 대대적 확충 필요

이 막대한 돈을 조달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누구나 동의하는 것이 있는데, 세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등의 노력으로 각종 탈세를 방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과거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꾸준히 노력하였지만 그 성과가 짧은 기간에 나타나지 않는 결함이 있다. 그래서 일반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늘리려는 노력과 투쟁이 요구된다.

지난 민주정부 10년과 현 정부 시기 동안, 즉 신자유주의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일반조세의 세율을 높이기는커녕 직접세 중심의 감세를 지속적으로 단행해왔다(1996년 최고 소득세율은 40%였으나 김대중 정부는 이를 36%로, 다시 노무현 정부는 35%까지 인하하였음). 그 결과 우리나라의 2010년 조세부담률(국세+지방세/명목GDP)은 19.3%로 추정되는데, 이는 OECD 평균인 26.6%(2008년)에 비해 7.3% 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금 내고 있는 세금 보다 약 37%를 더 내야 OECD 평균수준의 조세부담률에 도달한다. 또, 우리나라의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사회보장기여금/명목GDP)은 5.8%인데 비해, OECD 평균은 9.1%이므로 우리나라는 현재 내고 있는 사회보장기여금 보다 약 56%를 더 내야 OECD 평균수준에 도달한다.

국가재정의 대대적 확충 없는 보편적 복지나 복지국가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유능하고 큰 정부의 적극적 역할만이 기존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사회를 극복할 실현가능한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 믿고 있다. 세원의 파악과 탈세방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더불어 직접세 중심의 조세부담률을 누진적으로 높여나가야 하며, 사회보장기여금의 크기도 획기적으로 키워야한다.

이것이 복지국가 혁명으로 가는 길이다. 국가로부터 보편적 복지를 수혜한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조세부담의 급증에 저항감을 가질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의 시장적 방식에만 길들여진 기존의 삶의 태도를 일정하게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복지국가 담론’의 큰 흐름에 많은 국민들이 막연하게나마 동의하기 시작했다.

낡은 진보가 가로막고 있는 것

이제 ‘보편주의’ 복지국가 세력의 역할이 막중해졌다. 복지국가에 동의하는 국민을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동의를 복지국가에 대한 확고한 지지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실현, 즉 복지국가 혁명을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연대적, 누진적 추가 부담이 불가피함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복지국가를 향한 열망을 갖고 기꺼이 추가 부담을 감수하려는 국민이 압도적 다수가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국민을 “깨어있는” 국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성찰의 산물인 “깨어있는 시민”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필자가 요즘 상임운영위원장을 맡아 열심히 매달리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깨어있는” 시민을 확장하려는 중요한 시도다. 이것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보편적 복지’도 ‘복지국가’도 모두 수사적 구호에 불과한 것이 된다. 보편적 복지국가에 부합하는 추가적 부담을 하지 않으려는 사회구성원들은 ‘복지국가’라는 한 배를 만들 수도, 여기에 승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시민들에게 지금 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료의 34%를 더 내자고 설득한다. 이 경우에 고용주도, 정부도 지금보다 34%를 더 부담하게 된다. 이렇게 확충된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사실상의 입원 무상의료를 실현할 수 있고, 이는 의료비 불안을 개인 단위의 시장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실손 민간의료보험 가입의 엄청난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낡은 진보’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행보를 가로막고 있다. 이들은 국민건강보험료가 사회보장기여금으로서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의 경우 소득재분배 효과가 매우 강한 사실상의 ‘의료보장’ 목적세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5.3%에 그쳐 유럽 복지국가들의 14%나 이웃 일본과 대만의 8.5%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우려스러운 민주노동당 상황

이로 인한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수준 때문에 우리네 가계의 80%가 민간의료보험을 하나 이상 구입하고 있고, 20세 이상 성인의 70%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으며, 가입자 1인당 평균 10만 원 이상을 보험회사에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낡은 진보’는 그동안 이를 외면하거나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오래된’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두 전 대표(노회찬, 심상정)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홍보대사로 참여하여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일부 ‘낡은 진보’가 반대의 목소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진보신당의 큰 흐름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같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진보신당이 진보의 새로운 흐름에 역동적으로 합류한 것은 진보의 재구성과 복지국가 혁명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민주노동당은 ‘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거리 서명을 통해 입원 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구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무상의료만 강조한다. 이런 캠페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도대체 “깨어있는 시민”의 확장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민주노동당의 ‘낡은 진보’는 고용주가 건강보험료의 60%를 부담(현재는 50%)하고, 정부가 국고로 30%를 부담(현재는 20%)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법 등을 개정하여 이를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의 건강보험료 추가부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먼저, 노동자 대 고용주의 건강보험료 부담비율을 현행의 ‘50 대 50’에서 ‘40 대 60’으로 바꾸면서 건강보험료를 상당 폭 인상하는 것은 지금의 계급 역관계와 정치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국고지원을 현재의 20%에서 30%로 늘리겠다는 것은 정부재정의 용처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놓는 것일 뿐으로, 국가재정의 확충이라는 복지국가의 지향에도 역행하다. 또, 국가재정 지출의 우선순위에서 다급한 여러 복지 분야보다 앞서지는 않으며, 현재의 조건에서 국고증액의 실현가능성도 거의 없다.

국민 추가부담 없이 복지국가 불가능

민주노동당이 ‘낡은 진보’의 뜻에 따라 성공적으로 10만 명 국민의 서명을 받아 입법청원을 한들 이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러한 노력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민간의료보험과 금융자본의 팽창에만 봉사한 것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0만 명 길거리 서명의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를 위한 국민의 추가 부담을 요청하지 않음으로써 장차 복지국가를 열어갈 주도세력으로서의 “깨어있는 시민”, 즉 기꺼이 추가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국민이 아니라 국가나 타자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국민으로 서명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둘째, 이렇게 청원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할 확률은 제로다.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는가? 셋째,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의료민영화의 한 축인 민간의료보험은 세력을 갈수록 확장하여 지속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을 구축할 것이다. 금융자본의 이익에 봉사한 셈이다.

복지국가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존의 시장만능주의 삶의 방식에서는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와 노령연금 등의 소득보장 등 모든 것을 시장에 의존하던 데서 사회연대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적 삶의 영역을 획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삶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드높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낡은 진보’는 결과적으로 이것을 가로막는다. 이것이 필자가 줄기차게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하는 이유다. 필자는 민주노동당이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열어갈 ‘새로운 진보’의 주도세력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조속한 시일 내에 민주노동당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활동을 지지하고 함께 연대해주길 바란다.

소득세 비중 높여야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 일반조세의 증세가 필요하다. 증세의 방법으로 조세정의를 바로 세워 탈세 등으로 누수 되는 세금이 없도록 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 직접세의 세율을 누진적으로 높여야 한다. 발생한 모든 소득은 궁극적으로는 개인에게로 귀착되기 마련이므로 소득세에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소득세의 비중이 4.4%에 불과한데, OECD 국가들의 평균 비중은 9.4%다. GDP 대비 5% 포인트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소득세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일 경우, 2010년 우리나라의 GDP를 약 1,100조 원으로 보면, 소득세에서만 약 55조 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 추가로 늘린 세수의 대부분은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에 사용할 것이므로 누진적 직접세인 소득세에 일정세율을 부가하는 방식의 ‘사회복지 목적세’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또,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한 배를 타고 정정당당하게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소득이든 간에 ‘소득이 있는’ 누구나 세금을 내야한다. 그러므로 각종 공제제도는 폐기하고 세수기반을 넓히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진보를 자처하는 시민사회의 일부가 말로는 보편적 복지를 옹호하면서도 정부재정의 적극적 확충방안으로서의 증세를 반대하거나 이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사회복지재정의 비율’이 9%에 그치고 있어 OECD 국가들 평균인 21%나 유럽 선진국들의 28-30%에는 한참 못 미친다. 앞서 언급한 일반정부 재정의 크기가 우리나라는 GDP의 31%이므로 OECD 국가들의 평균인 45%에 도달하려면 2010년 현재 약 150조 원(1,100조 원의 14%)의 일반정부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토종형의 한국적 복지국가를 만들려고 하면, 일반정부 재정 규모가 유럽 선진복지국가들 수준까지는 아니라 해도 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 정도는 되어야 한다. 민주당이 최근 보편적 복지국가까지 내세우고 있는 바, 앞으로 이의 진정성은 증세를 통한 정부재정의 대담한 확충 여부로 판가름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보정당들도 다르지 않다.

‘진보적’ 잔여주의에 머물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출범 초기부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당임을 내세우며 “부자에게 세금을 빈자에게 복지를”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최근 정부여당은 복지 항목에 따라서는 최대 70%의 국민에게까지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파격적 정책을 내놨다.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겠으나, 어찌되었던 정부여당은 부자들에게는 복지를 주지 않고, 그 돈으로 빈자들에게 충분한 복지를 주겠다는 논리로 부자들에게까지 복지를 주겠다는 야당의 소위 ‘보편적 복지’를 공격하고 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빈자들에게 복지를 주겠다는 진보정당의 과거 슬로건은 현재 정부여당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다.

사실이다. 과거 진보정당과 진보진영은 시야가 ‘진보적’ 잔여주의에 머물렀다. 즉, 진보정당은 보수정당들보다 사회적 약자와 빈자들에게 더 많은 복지를 주는 정당이라는 데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았던 것이다. 어이없게도 이 ‘낡은 진보’는 그들이 그토록 하찮게 여기던 한나라당과 이 점에서는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낡은 진보’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내자는 말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거부하고, 안 내고, 덜 내고, 개별적 수준에서 더 받자는 투쟁만 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진보진영 내부에서 반복되고 있다. 진보신당의 사회복지 목적세 입법안은 대부분의 국민이 부담하는 누진적 방식이 아닌, 여전히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과거의 부유세 요소에 묶여 있고, 다른 획기적 재정확충 방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역시 소득세 최상위 구간 신설을 통한 증세 입법안을 내놓은 것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으며, 최근에는 증세는 안 된다는 입장마저 들려온다.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1980년대에 대세를 형성하며 진보운동을 주도해온 소위 NL과 PD라는 ‘오래된 진보’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보진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했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위해 우리시대의 진보를 재구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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