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분신 경고 불구 무리한 체포
    회사 교섭 빙자 '함정'…정치 쟁점화
    By 나난
        2010년 10월 31일 05: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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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중인 김 지부장(사진=금속노조)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해서 사망한 지  올해로 40주년이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태우면서 저항했다. 온 몸을 태우는 뜨거운 저항은 척박하기 그지 없는 노동현실을 고발한다. 노동자 김준일 지부장의 분신도 그렇다.

    회사, 경찰과 내통 의혹

    특히 이번 김 지부장의 분신은 회사 측과 단독 면담 직후 경찰이 들이닥쳐 체포를 시도했다는 점, 그가 화장실로 피신한 채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렸다는 사실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무리하게 체포를 시도하면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헬기 저공 비행에 의해 임산부들이 부상을 당하게 만든 경찰의 무리한 행동, 노조가 회사 측의 요구안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후퇴한 요구안을 내는 등 회사가 보여준 노조 ‘말살 책동’의 결과가 이 같은 참사를 빚고 말았다. 

    지난 30일 밤 당시, KEC 사측의 요청으로 노사 교섭대표 간 단독 면담이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이렇다 할 의견 접근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노조는 갈등의 씨앗이었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인사 경영권 관련 안에 대한 철회의사를 밝혔지만 회사 측은 모든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날 오후 9시 50분 경 회사 측 교섭대표가 교섭장을 나서자마자 경찰이 긴급체포를 시도해, 경찰과 회사가 내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 것이다. 경찰의 급습에 화장실로 피신한 김 지부장이 “진압을 시도할 경우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강제로 문을 부수고 진압을 시도했다고 임광순 금속노조 구미지부 교선부장은 전했다.

    임 부장은 “‘신나를 덮어 썼으니 진압하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을 시도했다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와 같은 것”이라며 “결국 지부장은 분신을 시도했고 사고는 터졌다”며 울분을 토했다.

    "경찰과 회사는 조합원 자극 말아달라"

    지난 21일부터 1공장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100여 명의 KEC 조합원들이 김 지부장의 분신 이후 매우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긴장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공장 안 조합원은 화학물질을 1공장 문 앞 쪽으로 전진 배치시킨 상태로 농성 현장에 있는 임광순 금속노조 구미지부 교선부장은 “공장 안 조합원들은 극도로 흥분된 상태”라며 “지부장의 분신 소식이 전해 진 후 ‘이제는 복귀도 원하지 않는다’, ‘공장 망하는 꼴을 보겠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전락 민주노총 경북본부장은 “전체 조합원들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며 “더 큰 참사가 구미에서 예고되고 있다”며, 경찰과 회사쪽에 자극을 주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 본부장은 “공장 안 조합원들은 ‘우리가 죽어야 살 수 있다’는 극단적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며 “1일까지 교섭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제조업체인 KEC 공장에는 각종 화학물질이 있어, 무리한 강제진압이 시도될 경우 대형 사고가 우려되고 있다. 

    한편 김 지부장 분신 사태에 대해 노조․정당․시민사회단체가 일제히 경찰의 무리한 공권력 투입을 비판하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31일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이명박 정부가 말하던 대화란 이런 것이었느냐”며 “교섭을 빙자해 공권력으로 침탈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야5당은 KEC 사태와 관련해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조현오 경찰청장에 대해 책임을 묻기로 했다.(사진=신동준 편집국장 / 금속노조)

    야5당, 책임자 문책 요구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5당은 31일 오후 대표단 회의를 개최하고, KEC 사태에 공동 대응키로 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경찰의 무리한 연행 시도에 따른 것이라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번 노사 만남은 교섭이 아니라 함정”이고 “경찰의 객관적 공무집행이 아닌 폭력배 사주를 받은 돌격대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교섭 상황에서는 건드리지 않아야 하는 게 상식이고, 철칙이지만 경찰은 그 철칙을 산산히 깼다”며 “노조 파괴를 꿈꾸고, 이를 위해 집행하고 있는 돌격대가 된 경찰의 행동을 야5당이 막겠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전근대적인 노사관으로는 KEC가 정상화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자본과 정권의 충견 노릇하는 경찰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조현오 경찰청장은 민주노조를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는 것 외의 생각은 없고,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KEC는 폭력적 공권력과 노조말살정책이 만들어낸 비극”이라며 말했다.

    야5당은 오는 1일 구미 KEC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벌일 예정이며, 조현오 경찰청장 면담을 통해 KEC의 무리한 진압에 대한 책임도 물을 계획이다.

    김 지부장은 31일 새벽 5시 45분경 서울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의식은 있는 상태이지만, 화기 흡입으로 인한 장기 손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30일 저녁 김 지부장의 교섭 참가 당시 그와 함께 있었던 조합원 5명은 모두 경찰에 연행된 상태다.

    금속노조는 오는 1일 오전까지 회사 측에 “교섭안을 내놓을 것”을 최후통첩한 상태며, 31일 저녁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향후 대응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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